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복수 그리고 슬래셔. 스승의 은혜(My Teacher 2006)
우리는 선생님이란 존재를 기억 한 편에 두고 있다. 그게 좋은 선생님이든 나쁜 선생님이든.
영화 스승의 은혜는 한국 슬래셔 무비(살인이나 범죄를 소재로 한 난도질 영화) 역사상 최고의 퀄리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장르나 분위기에 가려져 헤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 박여옥 선생(오미희)은 조산하여 낳은 영민이란 아이가 있다. 영민의 외모는 기형이었고, 영민에게 창피함을 느낀 박 선생은 영민을 지하실에 가둬 키웠다. 세월이 지나 박 선생은 스승의 날을 기념하여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들을 모은다.
선생과 제자들은 만찬을 즐기며 대화를 하고, 그 대화 속엔 탐탁지 않은 느낌들이 오고 갔다.
각 제자마다의 사연이 있다. 스승의 날 선물, 운동회 때의 실수, 뚱뚱한 몸매로 당시 반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선생에게 혼난 사연들이다. 그로 인해 자신들은 인생의 패배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제자들은 각자 박 선생에게 복수심이 담긴 언행을 보여주지만 토끼 가면을 쓴 영민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며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치닫게 된다.
이 영화에서 초반에 사용한 맥거핀으로 극 중 영민이란 캐릭터가 범인인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 미자(서영희)의 계획된 살인극이다. 미자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죽고 영민이란 캐릭터는 온데간데없이 등장하지 않는다.
강렬한 토끼 가면 살인마의 분량이 이 정도라니, 당황할 수밖에.
영화 스승의 은혜에서 영민이 사용한 살인 도구는 보통의 슬래셔 무비(살인이나 범죄를 소재로 한 난도질 영화)와는 다르게 스테이플러와 커터칼을 사용한다. 문방구와 미술시간이 먼저 떠오르는 도구들이다. 이런 도구들을 사용해서 관객들에게 살인도구에 대한 편견을 깨버린다. 한국영화에서 이런 도전을 한 것 자체가 박수 칠 일이 아닌가 싶다.
영민은 토끼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자신의 흉한 외모를 귀여운 토끼 가면으로 가리고, 귀여운 토끼 가면을 쓴 영민이 잔인한 수법으로 살인하는 장면은 반전의 묘미를 보여준다. 급기야 고개를 꺾는 디테일은 서비스.
배우 서영희는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에 억울함과 슬픔, 근심, 걱정 등이 녹아있는 배우다.
공포, 스릴러 장르에 있어서 국내 배우 중 서영희만큼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그녀가 범인이든 피해자든 어떤 역할을 맡아도 충분한 배우다.
영화 추격자(2008),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 등 그녀가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포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소름 끼쳐본 적 있는가.
이 영화에서 클라이맥스로 넘어갈 때에 나오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1악장은 이 영화가 단순히 잔인하기만 한 슬래셔 무비가 아니라고 외친다. 무섭고도 잔인한 영화라고.
불길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월광 소나타, 월광 소나타가 이렇게 섬뜩하게 다가온 적이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