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교도소 접견을 다녀온 후 단상
한 청년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치어 크게 다치게 했다. 바로 조치를 하고 119와 경찰을 불러 다친 사람을 병원에 가게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스무살을 갓 넘은 이 대학생은 겁에 질려 도주해버리는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 멀리 달아나 차를 세운 뒤 벌벌 떨던 청년은 어머니와 통화한 후 자수했다. 그러나 이미 음주운전과 위험운전, 도주치상까지 너무나 많은 범죄를 저지른 후였고, 경찰서에 자수하자마자 그는 긴급체포된 후 구속됐다.
어머니가 나를 찾아와 변호인 선임을 했다. 피해자와 합의를 해야하는데 이미 자동차종합보험 회사와 자동차 리스 회사에게 수천만원의 구상권 책임을 지게 된 청년의 엄마는 형사합의금 몇천만원을 추가로 구할 여력이 당장은 없었다. 얼마 뒤 열린 첫 재판에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합의하지 않으면 엄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판사의 호통까지 들었다. 피해자가 요구하는 합의금을 구하지 못해 피고인의 어머니가 발을 동동 구르던 그 때 모르는 번호로 내게 전화가 왔다. 10년 전 이혼했다는 피고인의 아버지이다. 아들 소식을 듣고 아버지도 녹록치 않은 형편에 여기저기 돈을 빌려 보겠다고 했다. 서로는 연락하지 않는 오래전 이혼한 이 두 사람, 하지만 구속된 아들의 부모로 이어져 있는 이들은 각자 따로따로 변호인인 내게 연락하며 조금씩 돈을 구할 때마다 알려왔다. 하루는 어머니가 울고 어떤 날은 아버지가 울먹였다. 서로는 연락하지 않으면서 "변호사님 애 아빠한테 조금만 더 구해봐달라고 말해주세요", "변호사님, 00 엄마한테 회사 형님이 얼마를 빌려주기로 했다고 전달해주세요" 라며 나를 통해 한마음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이혼을 해 남남이 되어도 자식 문제 앞에선 합심하여 움직이는 두 사람을 보며 부모란 이런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교도소 접견을 갈 때마다 청년에게 구해진 합의금이나 바깥의 소식을 알려주고 밖에서 모두가 너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정신 차리고 건강 챙기며 지내라 말해준다. 카키색 미결수복을 입은 청년은 고객을 주억거린다. 평생 피해자와 부모님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또 음주운전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오지랖스러운 충고를 추가해보기도 하지만 스무살의 이 피고인이 얼만큼 느꼈는지, 얼만큼 깨달았을지 모르겠다. 교도소 변호인 접견실엔 잠깐동안 변호인에게만 틀어져 있는 선풍기의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합의가 되든 안되든 곧 다가올 판결선고일 이 부모는 10년만에 법정에서 만날 것이다.
그들은 아들에게 내려진 형 선고를 듣고 부둥켜 안고 울까?
기뻐서, 혹은 슬퍼서.
변호사의 에세이 / 김세라 변호사 / 글 빚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