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는 세계공용어인가요?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일본어 등 각국의 언어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되면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 하지만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거주한 적이 있거나, 그곳에 친구가 있어서 자주 대화를 할 일이 많지 않은 이상 우리가 다른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어를 모르지만 일본에 가서도, 베트남어를 모르지만 베트남에 가서도 화장실을 찾아가고 주문을 하고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세계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영어로 된 글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내가 영어를 조금 알고 그 나라의 사람도 영어를 조금 알고 있다면 우리는 같은 언어로 소통을 할 수 있다.
세계공용어로 쓰이는 영어 덕분에 다양한 언어를 알지 못하더라도 하나의 언어만 제대로 알면 많은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수어는 세계공용어일까?
청각장애인들이 수어를 배웠을 때 의사소통이 조금 더 원활해진다는 것은 전 세계 공통적이지만,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문화권 속에서 자라다 보니 사용하는 수어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수어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본에 가면 일본 수어를 사용해야 하고 미국에 가면 미국 수어를 사용해야 그 나라의 농인들과 소통이 가능하다. 즉, 수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수어는 세계공용어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나라마다 수어가 다르다면 농인들은 일본에 농인 친구가 있다면 일본 수어를, 베트남에 농인 친구가 있다면 베트남 수어를 배우는 식으로 수어를 배워야만 할까?
물론 각 나라의 수어를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영어가 세계공용어로 쓰이는 것처럼, 수어에는 '국제수어'라는 수어가 따로 존재한다.
각국의 농인들이 모여서 존재하는 단어에 맞게 어떤 수어가 좋을지 의논하여 결정된 국제수어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이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국제수어를 활용하여 쉽게 대화가 가능하게 해 준다.
국제수어는 점차 인터넷이 발전하고 빠르게 퍼지는 SNS 덕분에 더욱 접하기 쉬워졌는데, 이는 세계화가 이뤄지는 시대에 발맞춰 많은 농인들이 국제적인 교류가 가능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가오는 2023년 07월 11일부터 7월 15일까지 제19회 세계농아인연맹 세계대회(World Federation of the Deaf_ 이하 WFD) 행사가 제주도에서 개최된다. 4년마다 열리는 WFD가 올해는 한국의 제주도에서 열린다고 하니 전국의 농아인협회에서 국제수어교육을 실시하는 곳이 많아졌다.
덕분에 국제수어를 배우는 중인데, 역시 해외로 떠나거나 해외에 거주하는 농인을 알고 있지 않다 보니 배움의 속도가 매우 더딘 편이다. 3개월째 '배우고 잊고, 배우고 잊고'를 반복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국제수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고장 난 로봇처럼 머릿속 국제수어 단어를 찾아 헤매느라 바쁘다.
하지만 이전에 국제수어를 전혀 몰랐을 때는 관련 영상을 보면 내가 보는 것이 언어인지 그저 손짓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배우고 나서 보니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흐름을 보면서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해졌다.
점차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국제수어를 알고 모르고의 차이가 얼마나 큰 지도 종종 느끼고 있다.
한국수어를 배우기 이전의 나는, '잘 들리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못 듣는 것도 아니고 대체 나는 뭐 하는 인간인가?' 하는 의구심에 똘똘 뭉쳐있다가 수어를 배우고 난 후에는 '나는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이야!'라고 정체성이 확립이 되었다면, 국제수어를 배우고 난 후의 나는 '다른 나라의 농인들을 만나게 되면 당황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어! 그러다 보면 점차 나의 세계가 더욱 넓어질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어졌다는 점이다.
해외 농인 친구들이 많아서 국제수어 능력이 빠르게 향상되고, 다양한 나라를 방문하여 그곳에 있는 친구들과 소통하는 농인 친구들을 볼 때면 그들의 넓은 세계가 참 멋져 보인다. 언젠가 나에게도 해외 농인 친구들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오늘도 열심히 국제수어를 배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수어를 배우고, 국제수어를 통해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농인들이 점차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