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와우 수술기 (2)
차디찬 수술실에 너무 오래 누워있었는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정말 아주 많이 추웠다.
귓가는 높은 곳에 오른 듯이 멍했고,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으며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왼쪽 귀에는 커다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어서 머리가 무거웠다.
'아, 진짜 내가 수술을 하긴 했구나'
몸속에 남아있는 마취기운을 빼내기 위해서는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야 했다.
잠들지 않고 계속해서 숨을 내뱉으며 입가에 고이는 피를 뱉어냈는데
내게 이렇게 많은 피가 있는지를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는 경험이었다.
걸으면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으니 복도를 걸어 다니라는 선생님의 말에 종종 복도로 나섰다.
자연스럽게 들이마시고 내쉬던 숨들이 오늘따라 왜 이리 버거운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들이 왜 이리 무거운지, 있는 기운이란 기운은 다 빠졌다.
입원 기간 내내 붕대로 머리를 오래 감싸고 있어서 그런 걸까? 내내 오른쪽으로 잠들어서 그런 걸까?
어느 순간 오른쪽 두피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리에만 저릿저릿하게 나던 쥐가 생애 처음으로 머리에 나다니 수술 덕분에 별 경험을 다했다.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누워서 자고 싶었고,
들숨 날숨이 더 이상 의식적이지 않았으면 했고,
병실 복도를 걷는 내내 나의 발걸음이 가벼워지기를 바라는 순간들에서
별일 아니었던 일상이 그리웠다.
역시 인간은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서 자의든 타의든 잠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우리 딸"
퇴원을 앞두고 붕대를 풀던 날,
무슨 소리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웅성웅성거리는 소리들 틈으로 아빠의 입모양과 함께 아득히 먼 곳에서 아빠의 목소리 들었다.
'아빠 목소리 이랬었구나?'
벅찼다.
확실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고,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기억조차도 나지 않던 아빠의 목소리를 더듬더듬 떠올릴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날,
나뭇가지에는 홍매화가 곱게 피어있었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눈부셨다.
수술을 하고 난 후, 바로 잘 들리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잃어버린 소리를 다시 찾으려면 훈련이 필요했다.
머릿속에 칩은 심겼으니 이제는 어음처리기 장치를 해야 한다.
머리에 갖다 대기만 하면 착 달라붙던 그것은 나에게 보청기 다음으로 생경함을 선물했다.
와우를 처음 착용했을 때는 사실 머리가 많이 아팠다.
낯선 소리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면 많이 시끄러웠고, 누군가 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제발 모두들 조용히 해줘!'
고요함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소리란 적응이 필요한 존재였다.
매달 병원에 가서 소리를 내게 맞게 조절하는 매핑 과정을 거쳐야 했고
매핑을 하고 난 후에는 또다시 이 데시벨에 맞는 소리에 적응하는 과정이 있었다.
어느 날은 수술 부위가 붓는 바람에 와우를 착용하기 힘들어서 빼놓기도 했고,
어느 날은 세상이 핑 돌아서 제대로 서있기 힘들었다.
그저 눈을 뜨고 감는 모든 순간에 듣는 것이 자연스러운 당신들과 달리
나에게는 매일매일 일상 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무엇인지 분간해 내고 몸으로 느끼고 배우는 것이 숙제였다.
시곗바늘 소리가 째깍째깍 돌아가는 것이 들리고, 밖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크다고 느끼고,
퇴근 후 반기는 고양이의 고롱고롱 울음소리를 느낄 수 있고, 취사가 완료되었다고 치익 우는 소리를 들으며 하나 둘 소리를 배웠다.
그리고 언어치료를 위해서 찾은 곳에서는 상대의 입모양을 보지 않고 듣는 연습을 했다.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이 글자를 하나씩 배웠다.
'차' '카' '타'는 들으면 들을수록 똑같이 들렸고, '오' '우'는 왜 이렇게 구분이 어려운지
선생님의 입모양을 보고, 입김을 느끼고, 목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끼면서 소리를 구분했다.
"밥 먹었어?" "밥 먹었어."
늘 질문을 종이 위 물음표와 상대의 표정으로 파악하던 나에게 당신들은 소리로 파악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노란 개나리가 피고 지고, 아스팔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뜨거운 순간을 지나
나무가 알록달록 노랗고 붉게 물들었다가 그 위에 소복이 하얀 눈이 쌓이는 시간들이 흘렀다.
다시 홍매화가 피는 어느 날.
매달 만나던 의사 선생님의 미소는 일 년에 한 번만 보게 되었고,
전화기 건너편 나직한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아침 출근길 반갑게 우는 까치를 보며 웃음을 짓게 되었으며,
저만치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뒤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소리가 내게 선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