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바다의 양끝이 만나는 곳 여수
땅과 바다의 양끝이 만나는 향일암에서
땅의 끝과
바다의 끝에서야 비로소
태양은 뜨거운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주어
푸른 잎사귀처럼 은빛 여울에 살랑이는 신비한 곳에
인간의 처연함을 풀어헤치며 다가서기를 허락한다.
여기저기 바위 사이 구석구석 널린 동굴 같은 관문을
어둔 골목과 터널을 넘어서듯 엎드리고 수구리며
지나고 넘고 일어서야 비로소 푸른 마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물 위를 나는 새처럼 아득한 그리움을 드리운 채 다가선다.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겹겹이 에워싼 대지가 흩뿌린 마지막에서야
바다는 번개처럼 창백하고 땅은 천둥처럼 고요해진다.
바위 암자 그리고 나무가
땅을 딛고 물결을 굽이치며
자연의 장엄함에 인간의 위대함이 더해져 장관을 이룬다.
푸른 물결은 은비늘을 입힌 듯 번득이고
바람은 풀잎과 사랑을 나누듯 펄럭이며
사람은 나무와 바위와 바닷물결 사이를 다람쥐처럼 누빈다.
바위 사이사이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얕은 동굴이 문처럼 열렸고
그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지나다니는 재미가
동심으로 이끌어가듯 신기하고 신비로우며 흥미롭기 그지없다.
너무나 멀기에
상상이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고 부풀려지던 곳이기에
크나 큰 기대만큼 실망하려니
실제 다가서면 그럭저럭 하려니 했던 기대와 달리
푸름과 신비로움, 해맑음이랑 찬란처럼 싱그러운 아름다움이
자그마한 가슴을 채우고도 남아 한참을 주저앉아
바위 암자 나무는 둘째치고 바다만 바라보아도
하루 종일 채우지 못할 넉넉함과 무한함이 서렸다.
바위 끝 바다가 툭 떨어진 나뭇잎 사이에 앉아
바다인지 하늘인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노라니
눈두덩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며
여울처럼 바다가 운해에 휩싸인 듯 흐릿해진다.
살아 있는가?
꾸물거리는 청춘 여리고 가녀린 감성이
가슴을 흔들어 잠자듯 멀어진 영혼의 갸름한 흔들림 같은 떨림으로
아득한 시간의 뭉클함이!
푸름과 싱그러움과 시원한 바람을 품은 바닷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내소사 전나무길의 소소하고 한가로우며 신선한 바람이랑
상원사 은빛으로 빛나는 구상나무 자락에 홀린 듯
넋을 놓고 빠져들게 하던 신록마저 간직하고선
코앞으로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가파른 미천골 절벽까지 데려다 놓았구나.
삼척에서 바라다보던 맑디 맑고 푸르디푸른 바다
거제와 통영의 기이하고도 정감 있고 풍요로우며
세련된 멋스러움을 모두 여미어 품은 향일암은
텅 빈 채움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에 사무치는
목포만큼이나 또 하나의 가슴 깊이 아로새긴 보고픔으로 자리 잡는다.
여행하는 즐거움이 가지 가지겠지만,
이토록 푸르고 한없이 넓으며 온종일을 주저앉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지겨움과 지루함조차 사치에 지나지 않는
여수 향일암을 품어 산다는 건
거기 발자국을 남긴다는 건
위대한 자연의 마법과 섭리를 만나는 신비이다
대한의 아름다움이여!
겨레의 숨결이여!
내 조국 금수강산의 자랑스러움이여!
어디까지이며 얼마만큼인가?
아직 내딛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이
더욱더 찾아가고픈 그리움이 마음을 급하게 하고
조급하게 한다.
행복을 수선하는 것들이 해맑은 웃음을 지어
자랑스레 흐르는 노래처럼
나의 방문이 나의 여행이 내가 찾아간 사실에 흥분하는
즐거움을 기꺼이 행복으로 휩쓸어 가져오는 향일암이 있어
이따금 힘들고 피곤하면 이 곳을 떠올려 참아내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메마른 일상에 싱그런 생동감을 퍼올리는
나만의 우물이 된다.
어둠 같은 답답함에서 마주할 때면 두레박 가득 싱그런 청량감을 길어 올려
기운을 샘솟게 하는 마법의 기운을 향일암에서 길어 올리곤 한다.
웃음 띤 모습에 스미는 찬란한 여행의 기적은
여수 향일암에서는 허구한 날 일어나는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한 편이 노래가 되어 흐르는 곳엔 추억이 살아 숨 쉽니다.
쇼생크 탈출의 모건 프리먼이나 여인의 향기의
알파치노가 그렇습니다.
어느 먼 시절 죽마고우들과 텐트를 치며 여행하던 시절
석유버너와 코펠에 끓인 매운탕의 엉터리 음식이
얼마나 기억에 남는지 모른답니다.
벗이 있는 곳으로의 하염없는 길을 달리고 달려
아들과 함께 떠난 여행길이 어느새 추억이 되었고,
물끄러미 떠올린 여행길과 함께 일어서는 그리움이
보고픔이란 꽃으로 피어 고소한 향기로 에워쌉니다.
이럴 때 듣는 당당하고 앙증맞으며
똘망똘망 깍쟁이 같으면서도
야무진 Suzan Erens의 목소리가
대지의 끝에서 으르렁거리는 파도에
흐느끼는 눈물처럼 처연하기 그지없습니다.
휘파람
2016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