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냄비의 미학

강력한 내 필명 후보 1

by 가시나물

'달그락달그락' 바쁘게 날숨 들숨을 쉬고 있는 뚜껑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노라고 재촉한다. 그에 맞추어 보글보글 끓는 소리는 조금만 더 늦으면 큰일 난다는 마지막 경고를 보낸다. 나의 분노를 잊지 말라고. 화르르 화르르. '욱'하고 주먹을 내보이는 사내처럼 가스레인지 위 양은냄비는 금방 끓어 넘치고 말 것이니 무엇인가 나의 화를 잠재우기 위한 재물을 달라 아우성이다. 잽싸게 라면 봉지를 뜯어 수프와 건더기를 넣었다. 금세 냄비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아니, 잠시 잠깐 얼르고 달래기가 무섭게 다시 널뛰는 그를 잠재우기 위해 면을 통째 넣고 휘휘 저어준다. 그리고 공기와의 접촉을 위해 몇 번 올렸다 가라앉혔다 만든 탱클탱클 면발은 통통통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다. 거기다 가끔 달걀이나 미역이나 만두나 간혹 파를 피처링하기도 한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따뜻한 국물이 생각난다. 얼큰하고 속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을 떠올린 순간 제일 먼저 생각나는 조합이 노란 양은냄비와 라면이다. 후르룩 한순간 입안으로 빨려가는 면과 매콤한 국물에 '캬' 소리가 협연을 이루어 듣는 맛 보는 맛 먹는 맛이 최고다. 거기다 무엇을 넣든 어디에서 먹든 그 어울림과 황금 조합은 당해낼 자가 없으니 그야말로 라면은 만능 식품이요, 약방에 감초다. 그래서인지 지금 한국은 회사에 따라 국물에 따라 주된 재료에 따라 비빔면, 짬뽕면, 볶음면 해물면 등 그야말로 라면의 전성기, 라면의 황금기, 라면의 천국이다.

그래서 라면을 끓이는 방법이 요리 프로그램에 나올 정도로 라면 끓이기에 대한 자부심은 만 명이면 만 명이 어깨를 으쓱하고 자신만의 비기로 명품 라면 끓이기에 온 힘을 다 쏟을 정도다. 수프를 먼저 넣느니 기름기를 없애느니 만두가 나은지 그냥 라면만 끓였을 때가 나은지 핏대 올려가며 라면 설전을 벌이노라면 모두들 야식으로 먹는 라면을 머리에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게 된다.

그런데 가끔 왜 라면의 짝꿍은 양은 냄비일까 생각해 본다. 라면을 스텐 냄비나 뚝배기에 끓여서 먹을 수도 있지만 왠지 그 맛이 안 난다고 여겨지는 것은 나 혼자일까? 양은냄비 뚜껑에 라면을 올려놓고 흡입하거나 컵라면 종이로 꼬깔콘 모양을 만들어 먹어야 제맛이 난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면의 성급함과 단순함이 아마도 양은냄비의 빠른 열전도와 닮았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빨리 익고 빨리 식는 양은냄비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후다닥 조리해서 먹는 라면과 찰떡 궁합인 것이다.


얼마 전 '언니는 양은냄비 같아'라는 말을 들었다. 모처럼 후배와 맥주를 마시다가 들은 말이었는데 한편으론 내 성급함과 용두사미 같은 일의 진행을 인정하면서도 묘한 섭섭함이 들었다.

오 년 전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한 후배들과 팀을 꾸렸다. 원래 강사 일이 외롭기도 하고, 서로 도와줄 일도 많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이점 등등을 이유로 서로 스터디도 하고, 새로운 자료도 개발하고,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함께 수업도 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각자 수업하던 자료들을 모아 정리해서 책 출판도 하고 뭔가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움을 시도하고자 했던 꿈이 컸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선후배로 뭉쳤으니 마음을 터놓고 잘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꿈이었던 것 같다. 우선 팀을 설계하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고, 네 명 각각의 여건이나 특성을 고려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수업을 하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만나자는 스터디도 흐지부지. 특강 계획안을 짜서 연구하고 제대로 된 수업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도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때론 자식 때문에, 때론 수업 때문에, 어떤 때는 피곤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집안 대소사가 걸렸다. 또 네 명의 성격과 기질이 달라서 많이 표현해야 하는 나, 표현하고 싶어도 자신 없어하는 너, 절충하는 그, 묵묵히 듣다가 결정을 따르는 그녀 등등등(ㅋㅋ 모두 여자다). 그러다 보니 시작은 내가 하고, 마무리는 짓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나의 막가파 기질과 내 생각의 틀에 후배들을 맞추려 하니 못마땅 한 점도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드문드문 상황상 정서상 네 명이 갈등을 빚는 순간이 오기도 하고.


결국 팀을 깼다. 내가 월급을 주면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더 미워지고 야속해지기 전에 각자 자기 일을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후배들에게 통보했다. 팀을 깼다고 안 만날 것이 아니고, 팀을 깼다고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 그리 섭섭해할 것 없다고. 거의 반 우격다짐으로 동의를 받아내고 단체 카톡방을 없애버렸다. 속 시원할 줄만 알았는데 꼭 그건 아니었다. 쉬는 날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고 톡에 올릴 수도 없고, 어떻게 살고 있냐고 안부를 묻기도 어색하고, 이런 책 있냐고, 저 책 어땠냐고 쉽게 쉽게 대화를 청할 수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후배랑 이야기하다가 나온 말이 바로 이 '양은냄비'였던 것이다. 언니는 처음엔 뭔가 해보려고 부글부글 끓더니 마지막은 흐지부지한다는 말. 그 말에 나도 이래저래 이유도 많고 할 말도 있지만 그냥 놔뒀다. 양은냄비라 느낀 후배한테는 내가 양은냄비일 수밖에 없고, 나를 무쇠 냄비로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쇠 냄비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웃음이 났다. 그러고 보니 에어로빅을 배우다가 요가를 배우다가 댄스를 하다가 몇 달 다니지 못했고, 대학원을 다니다가 결국 수료로 졸업을 못했고 등산을 취미로 해서 등산 용품을 사모으다가 올해는 한 번도 가지 못했고, 모임을 하다가 일 년 이 년이 지나가면 싫증도 내고 하기도 싫고 그랬던 것 같다. 책을 써 보자, 스터디를 해 보자 시작했으면서 끝내 때려치우자로 결론을 내길 몇 번. 뒤돌아 보니 내가 항상 그랬었구나 싶어 부끄럽지만 차츰 인정도 되고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지금의 이 결정 또한 양은냄비 근성으로 내린 결정이라 해도 어쩔 수는 없다. 내가 선택한 기준과 내가 선택한 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많은 문제와 그에 따른 책임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또 양은냄비면 어떤가. 빨리 끓고 빨리 식으니 그만큼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일도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맺을 수 있고, 어려웠거나 힘든 일도 빨리 잊을 수 있고, 화가 났다가도 다른 일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좋지 않을까?

시간이 빠름이 눈으로 보이는 지금,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데 양은냄비 같은 성격이 맞지 않을까? 특히나 수업은 양은냄비처럼 새로운 변화와 방법들을 적용해 보고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무쇠 냄비처럼 오래 끓여야 제 맛을 낼 수 있는 음식도 있지만 빨리 끓여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또한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미워할 수 없는 양은냄비. 그래서 앞으로 내 필명도 양은냄비로 해 보면 어떨까 고민 중이다.


그런데 이렇게 적어놓고도 뭔가 찜찜한 이 기분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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