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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 Jun 27. 2023

이게 무슨 말인지도 몰라?

농인들의 문해력에 대해서..

독서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따라서 비장애인들의 문해력 수준 정도는 다양하다. 특히, SNS의 발달로 인해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이 글보다 더 익숙한 요즘 학생들의 경우에는 '이 단어를 모른다고?' 싶을 정도로 문해력이 많이 낮아져 있어서 꽤 크게 이슈가 되기도 했다.


문해력은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문해력은 단순히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일상에서도 문해력이 필요한 순간들이 많다. 예를 들면 어떤 행사를 참여하고 난 후에 설문조사를 할 때, 문자로 타인과 소통을 할 때, 병원에 갔을 때 간단한 문진표를 작성할 때처럼 우리 일상의 곳곳에는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때가 생각보다 많다. 그렇기 때문에 문해력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능력이다.


문해력, 과연 농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글을 읽을 줄 아는데 무슨 말인지 왜 모르는 거죠?"


하루는 영상전화로 통역 의뢰를 요청한 농인분이 계셨다. 그분이 진료를 보기 전에 문진표를 작성하라고 종이를 받았는데 도저히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서 통역을 요청하신 것이다. 이에 대해 간호사분이 곁에서 기다리고 계셨기에 글의 의미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해드려야 한다고 대기하는 상황에 대한 양해를 구했더니 되돌아온 대답이다.


농인들은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만 다를 뿐, 겉으로 보았을 때 누가 봐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한글을 읽고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농인의 문해력은 청각장애의 정도에 따라 듣기와 말하기 능력이 달라지는 것처럼 문해력 역시 평소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의학이 발달하고 일반 학교를 졸업하는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요즘 청각장애인 아이들은 국어와 음성언어를 접할 기회가 많으니 문해력이 다소 높은 편이지만,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의 경우 글과 음성이 아니라 두 눈으로 보는 수어로 소통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어에 대한 문해력이 낮은 편이다.


"수어는 그저 한국어를 손으로 바꾸면 그것이 수어 아니냐? 수어를 사용하는 것이랑 한국어를 이해 못 하는 것이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어는 단순히 한국어를 손으로 바꾼 것에 그치지 않는다. 수어와 한국어는 엄연히 문법과 체계가 다른 언어이기 때문이다.


'여건', '배경', '형편', '상황'처럼 한국어에는 같거나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가 무수히 많지만 수어는 의미가 같거나 비슷한 경우에는 표현하는 수어 단어가 하나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하다'와 '근무'는 다른 단어,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런 경우를 수어로 표현할 때는 '일하다'의 의미를 지닌 수어만 사용하는 것이다. '이체'와 '송금' 역시 단어가 다르지만 수어는 '돈을 보내다'라는 표현 하나만 사용한다.


이렇다 보니 농인들이 "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라는 문장은 자주 접하였던 단어라서 비교적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없지만, "근무하기 힘든 여건입니다."라는 문장을 만나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7)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 성경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그리스도는 무엇이고 예수는 무엇이고 어떻게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농인들 역시 낯선 단어와 문장을 읽었을 때 이런 생소함을 느낀다. 목사님이 성경 구절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설명해 주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농인들도 낯선 단어들을 수어로 풀어서 잘 설명했을 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고 수출과 무역수지도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와 같이 신문이나 뉴스 나오는 단어들은 같은 한국말이지만 유독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조차도 쉬우면서도 어려운 한국어인데, 한국어보다 수어가 더 익숙한 농인들에게는 얼마나 더 어렵게 느껴지겠는가?


비록 문해력이 낮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지적 수준까지 낮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농인들은 수어를 통해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면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농인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이해한다면, 왜 글을 읽을 수 있지만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살다가 문장 앞에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서 헤매는 농인들을 만난다면, '왜 이런 것도 몰라!'라는 생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라고 한번 더 고민해 보는 당신이 되어주길 바란다.


서로의 상황에 대해서 서로가 하나 둘 알아갈 때, 우리는 오해가 아니라 이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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