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소외감을 안겨주는 말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사용하는 일은 없는 듯하면서도 종종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당신에게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한 적이 많았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서 그렇게 대답하는 것일 수도 있는 말. 하지만 사람들은 이 말을 다양한 상황에 따라 다른 뜻을 담아 전한다.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을 때, 들켜서는 안 되는 이에게 어떠한 일을 숨겨야 할 때, 그리고 모든 일을 설명하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얼버무리고 싶을 때.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내게 들려온 이 말은 대부분 마지막의 의미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농인들은 서로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빠짐없이 다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오가는 대화 속에서도 금방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대화에서 소외되는 일이 극히 드물다. 하지만 청인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답답하다. 그들은 음성언어를 사용하면서 대화를 하고 농인들은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술을 했더라도 청인들처럼 완전히 말을 듣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종종 대화를 나눌 때 친구들이 꺄르륵 웃어대면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왜? 뭐라고 했는데?"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나의 물음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잘 설명해 주는 이가 있는 한편, 누군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당신들은 그렇게 재밌게 웃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주 어릴 적에는 친구들이 듣지 못하는 나를 앞에 두고 욕해놓고 그렇게 대답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화의 내용을 묻는 나의 말에 "아무것도 아니야" 혹은 "몰라"라고 대답하는 이들을 자주 접하면서 '이들은 나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귀찮구나'라고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을 뿐이다.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의 대화가 궁금해서 물어본 말에 대한 대답이 "아무것도 아니야" 혹은 "몰라"라고 돌아올 때면 함께 있음에도 소외감이 느껴지곤 했다. 물론 대화라는 것이 흐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탁 튀어 올랐을 때 잡아채야 정말 웃기고 재미있다. 누군가의 입으로 전해 듣게 되면 그 재미는 대부분 한 김 식은 채로 전달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떤 이유로 자지러지게 웃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고 얕게나마 웃을 수 있다면 그래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유독 나만 싫어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함께 대화를 나누던 많은 농인들이 자주 들어왔고 그들에게도 언제나 반갑지 않았던 말임을 알았을 때, 대부분의 농인들은 알게 모르게 대화의 부재로 인해 소외감을 많이 느끼며 사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무슨 말이야?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상세한 설명이 아니어도 괜찮다. 우리는 그저 나와 함께 있는 당신들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알고 싶고 대화에 함께하고 싶을 뿐이다. 간단하게 설명해주기만 해도 소외감을 덜 느끼게 할 수 있다. 말 몇 마디 더 하는 것에 큰 힘이 들지 않는다. 그리 긴 시간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당신이 귀찮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넘어간 그 순간들은 곁에 있는 농인들에게 소외감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서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별 일 아닌 것 같은 일이 누군가에는 별 일이 되듯, 귀찮다는 이유로 무심히 던진 당신의 말 한마디로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농인을 만났을 때 작은 대화라도 전해주는 사소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당신 한 사람만 있다면 정보의 한계로 인해 상처받고 소외받는 이가 한 사람 더 줄어들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당신의 번거로움을 애써 감추기 위해서 쓰기보다는 눈앞에 닥친 문제들이 너무 높고 두껍고 크게만 느껴질 때 문제가 문제 아니게 느껴지는 마법으로 쓰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