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와우 수술기 (1)
소리가 사라진 세상은 생각보다 내게 큰 불편함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투명한 물 위에 한 방울의 빨간 물감을 톡 하고 떨어뜨렸을 때,
그 빨간 물결이 잔잔히 퍼지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빨간색 물이 되듯이
소리 역시 내게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점 희미해졌기 때문일까?
그저 소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나에게 이제야 그때가 왔음을 알게 할 뿐이었다.
조용한 세상에서 나의 삶은 여느 때와 같았다.
내 시선의 끝은 언제나 당신의 눈이 아니라 입술이었고,
오랜 시간 당신의 이야기를 쫓으려 애쓰기 위해 내 두 눈은 자주 아릿했고,
기척도 없었던 당신이 불쑥 내 옆에 등장할 때면 심장이 자주 내려앉았으며,
저만치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톡 하고 건드는 작은 손짓이 나를 뒤돌아보게 했다.
그런 나에게 '인공와우 수술'이라는 선택지를 내밀곤 했던 부모님.
하지만 그때의 나는 수술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가난의 무게는 나에게 세상을 일찍 알게 했고, 그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무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큰 비용을 들인 수술의 결과가 잘 들을 수 있는 확률은 50 : 50
들을 수 있는 확률이 90퍼센트도 아니고 반반의 확률이라니 너무 큰 도박이지 않은가?
고요함 속에서 내 두 눈과 두 손으로 사람을 만나고 커피를 만들며 세상을 살았고,
세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인생에 대해 하나 둘 배워가면서
나의 귀와 입이 되어주던 그들의 불편함이, 나의 한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고객 응대뿐만 아니라 사무업무도 처리해야 하는 그들은 나를 혼자 남겨둘 수 없어서 업무를 볼 수 없었고,
언제 고객이 들어와 주문을 할지 모르니 화장실도 마음 편하게 가지 못했다.
어쩌다 나 혼자 덩그러니 있을 때 주문을 기다리다가 나가버리던 고객의 뒷모습과
나의 발음 탓일까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오지 않는 고객들에게 다시 한번 더 목 터져라 콜링을 외쳐주던 그들의 옆모습을 보면서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가 되어야 할 이유를 찾았다.
통장에 쌓여가는 동그라미들을 보면서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문드문 들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 자리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무엇이 되든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아주 오랜만에 내디딘 병원은 여전히 낯선 공기로 가득했다.
수술을 하기 위한 검사란 검사는 어찌나 많은지,
나는 온종일 숫자가 적힌 방들을 여기저기 옮겨 다녀야 했다.
어떤 방에서는 VR기계처럼 생긴 까맣고 무거운 것을 쓰고 눈동자로 빨간 점을 계속 따라가야 했고,
어떤 방에서는 가만히 누워서 머리와 손에 주렁주렁 전선이 달리기도 했고,
어떤 방에서는 어린 시절 나를 외롭게 하던 네모 박스를 만났다.
다만, 그때와 달리 소리는 더 이상 나를 향해 달려오지 않았고 내 손에 쥐어진 버튼은 단 한 번도 눌려지지 않았다.
수술하기 전날 밤,
수술부위를 이발기로 밀기 위해서 의사 선생님들이 병실로 들어왔다.
귓가에 느껴지는 진동과 함께 바닥에 차곡차곡 쌓이는 머리카락들을 보면서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입대를 앞둔 청년들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떨리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교차하는 이 순간,
이 수술은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까?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지만 고개를 휘릭 돌리면 민머리가 나타나던
거울 속 내 모습은 참으로 낯설었다.
물 밀듯 밀려오는 복잡 미묘한 온갖 감정들을 애써 감추려 더 밝게 장난쳤다.
"아빠! 이거 봐! 쑥~대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