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봄에 대하여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하나 둘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는 지금, 티브이 속 화면이 아닌 영화관으로 문화생활을 즐기러 가는 이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물론 코로나 이전에 비해 영화관이 많이 한산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외출이 아니라 언제든 원하는 곳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과 비싸진 영화관람료로 인해 관객 수가 줄어든 것도 한몫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스크린과 웅장한 음향을 통해 영상을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게 하는 영화관이 주는 매력을 포기하기란 어렵다.
영화관을 이용하기 위해서 거치는 과정들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고, 2. 원하는 극장을 선택하고, 3. 원하는 시간을 선택하여 예매하고, 4. 영화관에서 즐긴다.
하지만, 농인들은 1번부터 좌절을 경험한다. 유명한 한국 배우들이 나오는 흥미진진한 영화 홍보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와 이 영화 진짜 재밌겠는데?'라며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인들은 한국 영화라면 '아 한국영화네'하고 일단 포기부터 하게 된다. 아무리 재미있어 보여도 돈 내고 관람하는 두 시간 내내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면 무슨 재미로 영화를 보는가! (왜 홍보영상은 자막이 있는데 실제 영화는 자막이 없는 것일까?)
이처럼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마음껏 볼 수 없다는 점은 농인들로 하여금 영화 관람의 선택의 폭이 좁아지게 만든다. 나 역시 늘 영화관을 가면 우선순위는 해외 영화가 차지하곤 했다. 종종 한국 영화를 보고자 하는 청인 친구들을 따라 영화를 본 날에는 내가 영화를 본 것인지 잠을 자러 간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농인들은 영원히 한국영화를 볼 수 없는 것일까?
한국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농인들을 위해서 나온 서비스가 있다. 바로 '가치봄'.
가치봄이란?
영화의 한글자막 화면해설 서비스를 새롭게 명명하는 브랜드로 기존 영화에 대사와 효과음 등을 자막으로 표기하고 화면해설 및 상황을 설명하는 음성을 넣어 시청각장애인들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배리어프리영화 서비스이다. -나무위키-
즉, 가치봄은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와 같이 배우들의 대사 자막과 '초인종 소리', '개가 짖는 소리' 등 배경소리 해설 자막이 함께 제공되어서 농인들도 쉽게 한국영화를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더불어 각 화면에서 '철수가 문을 열고 나간다' 혹은 '영희와 철수가 숨어있다가 나타난다'와 같이 배우들의 동작을 설명하는 화면해설서비스가 함께 제공되어서 시각장애인들도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한다.
언제가 마지막 방문이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영화관 방문. 기억을 더듬더듬 떠올려 보니 지난달에 개봉한 <킬링로맨스> 영화를 보기 위해 간 것이 가장 최근이었다. 영화 홍보 영상을 통해 너무 궁금해서 보고 싶어 하던 차에, 해당 영화가 베리어프리로 선택되어서 상영을 한 덕분이었다.
가치봄 서비스 덕분에 한국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좋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점은 존재한다.
1. 보고 싶은 영화가 베리어프리로 선택되지 않는다면 해당 영화를 볼 수 없다는 점, 2. 해당 영화가 베리어프리로 제공이 된다 하여도 대부분 농아인협회에서 지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상영하기 때문에 시간이 맞지 않으면 관람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대한 다양성과 시간과 장소에 대한 선택권을 더 늘릴 수 있도록 대부분의 한국 영화에서 자막이 제공이 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영상을 제공하는 넷플릭스의 경우, 한국영화와 드라마 모두 자막이 제공되기 때문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자막 서비스는 농인들 뿐만 아니라 청인들도 즐겨 사용하는 서비스인데, 조용히 해야 하는 상황에서 영상을 관람하거나 배우들의 딕션이 별로여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때 아주 유용하다는 이유에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막 서비스 덕분에 농인 청인 구분할 것 없이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넷플릭스처럼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도 자막이 포함되어서 나오는 영화가 많아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영화관을 찾고 관람할 수 있지 않을까?
찾는 사람이 적어졌다는 이유로 수지타산을 따져 관람료를 무작정 올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끌어들일 수 있을지 다양한 방면(특히, 장애와 비장애를 뛰어넘어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한다면 얼마든지 해결방법은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전혀 한국 영화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자막을 통해 영화를 볼 수 있어진 현재에 감사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었듯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