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지기를
청각장애인 자녀가 수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
청각장애인이 태어났다.
말을 해야 할까? 수어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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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부모들은 당신들의 자녀가 험한 세상을 잘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
우리 아이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렇기에 구어냐 수어냐 선택의 기로에 설 것도 없이 당연히 수어보다는 음성언어를 가르칠 것이다
어쩌면 아이가 청력이 살아있으면 인공와우 수술을 진행시켜 주는 것은 물론이다.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할 때, 뒤에서 자전거나 차가 오는지 알아차리기 위해서, 집 앞에 누군가 도착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고양이가 배고프다고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릴 때조차도 소리가 필요하다.
이 모든 순간들이 당연한 비장애인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소리 있는 세상에서 살기 바라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수술을 시켜주고 음성언어를 교육하려 하는 것임을 잘 안다
이 선택으로 아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고, 음성언어를 구사하고, 외관상으로 비장애인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자란다. 여기까지가 요즘 태어나는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밟는 절차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 역시 그랬듯이.
+) 알아두기.
청각장애인들의 세계에서 완전히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여서 '수어'를 기본 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은 '농아인', '농인'이라고 일컬으며, 비장애인들처럼 100퍼센트 다 듣지 못하지만 약간 들을 수 있고 '음성언어(구어)'를 기본 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은 '구화인'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비장애인들은 '청인', '건청인'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간혹 수어를 사용하면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말을 잘 못하게 될까 싶어서 수어 사용을 금지하는 부모가 존재한다. 어쩌면 들을 수 있으니까 수어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청력을 잃었다가 수술 덕분에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함 그 자체였기에 누구보다도 듣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잘 안다
그러나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수어 자체를 배우지 않게 한다는 것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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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각장애인이 보청기를 착용해서든 인공와우 수술을 해서든, 보조기기를 활용하여 듣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는 보조기기를 통해서 소리가 커지니까 잘 들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소리만 인지할 수도 있다. 저마다 청능이 다르고, 보조기기들은 말 그대로'보조'를 해주는 것이지 완전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들처럼 100퍼센트 들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농아인들은 수어를 배우고 수어를 통해서 농아인들과 인간관계를 확립하고 사회성을 발달시킨다. 하지만 구화인들은 음성언어를 통해서 비장애인들 틈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수어를 몰라서 농인들 틈에서 소외되기 쉽고, 구어를 구사하되 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서 때때로 엇나가는 경우가 생긴다. 그로 인해 청인들 틈에서도 벽을 느끼기 쉽다.
이러나저러나 애매한 위치의 구화인들.
같은 구화인을 만나더라도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동일한 장애를 가졌다는 동질감은 있지만 서로가 하는 말을 서로가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참 많이 봐왔다.
잘 듣지 못해서 청인들 틈에서 소외되고 수어를 못해서 농인들 틈에서 소외되고,,
이도 저도 아닌 채 오랜 세월 스스로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해서 소극적으로 자라온 이들을.
이들이 자기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스스로의 의사를 제대로 잘 전달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수어는 필요하다
농인을 만났을 때 자기 이야기를 표현함으로써 소외되지 않기를,
그리고 같은 구화인을 만났을 때 수어로 서로가 조금 더 잘 소통을 하기 위해서라도.
청각장애인 아이가 너무 어릴 때는 부모가 선택을 대신하여 들을 수 있게 되든 없든 선택권이 없었겠지만,
그 아이가 자라고 의사소통을 시작하게 되면 수어를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어를 배울지 구어를 유지할지 무엇을 선택하든 그 아이의 선택이 존중되어야겠지만 부모로서 수어를 배우는 것을 막지 않았으면 한다.
요즘은 의사를 표현하려는 욕구는 강하지만 언어를 배우지 못해서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3세 이하의 어린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베이비사인(Baby sign)'이 인기가 높다. 아이와 소통하고 싶어 하는 마음에 사용하는 베이비사인은 부모와 교감을 높여주고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잘 표현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어를 배움으로써 세계가 확장된다.
소통을 위해서 베이비사인이 존재하듯, 수어를 통해 아이의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지기를 바란다.
영어를 배우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세계가 확장되듯이 수어를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들을 통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아이가 많아졌으면 한다.
이도저도 아닌 아이가 아니라 수어도 할 줄 알고, 말도 할 줄 알고, 들을 수도 있는 아이로 성장하는 아이가 더 많아지길, 그들이 더 이상 소외되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