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변에세이] 더덕무침

의뢰인이 주고 간 선물

by 김세라


50년이 넘는 결혼생활 내내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할머니가 이혼소송을 하겠다고 찾아오셨다. 한눈에도 지난 세월의 고생과 한이 할머니의 구부러진 등과 마른 몸, 얼굴 가득한 주름에 드러났다. 할머닌 남편 몰래 조금씩 모아둔 오만원짜리 지폐 다발을 수임료로 주시면서 "변호사님, 제가 야채 내다팔면서 모은 전 재산인데요. 이렇게는 못 살겠어요. 이혼시켜 주세요"라고 했다.


대부분 이 정도 나이의 할머니들은 평생 폭력과 남편의 바람을 겪었어도 이혼을 선택하지 않는다. 수백번 이혼했어야 마땅한 삶이어도 어느 순간 체념하고 순응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난 이혼을 결단한 할머니가 무척 용기있고 멋있다 생각했다. 기본 수임료에 한참 못 미치는 돈이었지만 이혼소송을 해드리기로 했다.

조정기일 만난 남편 할아버지는 의뢰인 할머니와 동갑임에도 20년은 더 젊어 보였다. 씁쓸했다. 예상한 대로 순탄치 않은 소송과정이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이혼을 했고 소송도 조정으로 잘 끝났다.

하지만 이혼변호사의 일은 이혼을 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가 쫓겨나다시피 나온 집에 두고 온 옷가지와 물건들을 갖고 오고 싶다고 하셔서 난 조정기일 이야기를 꺼내 남편 할아버지 및 그 변호사와 짐을 가지러 갈 날짜를 잡았다. 약속한 날엔 할머닐 혼자 보낼 수 없어 사무장님에게 부탁해 할머닐 태워 같이 가드리고 짐을 싸 나올 때까지 같이 있어 드리도록 했다.

짐을 무사히 갖고 나온 날 할머닌 변호사님께 드리려고 어제 밤새 더덕을 손질해 무치신 거라며 하얀 용기에 가득 담긴 더덕 무침을 사무장님을 통해 전해주셨다.

이런 선물은 잊을 수 없는 선물이 된다. 이혼 변호사는 의뢰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옆에 있는 직업이다.

할머니 건강하시고 이제는 재밌게, 즐겁게 남은 여생 누리세요.


김세라 변호사 / 변호사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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