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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라 Mar 27. 2023

동물들은 주기만 하고 떠난다.

길고양이를 추모하며

                                                             

-토요일이니까 바닷가로 캠핑 갈까?


날 좋은 휴일에 밀린 업무도 없어, 텐트를 챙겨서 열 살이 된 딸과 근처 바닷가로 가는 길이었다.

앞에서 차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자세히 보니 교통사고를 당한 고양이가 도로 한가운데서 비틀거리다 쓰러지고 있었다.

차를 돌려 비상깜빡이를 켜고 정차한 뒤 내렸다.

치즈가 아주 조금 박힌 백설냥이.

트렁크에 있던 담요를 꺼내 아이를 감싸서 도로 바깥으로 옮겨 눕혔다.

입과 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숨은 쉬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도움을 구하려고 고양이를 키우고 계신 근처 카페 사장님께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후원하던 고양이 보호단체도 연락이 닿질 않았다.

카페가 멀지 않아 직접 가보았지만 휴무 공지문과 함께 문이 닫힌 상태였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단 병원이라도 가보아야겠단 생각을 하고 돌아와 보니 고양이는 기절했다 깬 것인지 눈을 뜨고 있었다.

다시 비상깜빡이를 켜고 차를 세운 뒤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아이는 기절에서 깨어난 게 오히려 독이 된 것인지, 크게 경계하며 하악질을 하더니 튕겨나가듯 도망가 버렸다. 도망가는 발걸음도 절뚝거리는 상태였기에 내가 다가가면 아이의 몸에 더 큰 무리가 될 것 같았다.

아이는 지친 듯 다시 쓰러져 누워버렸고, 나는 더 이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시 차에 올라 운전을 하면서도 "차라리 도로 위에 그냥 두는 게 나았던 것일까" "그럼 고통이 오히려 줄 지 않았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고통 속에서 죽어갈 아이를 생각하니 픽 눈물이 나왔다.


-엄마 울어? 울지 마. 마음 착한 사람이 나타나서 고양이 구해 줄 거야.

딸의 말에 엄마 안 운다고 웃어 보였지만, '그 마음 착한 사람이 되지도 않을 거면서 눈물이나 짜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부끄럽고 싫은 거야'라고 속으로 답했다.


바다에서도 내내 아이 생각이 났다.

한 생명의 고통과 죽음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고, 그 생명이 꺼져가는 상황에서도 그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참 슬픈 일임을 새삼 깨달았던 날이었다.


캠핑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현장엔 내가 사료를 담아 놓아 두었던 종이그릇만 있고 아이는 없었다.

힘을 내서 몸을 일으켜 어딘가 아무도 보지 않는 캄캄한 곳으로 간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다리를 다친 이상 길고양이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리라.

옆에서 딸은 마음 착한 사람이 나타나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간 것이 틀림없다며 좋아했지만, 난 정반대의 결과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며칠 째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처음 아이를 담요로 싸 옮겨 주었던 자리 옆엔 노숙자가 버리고 간 듯한 더러운 쓰레기들이 있었다.

더러운 배낭과 이불, 소변 같은 오물이 든 페트병과 더러운 외투.

누군가 정말 노숙을 하다가 도로 옆 풀숲 속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버리고 간 듯했다.

평생 옷도 입지 않고, 이불도 덮지 않고, 배설물도 자연에 흘러 보내며 저런 쓰레기는 단 한점 남기지 않고 살아가던 고양이는 인간이 모는 차에 치여 인간이 만든 차가운 아스팔트에 쓰러져 죽어간다.


고양이는 차도 도로도 필요 없다. 그저 네 다리를 걷고 뛰며 살다가, 홀로 사냥해 먹을 만큼만 먹고살다가, 깨끗하게 죽음을 맞이하면 되는 존재이다. 아이는 살아가면서도,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어떤 쓰레기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 본질을 가진 깨끗한 동물 하나가 인간으로 인해 사고를 당하고, 인간이 남긴 더러운 쓰레기 옆에서 죽어갔다.


동물들은 늘 인간에게 주기만 한다.

살점을 굽고 회 쳐 먹는 고기로 내어주고, 밭일을 해주고, 경마장에서 오락거리로 달려준다.

인간은 필요하면 동물을 잡아 뿔을 뽑고 피를 뽑고 쓸개를 뽑고 가죽을 벗긴다. 돈이 된다 치면 가두어 놓고 번식시킨다.

동물들은 동물원과 수족관에 갇혀서는 볼거리가 되어주고,

인간이 만든 도로와 자동차라는 위험 가득한 공간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그 위험을 한마디 불평 없이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생존한다.

사이코 패스라는 괴물 같은 인간들에게 먼저 잡혀 학대와 살해를 당하는 것도 동물들이다.

동물들의 희생으로 그 괴물 같은 인간들이 사람을 죽이기 전에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잡히기도 한다.

그렇게 범죄의 방패막이되어 주는 것도 동물들이다.


동물들은 원하거나 불평하는 것 하나 없이 인간들에게 주기만 하고, 희생하기만 하고,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과 지구 입장에서 인간은 바이러스나 마찬가지겠지?

오래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어쨌든, 주책은 그만 떨고,

이름도 없고, 가족도 없을, 기억해 주는 이 하나 없을 그 고양이에 대한 미안함을 작게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추모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기억이 없어질 때까지 생각하고 맘껏 슬퍼해 주는 것.

눈물이 나면 울고, 파고드는 생각과 감정들도 거부하지 않으며 널 위해 충분히 슬퍼할게.


두 번째는 예전에 사두었던 휴대용 스텐빨대를 꺼내는 것.

너와 만난 그날을 기점으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볼게.

처음엔 완벽하진 않겠지만 결국 플라스틱 빨대와 컵을 안 쓰는 사람이 될 거야.  깨끗하고 조용하게 죽어가던 니 옆에 더럽게 쌓여있던 그 인간의 오물과 쓰레기들을 잊지 않을 거야.



사는 날 동안은 신나고 재미있고 대장 같았던, 멋진 길고양이의 삶이었길.

또 마지막 그 순간에 덜 아팠길.


[글빚는변호사 / 김세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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