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4월 20일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왜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인지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아래와 같은 답을 찾았다.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기념일.'
'4월이 1년 중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어서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둔 것이며, 20일은 다수의 기념일과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한다는 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재활의욕을 고취하고, 재활의지를 부각한다는 내용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1981년 장애인의 날로 제정되기 이전에는 4월 20일이 재활의 날이었기 때문에 어원이 이런 것이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장애인의 날이라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 및 인식 개선을 중점으로 둬야하는 것 아닌가?
재활의욕을 강조하는 내용은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 사회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본인이 사회에 맞추기 위해서 변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로 장애인 차별 철폐를 촉구하는 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장애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을 간다.
치아가 아프면 동네 치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목이 아프면 이비인후과에 가고, 피부가 가렵거나 상처나면 피부과를 가고,,
아프지 않더라도 평소에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 예방차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곳에 병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플 때 언제든지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와 똑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며 존재하는 누군가는
치과 의자로 옮겨 줄 사람이 없어서 치과에서 거부당하고,
병원으로 데려가 줄 사람이 없어서 병원이 아니라 약국에서 자가진단으로 구입한 약을 복용하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체중계로 함께 가거나, 소변 검사를 위해 동행해 줄 이가 없어서
몸무게 측정과 소변 검사를 하는 간단한 건강검진조차도 단 한번을 받지 못했다.
비단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만 불편할까?
이동이 자유로운 청각장애인이라 할지라도 청각장애인이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할 가족이나 수어통역사가 필요하다. 병원에는 수어 가능한 의료인들이 없는 경우가 많고, 서로의 언어가 달라서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언어를 전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플 때 진료를 꼭 받아야 하는 그들임에도 불구하고
아플 때 조차 마음 편하게 아플 수 없었던 그들이었다.
2008년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 제정된 지 어느 덧 1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곳곳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다.
세상에 장애인은 왜 존재하는 걸까?
남자로 태어날지 여자로 태어날지 부를 손에 쥘지 가난을 손에 쥘지 어느 나라 어디에서 태어날지..
이 모든 것들을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것처럼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 역시 선택할 수 없다.
만약 장애인으로 태어나기 이전에 임신중절수술로 없애버리면 이 지구상에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장애는 비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인생을 살다가 삶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선천적인 장애보다 후천적인 장애의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듯이 우리는 삶의 어떤 사건들을 모두 피할 수는 없다.
오늘의 내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상실하여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신체적인 세포의 기능이 약화되어서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신체 건장한 모습을 가진 이들이 정상이고 장애를 가진 이들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언제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비장애인인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가 아니라 장애와 비장애의 범주에 서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언젠가 장애를 가지게 될 자신이나 타인을 위해서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조금 더 쉽게 노력할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장애인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간단한 병원 진료조차도 쉽게 볼 수 없는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촉구할 것이다.
이전과 달리 차츰 달라지는 세상을 느끼며 우리의 작은 목소리와 행동이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살기 편한 나라는 비장애인들도 살기 편한 나라다.
언제 어디서 누가 장애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리는 경험을 한 당신이나 그 누군가가 그 사건으로 인해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유난히 햇살이 따스한 어느 봄날처럼 같은 하늘 아래 서있는 그들의 삶에도 따뜻한 햇살이 비춰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