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는 오랜만에 바깥 일정이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주머니 속에서 간간이 울리던 진동이 신경 쓰였다. 돌아오는 길엔 과속을 했다. 밤 11시. 주차 후,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답장부터 썼다. 응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몇 마디를 더 써붙인다. ‘잘 자요. 늦어서 미안해요. 내일 만나요.’ 1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만나서 반가웠지만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아쉬움이 없을 사람들을 보느라 놓친 가능성을 자꾸만 생각하고 있다. 지나친 가능성이 새벽을 자꾸만 잡아 늘린다. 조금만 더 일찍 모임이 파했더라면. 아니, 약속이 없었더라면. 오늘 저녁은 좀 더 즐거웠을까. 그 가능성은 액정 속에 있다.
17살 어느 날. 한 채팅사이트에서 만난 ‘미카’. 난 그 사람의 나이만을 들었을 뿐, 사는 곳도 이름도 직업도 알지 못한다. 우리가 나눈 것은 오로지 텍스트가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도 충분했고, 나는 미카에게서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애정을 느꼈다. 미카는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고, 내가 만든 껍질을 예뻐해 주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인이었다.
미카는 내가 어른이 되면 호주로 가자고 했다. 거기서는 여자 둘이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함께 살자는 말에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지. 그 시기 나는 마침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고, 그녀는 좋은 성적을 받아 오라는 미션을 주었다. 그때까지 제대로 된 공부한 번 해본 적 없던 나는 유독 취약했던 화학 과목만 빼고 올만점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나는 사이트에 접속해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창에 그녀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친구 접속 알람음을 최대치로 키워놓고 컴퓨터 옆에서 선잠을 잤다. 띠롱. 소리라도 나면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고 화면을 확인했고, 이내 실망하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그녀가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내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사회생활을 인터넷으로 배운 사람이다.
파탄이 난 가정. 아버지의 사업은 실패했고, 세 살배기 동생은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엄마는 견디지 못해 미쳤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견디다 못해 다른 여자를 만났다. 혼자 남은 나는 여기저기 떠돌며 유년기를 보냈다. 외할머니, 외삼촌, 작은 엄마, 할머니. 그래서일까? 나는 목소리는 컸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할 줄 몰랐고, 성격은 활기찼지만 눈치가 없었다. 내 어딘가에서 결핍이 느껴졌던 건지 아이들은 나를 피했다. 가장 절친한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왕따로 보냈다.
세파에 휩쓸린 어른들이 각기만의 사정으로 나를 방치하는 동안, 나는 내 나름대로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 학교에서는 나처럼 소외되거나 문제가 있는 몇몇의 아이들과 어울렸고, 집에 와서는 내 머릿속에만 사는 내 상상 친구들을 장난감에 덧씌웠다. 인어공주였던 쥬쥬인형은 머리카락이 잘려 왕자님이 되기도 했고, 하와이의 2층집이었던 레고는 해체되어 3단 변신 로봇이 되었다. 그때 그 플라스틱 친구들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하루 종일 나와 놀며 말을 걸어주었다. 계속 그들이 타자인 채로 있어주었다면 영원히 행복할 수 있었텐데. 왜일까? 왜 나는 나의 친구가 되어줄 수 없는 걸까. 왜 나는 나로서 만족할 수 없는 걸까? 인간은 어째서 타인과의 관계를 갈망할 수밖에 없는 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12살의 어느 날. 인형놀이가 더 이상 재미있지 않게 된 그날. 인형들의 자아가 빙봉처럼 저 멀리 사라진 그날. 더 이상 상상 속의 친구들이 친구가 아니라 그저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날을. 때로는 공주였고, 왕자였고, 친구였던 인형들을 바구니에 집어넣으며 울었다. 몹시도 외로워서.
혼자가 된 나는 새로운 친구를 다시 찾아야 했다. 그때 나타난 것이 때마침 상용화된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고립된 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의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그곳에선 현실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허락되었다. 나는 허용되었다. 그곳에선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들이 자유로이 만났고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성별에 묶이지도 않았다. 이 무한한 가상공간에서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 있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었다. 나의 치부를 가리고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으로만 나를 가꿀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아무도 보려 하지 않는 나의 ‘진짜’를 보여줄 수 있었다. 키 작고, 못 생기고, 소심한 데다 경박하고 게으른 나는 사라지고, 여자도 남자도 아닌 채로, 수치를 모두 잊은 채 자신 있고 당당한 무언가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이상적인 나로 만들기 위해 그때부터 텍스트를 다뤘다. 동시에, 타인의 텍스트도 그때부터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세상은 텍스트였고, 텍스트로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허용되었다.
얼굴이 없는 사람들은 내가 만든 나-내가 생각하기에 진실에 가까운 나를 현실세상과 달리 친절히 대해주었고,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때로는 미카처럼 사랑이 되어주기도 했다. 나는 나로서 받아들여졌다. 거기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기어이 나는 현실을 버리고 가상에 투신했다. 어느새 내게는 현실이 꿈이고, 인터넷 세상이 진짜였다. 나는 물리적인 공간을 잊고 정서적 연결에 몰두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물리적인 공간에서의 물리적인 접촉이 없는, 단지 한순간의 우연, 얄팍한 호기심과 어린 치기로 만들어진 인간관계는 한철 꽃보다도 덧없음을. 나는 정말 몰랐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었다. 한없이 이상적인 공간에서의 이상향만을 꿈꾸던 나는 가짜 세계에서 일어나는 진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현실에서는 오로지 소외만을 겪었을 뿐, 그 시기에 배워야 할 또래 간의 다툼, 오해, 화해와 양보 따위를 나는 배우지 못했다. 사람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가짜 공간이었으나 나에겐 진실이었기에, 그곳에서 누군가 사라진다는 것은 내 세상에 균열이 가는 일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이들에게 진심이었다. 너무나 진심이었기에 작은 갈등을 견디지 못했고, 침묵에 괴로워했다. 인연의 끝은 곧 나의 실패가 되었다. 나는 그 원인을 내 텍스트의 부적절함에서 찾으려 애썼다. 끊임없이 나를 교정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찾아 그 공허를 메꾸기 위해 하염없이 인터넷을 헤엄쳤다. 수많은 데이터들이 내게서 친구라는 이름을 얻었다가 사라졌다. 때로는 요란하게, 때로는 소리 없이, 때로는 시간에 떠밀려....
그래. 시간에 떠밀리는 것은 나이기도 했다. 어쨌든 인간이기에 나는 현실을 살아야 했다. 모피어스가 나타나 내게 파란 약을 먹이는 순간을 꿈꾸었지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빨간 약을 먹은 몸을 가진 모양이었다. 리얼인 몸을 가진 이상, 머릿속의 가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진짜를 살아야 했다. 대학을 다녀야 했고, 취업을 해야 했다. 현실감이 텅 빈 육체를 끌고 다니다 보니 끝없이 실패했다. 자퇴, 자체휴강, 무단결근, 잦은 이직, 티브이에서나 나올 법한 쓰레기집.... 실패할 때마다 나는 다시 가짜에 몸을 내던지며 현실에서 도망갔다. 몇 달 내내 밥도 안 먹고 게임만 하며 보내다 텅 빈 통장을 붙들고 굶어 죽기 직전에 다시 끌려 나온 적도 있다. 그 끝없는 반복 속에서,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현실의 법칙을 조금씩, 느리게 배우며 어설프게나마 진짜 세상의 규칙을 체득하고, 사회생활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는 이제 제법 그럴듯한 어른이 되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내가 갖고 있던 가능성도 깨쳤고, 약의 도움을 받고 있긴 하지만 밝은 천성을 가진 탓에 이제는 밝은 사람으로 통하며 어디를 가든 분위기를 좋게 하고 누구나랑 잘 어울린다. 책임감도 배워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성실하게 일도 할 줄 안다. 그러나 완전히 인터넷의 세상에서 해방되진 못했다. 여전히 나의 내면, 나의 대부분은 데이터로서 존재한다.
내가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인터넷의 허상 같은 인간관계에 매달리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너무 오래 그곳에서 지낸 탓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완전한 나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며, 내 전부를 다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내 속의 진실이 나를 여전히 혼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진정한 나를 자꾸만 모서리로 몰아세워대고, 내가 배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한 번도 좁혀진 적이 없었다. 나는 철저히 소수자다. 한부모가정의 자녀였고, 히키코모리였으며, 오타쿠에 대인기피증을 가진 사회부적응자였고, 퀴어이며, 양극성 기분장애를 가진 정신병자인 나는 다수자들이 쌓아 올린 현실세계 어디에도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다수자들이 만드는 환상은 나를 끊임없이 외롭게 만들었다. 뿌리를 허상에 내린 나는 결국 내 두 번째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라지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관계를 자꾸만 붙들게 만든다.
내 삶은 외로움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따라오는 고독감과 다툰다.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단지 잊는 것이다. 외로움을 무엇보다 즉각적으로 달래주는 것, 잊게 해주는 것은 클릭 한 번으로 성립되는 인스턴트 관계다. 특정 커뮤니티에서는 나는 사회부적응자여도, 평범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 오로지 나의 기호로서만 성립된 텍스트 기반의 관계만이 충족감을 가져다주고, 안정감을 준다.
그렇다고 내가 인터넷 지인이 엄청나게 많냐? 그것도 아니다. SNS 팔로워는 30명이다. 대부분은 교류하지 않는다. 카톡에 쌓이는 것은 광고메시지가 전부다. 그렇다. 나의 서툰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도 유효하게 작동해서 다양한 관계를 꾸리지 못하게 만들었고, 그나마 유지되는 작은 관계들에 대한 집착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내게 그 관계들은 현실에서 가끔 만나는 친구들보다 더 끈끈하고 정서적으로 더 깊은 연결감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와 정서를 공유한다. 소수자로서, 오타쿠로서, 퀴어로서, 친구로서.
알고는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 이런다고 외로움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좀 더 ‘건강한 방식’으로서 인간관계를 꾸리고 외로움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오래 이곳에서 살았다. 거기서의 생존이 나에게는 살기 위한 사투였다. 발악이었다. 그거라도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었던, 말하고 싶었던, 인정받고 싶었던 나를 받아주는 것이 가짜라 해도, 오직 그것뿐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겠는가? 생존을 위한 사투가 바로 생존방식이 되었다. 이제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알게 되었다 한들, 이미 깊이 파인 물길에 새로 길을 낸다고 그쪽으로 물이 흐를 수는 없는 일이다. 현실의 사람들과 만나도 그들의 사는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친구들의 남편이야기, 시댁이야기, 자녀걱정을 알기는 하지만 관심은 없다. 내 머릿속은 온통,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나, 게임이야기와 애니메이션, 퀴어와 인권, 요즘 유행하는 밈 따위밖에 없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이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그렇다고 영원히 안주할 수 없다는 건 안다. 할머니가 되어도 이곳을 떠나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나는 인터넷 주류에서 벗어났고, 인터넷에서조차 내가 있을 곳이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 나름, 건강한 방식으로서 살길을 도모하고는 있다. ‘건강한’ 인터넷활용을 추구하고, 단지 순간의 도파민을 충족하는 관계보다는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데 집중하며, 소수자와 연대하고, 사회와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며, 관계에는 시절인연에 연연하지 않되, 사람을 좋아하고 애정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인터넷에 투신하며 발달한 내 텍스트능력을 좀 더 건설적으로 활용하려 애쓰고, 때로는 그림도 그리면서.
그래도 이제는 나름 현실도 좋아는 하게 되었다. 절반은 살아야 하다 보니 그렇게 됐고, 절반은 살다 보니 좋은 경험도 조금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통이 더 많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여전히 상상과 가상에 있다. 현실이 좀 더 나에게 친절해지고 다정해진다면, 내가 좀 더 당장하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나도 진짜를 좋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익명이기에 솔직할 수 있고, 그렇기에 현실보다 더 가까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더 간다. 그들이야 말로 나를 채워준다. 그들과 대화만이 외로움을 잊을 수 있기에. 나는 다시 메시지를 보낸다. ‘보고 싶어요!’ 드디어 답장이 온다. ‘저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