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짧은 이야기
"너는 어쩌다가 안 들리게 된 거야?"
누군가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던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정말 조심스럽게 건네는 나를 향한 궁금증.
처음 만나는 이들 대부분이 내게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저마다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가 다르듯이 저마다 장애를 갖는 이유도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어릴 적 고열로 인해 청력을 상실한 것 일수도 있고,
사고로 인해 상실할 수도, 노화로 인해 안 들릴 수도 있다. 참 다양한 원인과 사연이 존재한다.
부모님께 '나는 언제부터 안 들렸어?'라고 여쭤보면 '글쎄?'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것 보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 생애에 오른쪽 귀로 무언가를 들었던 적은 없었다.
늘 나에게 소리는 왼쪽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어릴 적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만화 속 친구들은 언제나 시끄럽게 재잘댔지만 뜻을 알기 쉽지 않았고
재잘거림을 쫓다가 뒤돌아보면 화가 난 엄마가 서 있곤 했다. 어쩌면 그 재잘거림 속에서 엄마의 외침을 놓쳤기 때문이지 않을까.
언제 장애를 판정받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의사 선생님과 아주 길게 이야기하던 부모님의 모습, 분명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 같은데 무슨 이야기인지는 잘 몰라서 끝없이 길게 늘어선 병원 복도를 바라보았던 기억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대구에 있는 가장 큰 시장인 서문시장 바로 옆에 위치한 대구동산병원을 자주 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 갈 때면 나는 언제나 커다랗고 두꺼운 문으로 닫힌 네모난 박스 안에 들어가야 했다.
그 큰 네모 박스 안은 구멍이 촘촘히 난 벽면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곳에는 작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 앉아 건너편을 마주 보면 의사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고 네모난 유리창이 있었다.
상자 안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의 생소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을 마주하던 의자는 반대로 돌려져 있어서 내가 앉아서 바라본 시야는 구멍이 송송난 벽면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으니 선생님께서 나의 두 귀에 헤드셋과 꽉 조이는 무언가를 씌어주셨는데 하나씩 씔 때마다 나의 머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낯선 촉감과 묵직함을 느끼기도 전에 나의 작은 손에는 빨간색 버튼이 들려졌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선생님은 내 시선에 맞춰 앉으시고 내 손으로 버튼을 누르며 또박또박 이야기하셨다.
"소리가 들리면 이렇게 누르는 거야."
선생님이 나가시고 그 네모난 박스 안에서 나 홀로 앉아있을 때, 얼마간의 고요함 속에서 갑자기 낯선 소리들이 사방에서 나를 향해 울렸다. 그 소리들은 '삐!' '삐-익!' '뚜우-' '삑!'과 같이 알 수 없는 소리가 나는가 하면, 뱃고동 소리 같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소리들은 맹렬한 기세로 귀를 때리는가 하면 너무 멀리서 들리듯 아득했다. 간혹 귓등으로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아마 헤드셋과 함께 귀에 올려진 그 무언가가 울리는 것이리라.
작지만 내게는 너무 큰 네모박스 안에서 홀로 들리는 소리들을 잡아내려 애쓰는 시간들이
어릴 적에는 그저 무서웠다.
어느 날은 혼자 들어가기 무서워서 떼를 쓰다가 아빠와 함께 들어갔는데,
내 손을 꼭 잡아주던 아빠의 따뜻한 손과 애정 어린 눈빛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랑 같이 병원을 다녀올 때면 늘 엄마는 내게 병원 옆 롯데리아에 가서 불고기버거를 사주셨다
그것은 내 어린 날의 작은 추억이자, 병원을 조금 더 즐겁게 다니길 바라는 엄마의 작은 배려였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김없이 찾은 병원,
그날 나의 눈앞에는 난생처음 보는 물건이 놓여 있었다.
'내 귓속 모양이 이렇게 생겼나?'싶게 잘 만들어진 작은 실리콘은 말랑했고 귀 안에 끼우니 귓속이 꽉 막힌 느낌이 참 이상했다. 생경한 느낌도 느낌이지만, 또 다른 놀라웠던 사실은 이걸 하니까 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렸다는 것이다. 신기했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버튼은 위로 올리면 소리가 들리고 아래로 내리면 소리가 사라졌다.
'드르륵드르륵' 올렸다 내렸다 할 때 그 휠의 느낌은 꼭 톱니바퀴를 돌리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보청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어디를 가든지 꼭 함께 하던 나의 보청기.
낯선 누군가의 물음에 내가 이렇게까지 길게 대답한 적은 없다.
그저 "나? 원래부터 안 들렸어."라고 대답해 왔다.
그렇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들리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왼쪽은 약간 들리고 오른쪽은 완전히 들리지 않는 그런 상태.
그날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청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소녀'
이 삶은 참으로 지난했다.
숱한 삶 속에서 나는 수많은 한계와 차별을 느꼈고 그 속에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내가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마주하는 세상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세상을 조금씩 내가 써내려 가는 글을 통해 변화시키고 싶다.
지난날의 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현재의 당신이나 새로이 태어날 누군가가 차별로 인해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가득 담아 글을 써 내려간다. 내 글로 그대들의 상처받은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길 바란다.
어쩌면 내가 쓰는 글들은 지난날 상처받은 나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한 글자씩
한 단락씩
써내려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작은 마음들이 그대들에게 닿아 있지 않을까
앞으로 써 내려갈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나의 작은 바람이 그대들에게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