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보청기

어린 날 나의 분신, 나의 전부였던 것에 대한 이야기

by 리카

유치원 때 찍은 사진들을 쭈욱 훑어보다 보면 '이때의 나는 참으로 장난꾸러기였네'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사계절의 끝자락에 찍은 사진 한 장이 눈에 밟혔다.

도톰한 빨간색 무늬 스웨터에 진한 멜빵치마를 입고 파란색 스타킹으로 화려함의 정점을 찍은 패션.

옷도 옷이지만 장난기 가득하게 앉아있는 나의 모습에 미묘하게 달라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 귀에 올려져 있는 살색의 무언가.

어쩌면 나의 평생의 분신이 될 물건을 이때즈음에 만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그것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다.

주위 친구들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친구들이 "귀에 그거 뭐야?"라고 물어보는 것이 낯설었다.

친구들과 내가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보청기를 하는 날 보다 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병원에 간 날, 선생님은 나를 앉혀놓고 보청기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셨다.

친구들이 물어보는 게 싫었다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싫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새로운 보청기를 받게 되었다.

이것은 고리로 되어있지 않고 아주 동글동글하게 생겼는데 이전보다 훨씬 작은 크기여서 귀에 착용하고 있으면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귀에 걸리는 것이 없이 귀 안쪽으로 쏙 들어가니 어린 나의 마음에도 쏙 들어왔다. 이제 앞으로는 보청기 잘 착용하고 다니겠노라 웃으며 선생님과 약속했다.


그 후로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그거 뭐야?"라고 물어보면 "이거? 보청기야! 너도 해볼래?"라며 귀에 있던 것을 빼서 친구에게도 끼워주는 소녀가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 쓰이는 것 아닐까?


"어때? 나는 이거 하면 소리가 더 잘 들려!"




눈 떠있는 모든 날, 모든 시간 동안 내 귀에는 항상 보청기가 함께했다.

씻거나 수영하는 것처럼 물이 닿는 순간들은 보청기를 빼놨었는데 그럴 때면 세상 소리들이 물에 잠긴 듯이 아득히 멀게만 들렸다.


가느다랗고 높은 여자 목소리보다는 굵고 낮은 남자 목소리가 조금 더 잘 들렸던 나는,

엄마의 노력 덕분에 초등학교 때는 언제나 남자 선생님이 담임이셨고, 늘 내 자리는 선생님 바로 앞이었다.


그러나 보청기는 나에게 소리는 주었지만 의미를 알려주지는 못했다.


선생님들의 말소리는 알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고, 그들이 하는 말소리들의 의미를 귀가 아닌 눈으로 읽을 때 비로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나의 시선의 끝은 언제나 그들의 눈이 아닌 입술이었다.


듣는 것보다 눈으로 읽는 것이 더 익숙한 나에게 가장 두려웠던 순간이 언제냐 묻는다면

선생님의 낮게 깔린 목소리와 옆자리에 앉은 짝꿍과 친구들이 모두 눈 감은 순간이다.

누구나 학창 시절 한 번쯤 겪어봤을 이 시간,

그 분위기가 무서웠던 것보다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읽어낼 수 없다는 것, 도대체 언제 눈을 떠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이처럼 나에게 소리는 듣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었다.


귀로 소리를 인지하고 눈으로 의미를 읽어내던 나날들이

세월이 흐를수록 귀보다는 눈으로 소리와 의미를 인지하는 순간들이 점점 늘어났고,

청력검사할 때 나오는 그래프들은 자꾸만 바닥을 향해 내리쳤다.



스무 살이 시작되던 어느 날,

좋든 싫든 나의 어린 날 오랜 시간 동안 나와 함께 해준 보청기에게 안녕을 말했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소리 없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안녕, 나의 보청기.

이전 01화잘 들리지 않는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