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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Jan 09. 2021

[남편] 포노 사피엔스가 된 우리 남편

-휴대폰에게 남편을 뺏기다-

 결혼 식장에 입장하기 전 신부가 상상했던 장면이 있을 것이다. 축복과 기쁨의 얼굴로 맞이해 줄 하객들과 반가움의 눈빛을 교환하며 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인데 신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 삼매경에 빠진 하객들이었고, 연인인 듯한 남녀가 커피숍에 앉아서도 각자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광고. 농구 경기를 응원해야 할 곳엔 소리 높여 함성을 지르는 친구들이 없고, 생일을 축하해 줘야 할 가족은 아이를 본체만체하던 '스마트폰으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묵념'이라는 광고. 몇 년 전 저 광고 속 장면과 사람들이 요즘의 나인 것 같아 뒤통수를 크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씁쓸한 느낌. 휴대폰에 빼앗긴 '대화', '관심', '열정'. 아니라고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를 달랠 양으로 혹은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또는 궁금한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휴대폰을 찾고 심지어는 학교 걸어가는 그 시간도 참지 못하고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는 학생들까지 그야말로 세상 곳곳이 휴대폰 요지경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을 뒤적거려 처음 찾는 것이 휴대폰이다. 어제 내가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뉴스를 확인해야 몸을 일으키고, 밴드,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 브런치까지 내가 손가락으로 들르는 곳이 이렇게 다양하고 방문한 곳에 하나하나 눈도장 찍다 보면 이불속에서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다. 다행히 요즘 집에서 '콕'하고 있어야 하고, 급한 일이 없으니 다행이지 출근이라도 해야 하면 휴대전화를 끊기가 우는 아이 놔두고 직장엘 나가야 하는 엄마처럼 참 어렵다. 그렇게 하루 종일 휴대폰을 끼고 대화하고 계산하고 검색하고 생활하다가 또 잠들기 직전까지 휴대폰을 놓지 않는다. 이번엔 코로나도 체크해야 하고 연예인 소식도 챙겨야 하고 날씨도 확인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잠 때를 놓쳐 새벽 두 시, 세 시까지도 잠을 못 이룰 때가 많다. 이것이 요즘 나의 생활 패턴이다.


 나 말고도 내 측근들 중 가장 휴대폰에 코를 박고 사는 건 우리 남편이다. 스마트 폰이 나온 한참 후까지도 별로 이런 문명 기기에 관심을 갖지 않던 남편을 충동질해서 휴대전화를 바꿔준 건 나였다. 모든 사람들이 '카톡'을 이야기하고 '밴드'를 이야기하는데도 2G 폰도 괜찮다며 별 쓸모가 없을 거라고 극구 사양했던 순진한(?) 남편이었다. 그때까진 그랬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직장 생활을 하는데 필요할 것 같았고, 중고 물품만 쓰는 내 남편이 초라해 보이면 어떨까 걱정도 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돼서 무시당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격다짐으로 스마트폰을 억지로(?) 사 준 거였는데.

 이런 상황을 뭐라 해야 할까? 제 무덤을 판 건가, 제 꾀에 넘어간 건가,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진 건가, 모르겠다. 이젠 그 스마트폰이 남편에겐 소파에서도 침대에서도 심지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놓지 않는 껌딱지가 돼버렸고 나에겐 원수요, 애물단지요, 연적(?) 같은 물건이 되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짝꿍이 밤새 무사한가 한 번 들여다보지 않고 휴대폰만 보다가 씻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저녁 먹고 뉴스 틀어놓는 것과 동시에 눈과 손은 휴대폰이다. 내가 리모컨을 들기만 해도 휴대전화 삼매경이면서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중이라며 어깃장을 놓는다. 옥신각신 도대체 부인에게 관심은 있느냐, 휴대폰하고 결혼해라, 휴대폰이 그렇게 좋냐는 등 아무리 종알대도 텔레비전과 휴대폰에 둘러싸인 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휴대폰을 보며 낄낄 거리는 꼴이 보기 싫어 안방으로 들어가라고 보내 놓고 이것저것 해 놓고 들어가면 깜깜한 침대 위 이불 너머 보이는 작은 불빛 하나, 여지없이 남편의 휴대폰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회식만 가면 그 휴대폰이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도무지 연락이 되지 않는 남편을 향해 볼멘소리를 하면 잠깐 깜빡했다거나 배터리가 다 됐다거나 등등 변명이 끊이질 않는다. 이러니 휴대폰은 남편의 편이고 일방적인 남편의 후원자가 될 수밖에 없다.


 가끔 식당엘 가도 어른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도 자꾸만 휴대폰에 눈이 가 있는 남편이 민망할 때도 있었다. 둘이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까지 그렇게 긴 짬이 아닌데도 신문을 보거나 흘낏흘낏 휴대폰을 보는 남편이 미워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니 남편을 빼앗아 버린 휴대폰을 두고 '생과부 청구소송'을 해야 할지 '휴대폰으로 인한 피해 소송'을 해야 할지, 나보다 기능도 많고 나보다 가볍고(?) 무조건 적으로 남편 뜻대로 따라주는 그것에게 질투를 해야 할지 협상을 해야 할지, 강제적 각서를 쓰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휴대폰의 기능을 말하자면 끝이 없고 지금 이 시대는 스마트 폰을 '뇌' 대신 '손' 대신 쓰는 '포노 사피엔스' 시대라고 하니 뭐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기계에 빼앗기고 소외받는 것들이 점점 아쉬워진다. 번호키가 생기면서 '다녀오셨어요?'라는 인사와 반갑게 맞이해 주는 가족이 없어졌고, 노래방이 생기면서 달달하고 서정적인 내 마음속 '가사'를 모두 잊어버렸고, 휴대폰이 생기면서 가족들의 전화번호는 물론 연필을 들고 메모하는 꼼꼼함도 잊어버렸다. 배달앱을 통해서 음식을 주문하고 결재하니 '잔돈'을 주고받거나 친절에 감사하다는 표현도 사라져 버렸다. 휴대폰에 깔린 수많은 앱 때문에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선물이 무엇일까 밤새며 고민하던 낭만도 자취를 감추고, 첫 월급 타서 하얀 봉투에 용돈 넣어 정성스레 '감사합니다' 고마움을 표시했던 아들도 부모님께 정확하고 빠른 계좌로 쏘면 그만인 세상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졸업식이나 입학식이 축소되고 단축되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안부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대신하고 있으니 쓰담쓰담할 일도 사라진 너무도 편리하고(?) 편안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큰 시간 들이지 않고 별 노력하지 않고 별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만큼 점점 사람들은 가상 세계에서 영화 보듯 라디오 듣듯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있다.


 휴대폰 없이 눈을 마주치고 같은 공간을 누리며 함께 시간을 보내던 날이 그립다. 노래방 없이 야외로 나가 기타 튕기며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던 그때로 돌아가면 어떨까. 내비게이션 없이 길도 물어 물어 찾고,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도착을 해 보면 큰일이 날까? 메일 없이도 손편지로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통 받고 싶다면 구식이다 놀림받을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빠르면 빠를수록 난 점점 아날로그식인 대화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사람과 빠르지 않고 천천히 함께 여물어 가고 싶다.


스마트폰으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묵념. 하지만 고개를 조금만 쳐들고 앞을 본다면 그 앞에 가족이 있고, 대화가 있고 열정이 있다. 포노 사피엔스가 되어 잃어버린 우리 남편. 이제, 되찾아 와야겠다. 앞으로 벌어질 나와 스마트 폰의 대결이 어찌 끝날진 모르겠으나 우선 선전 포고부터 한다. 아내에 대한 무관심, 함께 하는 시간을 잊어버린 마음, 남편에 대한 짜증과 치밀어 오르는 화에 대해 미리 묵념!! 그것들에 심심한 조의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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