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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시나물 May 01. 2021

쉰에 다시 만난 어린 왕자

-'어린 왕자'와의 상상 문답-

쉰이 넘어서 생택쥐패리의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났다.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어렸을 때 어린 왕자를 만났던 것 같다. 둘 다 어렸으니 왕자의 고민에 대해서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어서 왕자와의 만남은 그냥 스쳐가는 바람인 듯 그렇게 흘려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의 여행 이야기만 남아 있어서 그에게 여행이 무엇을 찾는 시간이었는지 지구에서 찾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쉰이 넘어 삶의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마음에도 빈 구석이 생겨나고 공간이 넓어지니 다른 이의 고민에도 눈을 돌릴 수 있고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준비가 이제 된 것 같다.   


'어른들은 나에게, 속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보아 뱀 그림일랑은 집어치우고 지리나 역사, 혹은 산수나 문법에 관심을 가져 보라고 충고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여섯 살 때에 화가라고 하는 멋진 직업을 포기해 버렸다' (비행사의 말)

-어른이 돼 보니 무엇이든지 간에 분명하고 확실한 것만이 인정을 받는 세상이더라. 특히 남을 이겨야 내가 돋보이고, 내가 살 수 있는 경쟁이 심한 곳에선 스펙이 그 사람을 대신하는 증명서가 되고 뒷배경이 제2의 실력이 되더라. 그래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대학만을 향해 나가게 만든 것 같네. 예술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한 적도 많은 것 같아. 어린 너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않고 꿈을 포기하게 만든 어른 중 한 명이라 미안하구나.

나도 위 그림은 중절모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B612호를 발견한 터키의 천문학자가 '국제 천문 학회'에 나가 자신의 발견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학자가 입고 있던 옷 때문에 아무도 학자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어른들이란 언제나 이런 식이다. '

-옷이란 깨끗이 입고 마는 것이란 생각은 진부한 논리가 돼 버렸다. 물론 옷이 주는 그 사람의 개성과 감각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명품샵에 갈 때, 물건을 살 때, 사람을 만날 때 옷과 몸매와 얼굴이 무엇보다 더 중요한 세상은 모두를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모습의 유행만을 만들어 놓고 있어. 그래도 겉모습보다는 속이 더 중요하고 값지다는 생각에 나도 변함이 없단다. 그런 어른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남겨서 뭐라 할 말이 없구나.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만약 여러분이 새로 사귄 친구 얘기를 하면 어른들은 "그 애는 몇 살이지? 형제는 몇 명이고? 몸무게는 몇 킬로그램이나 나가니? 아버지의 수입은 얼마야?"라고 묻고서는 그걸로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모든 것을 숫자로 줄 세우고 있게 됐지. 학교 성적부터 아파트 평수, 자가용 등등등. 하지만 숫자로만 표시되는 세상은 좀 우울한 것 같아. 숫자는 너무 냉정하고 정확해. 사람의 행복이 정확하기만 하고 양으로 잴 수 있는 것만은 아니잖아?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행복을 찾는다면 더 좋을 텐데. 그런 어른들의 관점으로 너희들의 순수함을 망치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네.


'바오밥 나무도 어른이 되기 전에는 작은 나무일 거야'

-별을 마구잡이로 해치는 바오밥도 어렸을 때는 작은 나무였을 거야. 네가 걱정하고 눈살찌푸리게 만드는 어른도 예전엔 순수하고 꿈이 많은 어린이였겠지. 경쟁보다는 어울림을 돈보다는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어린이 말이야.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면 이렇게 못난 어른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꽃들은 연약해. 또 순진해. 걔들은 할 수 있는 만큼 스스로를 보호하는 거야. 가시를 가지고 있으면 자기들이 힘센 꽃이 된다고 믿고 있는 거야.'

-나에게 필요 없는 거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비웃거나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장미에게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는 최선이었을 텐데. 내 잣대로만 남을 판단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그 가시만을 생각해서 장미를 미워하거나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겠지? 누구나 자신만의 가시 하나쯤은 있을 텐데 말이야.

'수백만 개 하고도 수백 만 개나 되는 별들 가운데서 하나 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꽃이라면 더 좋겠지만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꽃은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해도 나에게만큼은 정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알겠어. 나에게 부모님이, 나에게 가족이 그런 것이 아닐까?


'꽃의 말이 아니라 하는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했어. 그 꽃은 나에게 향기를 풍겨주고 또 환하게 비춰 주었어. 결코 달아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 가련한 꾀 뒤에 숨은 따뜻한 마음을 보았어야 하는 건데'

-사람을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 같아. 그 사람의 진심을, 그 사람의 내면을 볼 줄 아는 나만의 안경이 필요하겠지. 물론 일부러 속을 감출 필요는 없지만 사람마다 표현은 다른 거니까. 말보다는 행동이 더 쉬운 사람이 있고, 행동보다는 말이 편한 사람이 있으니까. 장미는 분명 널 좋아하고 사랑했지만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으로 그렇게 대했을 거 같아. 소중한 것은 떠나봐야 느낄 수 있는 거니까. 장미의 마음을 알기엔 너도 그땐 어렸던 거 같아. 다시 분명 장미에게로 기쁘게 돌아가게 될 거야.


'만약 네가 날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관계를 맺는다는 건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고, 사랑하는 거겠지.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과 모든 것을 함께 하게 되고, 서로 나누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게 되지 않을까? 그게 길들인다는 거라면 그런 거고. 하지만 한쪽의 일방적인 길들임을 안 되겠지?


'자기가 무얼 찾고 있는지 아는 건 어린아이들 밖에 없어'

-그만큼 어른은 생각할 것도 많고, 욕심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 그 수많은 일들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일에 파묻혀 잊어버릴 때가 많거든.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걸어가는 길이 정말 맞는 것인지 계산하고 두들겨보고 하거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어른들 중엔 묵묵히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단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맞아, 그럴 수도 있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데엔 이유가 있어. 사막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건 사막이 갖고 있는 우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얘기고. 사막이 가지고 있는 건조함과 거친 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게 도와주는 물을 생각한 너의 아름다운 생각 때문이겠지. 나도 무언가를 볼 때 너의 마음을 떠올리게 되고. 그렇게 보고 싶어.



이렇게 난 어린 왕자와 나만의 대화를 계속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가 다른 별들로 여행할 때는 왕자의 입장에서 왕을 만나고, 사업가의 어리석음에 혀를 차고, 행동하지 않는 학자의 모순됨을 느꼈다. 그가 만난 어른의 모습 중에 내가 비춰지는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되고, 나 역시 서투름과 어리숙함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일은 무엇인지. 어린 왕자 속엔 내가 보는 시선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얘깃거리가 많고 다양한 고민을 던져 주었다. 내가 예순이 됐을 때 다시 어린 왕자를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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