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를 배우다.
청력 검사 그래프는 바닥을 향해 내리치고 있었고, 보청기를 하든 하지 않든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이제 앞으로 영영 듣지 못하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던 때
수어를 배우기로 했다.
부모님께 수어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누구보다도 수어를 배우는 것을 강하게 지지해 주던 나의 아빠
그는 당신의 딸이 듣지는 못하더라도 음성 언어도 하고 수어도 할 줄 아는 것을 통해서
소통의 제한으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소외되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낯선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찾아간 대구청각언어장애인복지관.
그곳에 찾아온 사람들의 동기는 저마다 달랐다.
나처럼 수어가 필요해서 찾아온 사람,
가족들과 원활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
배워두면 언젠가 업무적으로도 쓰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배우는 사람,
현재의 직무와 관련이 있어서 배우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하나 둘 손으로 말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우기 시작했다.
손으로 말하는 것을 직접 배우는 모든 과정들은 하나같이 생경했다.
보이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은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것과 같았다.
손으로 ㄱ ㄴ ㄷ ㄹ 등 글자를 표현하는 '지화'를 잘하기 위해서
이름을 허공에 써보고, 길을 지나갈 때마다 간판에 쓰인 글자들을 지화로 써보곤 했다.
지화에 조금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나서는 수어 단어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단어마다 이 단어에 맞는 수어가 뭔지 찾아보고는 했고
책을 읽다가도 이 문장은 어떻게 수어로 표현하는지 생각했다.
귀로 듣고 입으로 표현하던 것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바뀐 것일 뿐,
모두 어릴 적 한글을 배우던 과정과 같았다.
언어를 잊지 않고 바로 떠올리기 위해서 정말 미친 듯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수어를 배우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 사실.
'대화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구나?'
청인들과의 대화에서 그들의 입모양으로 알아야 했던 수많은 말들은
하나같이 글자가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서 언제 사라질지 몰랐다.
놓칠까 봐 두 눈으로 바삐 뒤쫓고 흐릿한 글자들을 붙잡기 위해서 애써야만 했다
어떤 말들은 너무 흐려서 보이지 조차 않았고 그럴 때면 나 역시 그런 희미한 말들에 파묻혀 함께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수어를 배우고 농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손짓과 표정에서 전해지는 모든 말들은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같았고 그것들은 마치 무지개 빛처럼 형형색색으로 눈부셨다.
그들이 지금 밖에 비가 온다고 이야기를 해줄 때면
나는 창 밖을 내다보지 않고서도 비가 추적추적 오는지, 쏴 하며 오는지, 하늘 뚫린 듯이 퍼붓는지
그들의 표정과 손짓으로도 알 수 있었다
수어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생동감이 넘치는 언어였던 것이다.
수어를 모르던 때, 농인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빠르게 손으로 서로의 말을 주고받았고 그 틈에서 나는 그저 '멀뚱멀뚱'
이 모습은 마치 청인들 사이에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서 '멀뚱멀뚱'
나는 잘 들리는 청인도 아니고 수어를 잘 아는 농인도 아닌 채 어딘가의 경계에서 애매하게 걸쳐진 인간일 뿐,
그들 곁에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감을 느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멀뚱멀뚱하게 서 있는 내가 되기 싫다는 그 절실함,
이것이 수어를 더 열심히 배우게 해 준 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3년의 시간이 흘렀고, 비로소 나는 청각장애인 수어통역사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모르는 수어가 많아서 통역을 할 때면 헤맨다
통역을 하면 할수록, 수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알아야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평생 공부를 하겠구나'라고 생각한다.
농인도 아닌 청인도 아닌 그 어딘가에 머무르지 않음에,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그런 인간으로 머물러 있지 않음에 감사한다.
당신이 느끼는 것이 나와 같은 것이라면
언어를 배움으로써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발견하는 순간을 느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