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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가 휘파람 Oct 01. 2016

시간의 섬세한 떨림 영화 디 아워스

시간이라는 신비를 타고 흐르는 존재의 흔들림




우리가 사는걸 시간이라고 하고 그런 시간을 곁에 두고 더불어

살아나가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 속에 또 다른 시간이 흐른다. 벗어나고픈 다가서고픈 여전히

외로운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시간

그 안에서 존재는 배회한다 한없이 서성인다

그렇지만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인생이라는 시간의 바람일 뿐이다




디 아워스




물결이

파란만장한 시간의 흔적을 몰아가듯

훨훨 흘러간다

두려움처럼

한낮의 햇살

새들의 노랫소리가

녹음 우거진 한여름의 나무들 아래

도망치듯 물길로 나아간다



풀잎은 여느 때처럼 파랑 하늘 아래 살랑이고

흙탕 물결은 험악하게 내리 달린다


경험과 기억들이 흩어져있다

다시 하고픈 꿈같은 기억

두 번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기억들


하지만 건너야 할 것이 있고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거기 삶의 갈림길이 있다


힘들고 힘겨워도 가지 말아야 할 길은 넘실거리는 물결처럼 쉬이 잡아먹히리니

근처엔 얼씬도 말아야지

그래야 오늘이란 선물꾸러미 속에 큰 기쁨을 만끽할 터이니


영화는 시간을 배회하며 시작한다


아침, 창문, 햇살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

탁자 위 투박한 꽃병에 하나 가득 차올라 피어있는 꽃들

메마르고 거칠건만 찬란하게 피어오르는 우리들의 이야기들

삶이 있고 추억이 묻었다

시간은 이렇게 시작되고 이어지며 나아가는 듯 날아오른다


삶은

시간이라는 물결에 반짝이는 여울처럼 신비로운 우리네 삶의 향기라는 것은

이렇듯 경쾌하고 상큼하며 우아하고 단아한 것이다


책, 탁자 위엔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리움을 담고 이야기를 담고 꿈을 담은 책들이

향기롭고 창연한 빛을 머금은 채 찬찬히 나를 바라다보고 있다



음악이 흐른다

피아노 건반 위를 난쟁이가 뛰어가듯 콩당거리며 노래한다

커다란 책상에 무수히 늘어진 종이들이 신기하고 정겹고 흐뭇하다



펜, 하나의 펜, 늘어선 필통 안에 어느 걸 고를까 쪼르르 이슬이 구르듯

내게로 굴러들어 오는 녀석으로 오늘은 멋진 글을 써보아야지

행복은 글을 쓰는 것보다 글을 쓰게 하는 생각들 영감들 차분하게 들려오는

연필과 지우개 사그락 거리고 바스락거리는 종이의 감촉이지


그런 기분에서라면 온종일을 글을 써도 물리지 않고 지치지도 않을 거야

그게 문학이며 글쓰기이고 작가가 걸어가야 할 신비라고 하는 것이지



'샐리, 꽃을 사야겠어! 꽃이 시들었으니까'


세 여자들은 모두 화병에 꽃을 꽂고 행복한 꽃향기로 아침을 시작한다

보라꽃 노랑꽃 시든 꽃!


나의 삶!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친절 혹은 배려로 완성되거나 위로받는 건 아니다

다만 혼자 외롭고 고독하며 어찌 보면 막연하고 허탈한 삶에

기운을 스스로 북돋아 나아가야 한다


아이의 눈동자

속 깊은 마음을 속속들이 끄집어내어 바라보는듯한 이 순박하고 맑은 눈동자

내가 나은 아이, 나의 이 아이, 문득 낯설고 너무도 사랑스러운 나의 사랑스러운 아가


운명이 가져다준 행복한 시간의 배려들

그런 기다림과 행운이 가져온 행복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기쁨들



그런데 문득 그런 바람과 기다림과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아픔과

견디기 힘든 시간의 폭풍

그리고도 여전히 나아가는 일상

변치 않는 세상의 외면처럼

스스로의 존재가 깃털처럼 가벼이 여겨지고 무의미해지며

무가치해지는 순간의 안타까움이라니


시간이란 으레 그만큼의 늘어짐처럼 기다려야 하는걸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곳들엔

다가선 발걸음만큼 정겹거나 반갑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내 맘과 달리 여전히 동떨어진 껄끄러움이 도처에 서려있다



참고 살아온 시간 억누르고 견뎌온 시간

믿으며 안타까이 흘러온 시간 속에 차고 또 차올라 한꺼번에

넘쳐 제방이 무너지듯 허물어지고 만다



'이건 모두 널 위하여서라고

오로지 너 하나만을 위해서 그런데,

네가 이런 모든 걸 버리고 벗어나려 하다니'

모두의 희생

나의 희생

널 향한 나의 바람

우린 어떻게 이렇게 살아왔지

그런데 지금

이 모든 걸 까먹고

흩어지려는가

사라지려는가! 나의 바람은 아직 이렇게 계속되는데



나의 고통

나의 아픔

나의 희망을 상실한 내면의 아픔을 아는 건

그토록 나를 사랑한다는

나만큼이나 나를 위해 희생했다던

나만을 위해 모든 걸 마련했다는 당신이 아닌

오로지 나 자신만

나 혼자만이었던 것을


당신은 단지 내가 떠나는 것만이 두려울 뿐



진실은

차마 다 말하지 않는

미안해서 그대의 마음을 알기에 그래서 내뱉지 못한 것들과 함께

있는 것을

그래서 오해가 깊고 그래서 더욱 멀어지고

이토록 답답하고 더더욱 외로워지는



비록 병들고 지치고 힘겨움에 헛소리를 짓거리기도 하지만

정녕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닌 거라 외치지만

지금까지의 이 모든 것들을 변덕처럼 지껄이는

이 여자를 위해 이 일을 해야 할까?

이 일을 하고 나면 또 어떤 변덕을 부릴 줄 모르는데


어긋나고 낯설고 자꾸만 멀어지는 이 아득함은 뭐지!


그래 여긴 너무 어두워

빛은 어디로부터 오는 거지

더 많은 빛을 들어오게 하려 해

난 더 환하고 싶어


내 그리움은 어디로부터 오는 거지?

사랑하는 그녀인가?

내 안의 신비로운 미지에 대한 동경으로부터인가

태아 적부터 누리던 안락하고 따스한 품

어머니로부터인가



문득문득

글을 쓰다가 영화를 보다가

막연한 삶의 신비에 들떠 상념에 젖노라면

문득 어머니를 떠올려보며

가만 불러본다

꿈에조차 나타나 주지 않는 어머니를!



하나의 부탁

그걸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와 안타까움


늘 불안하고 두려움에 고통스러워

물론 기쁜 날도 있고 그런 순간도 많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냥 지금 내겐 밝은 빛이 필요해



늘 날 위해 모든 걸 해주었잖아

희생하고 사랑하고

오늘은 그냥 내 하고픈 대로 하게 내버려둬

이젠 떠나고 싶어



사랑하는 그녀가 여기 내 곁에 있는데

그동안의 환상처럼 환한 웃음 대신

조금은 걱정스러워하고

불안해하며


그런 그녀를 보며 오늘은 안녕을 말하고 싶어

그녀 사랑하는 두 눈동자 속으로 영원히

뛰어드는



우리가

곁에서 한집에서 한 이불속에서

하루를 넘어

십 년을 아니 수십 년을 함께 살았어도

오늘 그녀에게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빙산의 일각처럼

초라하리만치 모르는 것들로 가득한 하루를 살고 있질 않은가

그러니 말하지 않는 것들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겸손하고 겸허한 맘으로 부둥켜안고 미루어 짐작해보아도 여전히 모르는 것들



나의 떠남으로 남은 것들의 슬픔

아니 나로 인해 갖는 곁에 있는 이들의 행복

몰라서 그렇고

알아서 그렇고

사람 사이에 선 우리는 늘 부족함으로 비틀거리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매일을 죽어간다

남은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삶과 죽음의 대비를 통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곁에 선 빈자리에 평생을 아파하는 슬픔이 얼마나 커다란 고통인가!

힘들고 아프고 속상하며 미칠 듯 답답하여도

곁에 머물러 눈물과 웃음으로 삶이란 것이 익어가며

속임수와 거짓 비굴과 혼돈 속에 하루는 어두워지며

열병 같은 희열 속에 우린 이렇게 웃음꽃을 틔울 수 있음을



곁에 있어도 아프고

답답하며 후련해지지 않는 내 안의 혼란들

시간의 어둠과 햇살

무게와 가벼움 속에서 여전히 혼자만의 높다란 담벼락 같은 삶의

빛과 어둠 내면의 외로움과 고독으로 눈물 흘리는 존재로서의 고뇌



그렇게 하루가 익고

또 하루가 연이어 다가온다



문밖에 그녀는 삶의 공허에 흐느껴 울고 있는데

문안의 그이는 오늘 하루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달콤하게 이야기한다



'삶의 고난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삶의 소중한 의미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런 게 자연스레 삶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니까요'



시간과 사랑 그리고 곁에 있는 모든 것들과 나의 삶

지금은 무엇이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내 삶의 의미는 어떤 모양이고 어떠해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몸부림에도 흔들리지 않는 운명의 쳇바퀴 안에서 외롭게 떨며 혼돈 속에

방황하는 시간의 자화상


곁에 있어도 낯설고 오랜 세월에도 여전히 낯설고

까닭 모를 혼란스러움과 나올 듯 나올 듯 두려움만 쌓이고

알 수 없는 신비에 흩어지는 시간의 꺼풀들


깨어난다 어렴풋 희미하던 어지러움이 환해지고 밝아지며

선명해진다 흔들리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 안에 다시금 마음을 추스르고

고쳐먹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서는 선명한 기운이 생기처럼 다가와

휩쓸어간다 그것이 우리네 시간의 신비 흐드러진 삶의 의미



불면 같은 밤이 지나고 찬란한 햇살이 어디선가 재를 뿌리며 다가와 눈길을 물들이는

시선을 흐릿하게 바라며 방긋 웃는다

아침이다

그리고 부스럭거리는 삶의 소리와 내음이 귓가를 간질인다

살아 있음에 곁에 있음에 여기 함께 있음으로



아침은 마음은 풀잎에 이슬처럼 떨어질 것을 염려하기보다

영롱함으로 한껏 세상을 품고선 창공을 훌쩍 날아오른다

아침은 늘 설레고 싱그럽기만 하니까


여전히 강물은 흐르고 물결은 사납기만 하다

풀잎이 휘영청 물길에 멱을 감으며 뿌리치듯 튕겨 오른다




디 아워스 (2002) - 114분 미국 12세 관람가 드라마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출연 - 메릴 스트립, 줄리앤 무어, 니콜 키드먼, 스티븐 딜레인




어두우면서도 환하고 한없이 감동적이며 생각하게 하는 흐느낌 같은 영화

내 안의 속삭임 같은 영화 나를 닮은 시간의 여행

내가 왜 영화를 좋아하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이런 영화가 있어

오늘 나는 글을 쓰며 행복한 인생이란 시간을 음미하며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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