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소리가 없었던 찰나의 순간에 대한 기록

by 리카

없었다.


늘 놔두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그 기분은 언제나 반갑지 않은 묵직한 불안함과 함께 찾아온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동그란 모양으로 생긴 것이라 혹시나 고양이들이 발로 장난치다가 구석으로 들어갔나?

그러나 소파 밑에도, 의자 밑에도, 책상 아래에도, 냉장고 아래조차도 없었다!


이 작은 물건이 자성을 띄는 것이라 혹시 다른 것에 붙어버리는 바람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정말 잃어버리게 되면 그것을 재구입하는데 동그라미 몇 개가 붙은 돈이 필요한지,

얼마간의 시간 동안 소리 없이 살게 될 것인지,,


온갖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뭘 찾냐고? 인 공 와 우.

과거의 나의 분신이 보청기였다면 지금은 인공와우다.


머릿속 자석과 기기 속 자석 덕분에 뗐다가 붙일 수 있는 것으로,

이것이 있어야 달팽이관에 소리가 전해져 들을 수 있다.


하필이면 오늘..? 출근 어쩌지..?


무거운 마음 한가득 가지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다시 와우를 찾으러 가는 길,


초조한 내 마음과 달리 세상은 느리게 흘러갔고 마음은 시끄럽게 요동치는데 주변은 적막함이 에워쌌다.


기억을 더듬고 온갖 집안을 헤집어 겨우 찾아낸 작고 동그란 그것..!

그제야 비로소 미친 듯이 뜀박질하는 심장이 제자리를 찾았다.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뺨을 스치는 바람도, 인도를 걷는 수많은 걸음들도, 빠르게 달리는 차들조차

모두가 그대로지만 조금 전의 나의 감각과 지금의 감각들이 묘하게 달라졌음을 인지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귓가에 스치던 바람 소리를

점차 차가워지는 두 볼과 흩날리는 머리카락으로 느꼈었고,


멀리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에 바삐 움직이던 발걸음이

전광판 속 지하철 도착 안내 그림을 보고 빨라졌었고,


삑! 소리와 함께 스쳐 지나가던 개찰구가

카드를 찍고 노란색 불빛이 뜨는 것을 보고서야 지나갈 수 있었고,


"이번 역은 반월당, 반월당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휴대전화에 내리 꽂힌 시선 사이로 귀에 박히던 안내음성이

고개를 들어 지하철 저 끄트머리의 전광판 속 글자로 봐야 했었던,


고요함 자체였던 순간들의 감각과 소리로 가득 찬 순간들의 감각이 이토록 달랐음을.




'소리'


이것의 있고 없고의 차이로 인해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그 행동을 하는 동안의

모든 감각이 에서 으로 옮겨가는 경험은 정말 경이로웠다.


소리 하나가 없어졌을 뿐인데 내 행동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


와우를 잃어버린 시간은 고작 한 시간.

60분의 시간 동안 나는 시선으로 인지하는 세상과 소리로 인지하는 세상을 함께 살았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 순간들을 불편함의 순간이라고,

고요함의 순간이 영원하다면 그것이야말로 불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불행과 행복을 가르는 순간들이 아니라

그저 이런 삶도 존재함을 다시 한번 더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시 듣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구나.'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어느 하나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이라 여겨왔지만

사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었다.


모든 순간과 존재는 감사함이었고 기적이었다.


찰나의 순간동안 소리 없는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 삶을 만들어내는지 다시금 실감하며

소리가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을 동시에 살 수 있음에 감사했다.


당연한 것 없는 이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 수 있게 하는 모든 것들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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