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 년에 두 번,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 큰 행사가 있다. 바로 설날과 추석인 명절이다. 대가족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직업이나 학업 등의 이유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는 우리네 가족들의 모습. 그렇기 때문에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이 명절을 누군가는 애타게 기다린다.
하지만 마냥 명절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도 존재한다.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의 제사를 위해 주방에서 허리 펼 일 없이 음식 노동을 하는 며느리들이나, 일과 학업에 시달리다가 모처럼 길게 쉬는 날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족들 틈에서 누구는 어디에 취직을 해서 잘 먹고 잘 사는데 너는 요즘 뭐 하냐며 안부차 물어오는 말들이 불편한 젊은이들이 그렇다.
물 밀듯이 밀려오는 가사노동에 기가 질려서 혹은 애정 어린 관심이라는 명분하에 비집고 들어오는 불편한 질문들 때문에 명절을 싫어하는 이들만큼이나 명절을 반기지 않는 이들이 존재한다. 바로 농인들이다.
왜 농인들은 명절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보지 못했던 기간만큼이나 많은 대화들이 오간다. 하지만 농인들은 수없이 오가는 대화들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다. 수어보다 구어를 더 썼던 나의 과거의 경우, 가족들은 어릴 적부터 함께 대화를 나눠왔기에 입모양을 읽어내기가 조금 수월했다. 그래서 들리지 않아도 대화가 드문드문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은 입모양을 읽어내기 힘들어서 마치 낯선 이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았다. 그들이 하는 말들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언제나 가족들의 입모양을 통해서 말을 전달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이런 대화는 길게 이어지기 쉽지 않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경우에는 수어를 통해서 원활하게 소통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수어를 잘 아는 가족들을 가진 농인들은 극히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농인들은 아주 가벼운 인사가 오가고 나면 그 후로는 대화가 끊긴다.
시끄러운 군중 속에서 느껴지는 고요함과 그에 따른 소외감은 언제나 반갑지 않다. 쉴 새 없이 대화하는 청인들 틈에서 우리는 멀뚱히 두 눈만 꿈벅거리기 일쑤였고 휴대전화가 일상이 된 지금은 가족들의 얼굴보다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다. 외로움은 사람이 곁에 있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수많은 인파에 속해 있더라도 나와 대화를 나눌 이 하나 없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군중 속의 외로움은 유난히 더 사무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런 소통의 부재는 농인들이 명절을 반기지 않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명절에도 소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소통의 부재로 인해 무척 가기 싫은 친척집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아무리 싫어도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친척들을 만나러 가야만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리가 필요한 찰나의 순간에 우리만의 방법으로 적응을 해야 했다.
1. 세배를 할 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어른들에게 절을 하면 주머니 두둑이 세뱃돈을 받을 수 있는 설날. 말할 수 없는 농인들은 새배를 올리고 나서 슬며시 미소를 짓는 것으로 세배를 마무리하곤 했다. 이렇게 표정으로 마음을 전하던 과거와 달리 휴대전화 사용이 일상 속 깊이 스며든 현재에는 새로운 방법을 사용한다. 메모장 기능을 활용하여 텍스트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써서 보여주는 것이다.
2. 제사를 지낼 때
제사는 모두가 잘 알다시피 양손 가지런히 모아서 절을 두 번 지내면 된다. 보통 제사를 지낼 때는 눈을 감게 되는데 청인들은 함께 제사를 올리는 옆 사람의 뒤척이는 소리나 몸을 일으킬 때 나는 옷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맞춰서 일제히 일어난다. 하지만 농인들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눈을 감았다가도 계속 곁눈질로 곁에 있는 사람이 언제 일어나는지 살펴야 한다. (어릴 적, 절 할 때마다 속으로 '대체 언제 일어나는 거야?'라며 얼마나 외쳐댔는지 모른다.) 곁눈질을 하거나 아예 옆자리를 휙 보는 것으로 언제 절을 하고 일어나는지 맞추는 이 눈치게임은 때때로 실패할 때가 있는데, 이 타이밍을 놓치면 누군가가 톡톡 치는 손짓에 후다닥 일어나야 했다.
3. 음식을 만들 때
삼삼오오 모여서 전을 부치고 나물을 볶으면 힘들다가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청인들은 그렇게 양손을 바삐 움직이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문제가 없지만, 농인들은 말을 걸면 손을 멈추고 대화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예 대화를 해야 하니까 요리를 못하거나 요리를 해야 하니까 대화를 못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곤 한다.
이렇듯 같은 명절을 보내지만 명절을 지내는 농인과 청인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소리가 필요한 순간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명절도 예외란 없다. 혹시나 가족 중에 농인이 존재한다면 이런 틈을 메워주는 당신이 되어보는 것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