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통역사에 대한 짧은 고찰
수어통역사들은 통역을 다니다 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아 봉사하는 사람인가 봐요?'
'어쩜 이런 것도 도와주시다니 좋은 일 하시네요~'
이상하다.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통역을 하는 전문통역사들은 위와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을까?
서로의 언어가 달라서 소통이 어려우니까 통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우선시 되며
그 누구도 외국인이 불쌍하니까 언어 소통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역사에게 외국어도 할 줄 안다며 멋지다고 치켜세우지, 외국인을 돕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좋은 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이어주는 전문가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들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힌다.
법이 제정된 지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수어를 의미가 담긴 언어가 아니라 손짓으로 보는 인식이 만연하다.
수어통역사를 도움을 주는 봉사자로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들을 부를 때 통역사가 아니라 저기요 혹은 아가씨라고 부르는 호칭이나,
국가적인 행사에 전문수어통역사를 배치하면서도 국가행사라는 이유로 무료로 통역을 요청하는 행동들,,
이렇듯 수어를 언어로 인정하지 않는 시선과 생각들을 곳곳에서 마주하곤 한다.
왜일까?
수어를 언어로 인정하기 이전에 농인들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으로 한정 짓고 장애인이기 때문에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농인은 비록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지만 덕분에 그들의 손끝과 시선의 끝에서 의미가 살아나는 언어를 나누는 존재다.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며 소통을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연한 우리의 언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임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deaf, so what? 의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수어통역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말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수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수어를 아는 우리와 수어를 모르는 당신과의 사이를 좁혀주기 위해서 수어통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영화로 해외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때, 그의 곁에서 통역을 진행한 샤론 최가 한창 인기였다. 그녀가 통역을 할 때 말만 전달하는 통역이 아니라 화자의 마음까지도 상황에 맞게 잘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녀처럼 통역을 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방법을 배우려 하는 것을 보면서 언어와 언어를 잇는 통역이지만 그 통역 속에서 상황에 대한 의미를 전하고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멋진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수어통역 역시 그렇다.
한국어를 수어로 그대로 전달하게 되면 의미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서 농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수어통역의 기본은 문장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다. 그러기 위해서 수어통역사는 각 분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수어, 표정, 의미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지게 통역을 해야 한다.
수어를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손짓만 휘적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수어통역의 과정 속에는 의미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표현하는 지난한 사고의 과정과 노력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그들의 노고를 그저 봉사나 손짓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어를 할 줄 아는 사회라면
청각장애인들이 정보의 한계로 인해서 비장애인들보다 정보면에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고
위급한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쉽게 위험에 처하지 않을 수 있고
비장애인들 틈에서 한 사람의 몫을 충분해 해내는 존재가 될 수 있고
집, 학교, 직장, 시장, 병원, 경찰, 은행 등 언제 어디를 가든 불편함 없이 당신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소수의 사람만 수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소리의 세상과 눈빛의 세상을 잇기 위해서 수어통역사가 꼭 필요하다. 누구보다도 농인들의 삶 가까이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 열심히 일하는 수어통역사는 봉사나 헌신이 아니라 전문통역사로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함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오늘도 세상의 어딘가에서 소리와 눈빛의 세상을 이어 주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그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