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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행 Apr 30. 2023

여행자의 일상과 동물애호 논쟁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베니스, 피렌치, 밀라노

 산 위엔 눈이 내리는데 고속도로엔 비가 내리치고 있었다.

빗길을 뚫고 이탈리아 북부 상업의 중심도시인 트리에스테에 도착했다.

이름도 생경한 이곳에 온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 집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볼리비아에서 만난 이탈리아인인 가브리엘한테 이탈리아의 아이스크림 가게를 물었더니 트리에스테에 가면 여름 6개월만 문을 여는 아이스크림 집이 넘버원이라고 했다. 아이스크림도 좋지만 일 년에 6개월만 일하는 비법을 혹시나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도 거의 없는 트리에스테까지 찾아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허망하게도 주인은 아침에 아이스크림만 만들어 놓고 퇴근해서 만나보지도 못했다.


문제의 아이스크림 가게, 아이들에게 가장 맛있는 맛을 물었더니 각자 다른 맛을 추천했다.


  이곳엔 특별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설렁설렁 거리구경을 다녔다. 그러다 어느 카페에서 주인에게 여기 커피는 왜 이리 맛있냐고 물었더니 일리(illy)  커피 공장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거기 가면 커피용품도 싸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엔 또 물어물어 일리 공장을 찾아갔다. 일리같이 큰 회사라면 견학코스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우리나라 공단 같은 곳에 있을 법한 그냥 공장이었다. 입구에서 생뚱맞은 (더구나 애까지 데려온) 관광객들은 당연히 출입 거절이었다. 공장 앞에서 기념촬영 한번 하고 공장직원들이 많이 가는 바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씩 마셨다. 커피에 뭘 했는지 이탈리아는 어디에서도 에스프레소가 맛있었다.

 트리에스테에서는 완전히 작전 실패인 듯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이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낯선 곳의 일상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다.


 낭만적으로 들리는 낯선 곳의 일상이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일 아침 커피 마시며 일정을 정리하고 노트북에 사진을 올리는 여유로운 모습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막상 떠나오니 아침부터 그런 여유를 부리는 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캠핑장에선 이게 가능했다. 물의 도시 베니스도 듣던 대로 화려하고 로맨틱했지만 변두리에 묵었던 허름한 캠핑장이 더 기억에 남는다.

 캠핑장의 여느 아침과 다름없었지만 그날 아침은 가을로 넘어가는 햇빛이 부드럽게 비쳤다. 아침밥을 먹고 짐을 다 챙겨 차에 싣고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캠핑장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남편은 지도를 보고 목적지에 가는 방법을 체크하거나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난 다이어리를 쓰거나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다. 그동안 준이는 아끼는 수첩에 그림을 그리거나 닌텐도게임을 했다. 이런 시간이야말로 여행자의 특권을 누리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여행자 일상을 피렌체로 이어갔고 멋진 건 다 있는 도시, 밀라노에 도착했다.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 표현된 성서 속 인물들은 밀라노답게 빨간색과 파란색이 대비되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거리에선 할아버지들이 흰 셔츠에 빨간 바지를 입은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곳에선 옷 입는 모습을 보면 관광객인지 현지인인지 구별할 수 있었다. 올리브유와 토마토를 많이 먹어서 그런 건가? 이탈리아인들은 다들 날씬했다.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배 나온 아저씨들은 (미안하지만) 대부분 카메라를 맨 관광객들이었다.


 쇼윈도의 예쁜 옷들에 끌려 들어간 옷가게에서 가죽재킷을 샀다가 급진적인 동물애호가인 준이와 언쟁이 벌어졌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여행이다 보니 한국 여행자들은 잘 가지 않는 곳도 동물들을 보려고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갔고 동물원이 자연스럽게 일정에 들어갔다. 해변에서 펭귄과 수영하고 야생 물개가 몸을 휘돌아 헤엄쳐 가는 체험을 하면서 준이는 어느새 동물애호가가 됐다. 하다못해 파리도 불쌍하다며 죽이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엄마(나) : 넌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고기는 먹잖아.

              고기는 먹으면서 가죽은 사면 안 된다는 건 모순이라고.

준 : 그렇지만, 고기 먹는 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어.

엄마(나) :  채식주의자들도 많잖아.

준 : 난 고기가 좋아. 채식주의자들도 생명을 먹는 건 어차피 똑같잖아.     

             

‘똑같은 생명인데 왜 고기는 먹으면 안 되는가, 식물도 죽일 때 고통을 느끼는가?’ 등 답을 알 수 없는 논쟁이 계속되었고 결론은 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린 캄보디아에서 파는 악어 고기 꼬치도 못 먹어보고 남미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기니피그 통구이도 못 먹었다. 그 귀여운 기니피그를 어떻게 먹느냐는 건데, 에콰도르 적도 박물관에서 보니 기니피그가 귀엽게 생기긴 했었다. 사실, 촉촉이 젖은 커다랗고 둥그런 눈, 길게 말아 올라간 속눈썹. 소의 그 순하고 예쁜 눈을 한 번이라도 지그시 본 적이 있다면 소고기가 뱃속으로 순순히 넘어가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준이는 소고기를 잘 먹는다.)

 내가 보기에 준이는 고기를 좋아하는 입맛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호랑이가 평화를 사랑한다고 토끼를 안 먹긴 힘들 것 같다. 그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기도 하다.

 동물애호와 육식의 모순 속에서 준이가 어떻게 해답을 찾아나갈지 지켜보고 싶었다. 당장 결론이 나진 않더라도 선택을 해야 할 때, 어느 쪽에 가치를 두고 행동하느냐는 어릴 때부터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았다.

  나의 올챙이가 우물 속에만 앉아서 세상일을 판단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책 읽기와 여행이었다. 많은 생각을 읽고 낯선 곳에 나를 놓아두는 여행이야말로 검증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아직 모르겠다. 그냥 다듬어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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