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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Oct 26. 2022

오이도 가는 길

휴일 저녁, 가까운데도 어쩐지 자주 찾지 못하는 오이도로 향했다. 가는 차 안에서 올해 첫날, 남편과 일출을 보기 위해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기상청 사이트에서 확인한 일출 시각이 훌쩍 지나도록 사방은 고요한 어둠에 싸여있었다. 저 멀리 작게 보이는 송도의 빌딩들이 점점 황금빛으로 밝아지고 주변이 다 환해져서 오늘은 글렀구나 싶었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던 순간에 드디어 솟아올랐다. 해는 그렇게 어둠을 다 물리치고서야 천천히 솟았다. 서해라 엄청난 장관은 아니었지만, 제법 인파가 몰려 각자의 소원을 빌고 새 다짐을 했다.   


추위에 떨던 건강한 청춘들이 되살아나 플래시를 터트리고 깔깔대는 명랑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한쪽 다리를 울타리 위에 들어 올리고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며 사진을 찍었다. 남편도 두 팔을 넓게 벌렸는데, 평소 동작이 크지 않은 남편으로서는 최대치의 기쁜 표현이었다. 난생 처음 본 일출이라며 좋아하던 남편이 빌었던 소원은 건강과 행복이었다.   

       

언 몸을 녹이려, 일출시각에 맞춰 일찍 문을 연 근처 카페로 갔다. 오랜만이었는데, 키오스크만이 우릴 반겨주고 직원은 밀린 주문을 처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갑자기 눈이 흐려지면서 헤매다가 옆에 자리 잡은 젊은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가벼운 터치 한 번에 페이지를 이동해서 간절히 원한 달고나 커피를 주문해주었다. 흔쾌히 도움을 베푸는 세상 모든 이들이 램프의 요정이고, 구세주라는 생각에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커피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데 남편한테 조금만 더 뒤로 가라고 하자 엉덩이만 뒤로 조금씩 실룩대며 움직이다가 의자채로 뒤로 벌렁 넘어갔다. 부서지는 듯 큰 소리가 들리고 대자로 누워 황당해진 표정의 남편을 보니 찐 웃음이 터져 박제된 순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채 3주가 지나지 않아 남편은 암 진단을 받았다.       

     

올해 처음으로 내가 아닌 남편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려대는 알람에 맞춰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고 약을 챙겼다. 긴장 상태로 24시간 붙어 지내던 남편이 회사로 복귀한 후였다. 무사히 고비를 넘겼고, 이제 자유를 맘껏 누리면 되는데 뭐라 설명할 길 없는 무기력에 사로잡혔다. 전화도 받지 않고 침대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우울증인가 싶기도, 원체 게으른 인간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구나 싶기도 했다.      


그 때의 감정을 굳이 정의한다면 ‘허망함’이었다.

‘아무리 인생 계획을 세우고 잔발로 열심히 뛰어다녀도 운명이라는 카운터펀치 한 방이면 모두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거구나. 다 의미 없구나.’

멀기만 했던 ‘죽음’이 이토록 쉽게 다가올 수 있다는 실감은 무섭고도 무거워 자꾸만 밑으로 가라앉았다.     

처음엔 넘어진 김에 쉬어가자고 생각했다. 좀 쉬면 나아지겠지, 바닥을 치면 올라오겠지, 천천히 다시 에너지가 채워지겠지,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지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올해도 끝나간다.          


다이어트, 프리랜서로 입지 굳히기, 영어공부, 매일 한 시간씩 걷기, 마라톤 도전, 자전거, 수영 배우기... 수없이 메모한 버킷리스트들과 해내지 못한 것들이 끝없이 떠오를수록 마음이 점점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습관처럼 조급증이 고개를 쳐들고, 후회로 가득 찬 연말은 맞고 싶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에 괴롭다.     


얼마 전,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축구예능에서 압도적인 실력 차와 벌어진 스코어로 기죽은 선수들에게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이기고 지는 건 우리가 결정할 수 없지만, 경기에 임하는 태도는 결정할 수 있다.’

다시 기세가 오른 선수들이 끝내 역전하는 것을 보는 내 가슴이 더 두근거렸다.    


선수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격차에 낙담하거나 계속 골을 먹어 두려움에 휩싸여도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경기장을 벗어날 수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내 지고 두드려 맞고 도망치고 싶어도 생이 끝나는 날까지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 내야 한다. 전래동화 속 동아줄 따위는 없음을, 오직 나만이 나를 구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시시때때로 밀려오는 허망함과 부담을 내려놓고,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해야 한다. 생의 마침표는 아직 찍히지 않았다. 이기는 게임은 못해도 다시 일어나 달리는 것만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늦가을, 사각사각 흩날리는 낙엽이 좋다. 만개한 빨간 꽃잎보다 시들어 말린 꽃잎이 더 우아하다. 일출보다 일몰을 좋아한다. 특히 오이도의 일몰은 일출보다 화려하고 생기롭다. 푸른 가로등 밑으로 줄지어 지나는 자전거와 요란스럽게 달리는 깡통 기차가 새해 아침처럼 활기차다. 건물의 불빛이 거울처럼 비치며 쉼 없이 흔들리는 물그림자도, 메마른 바닥을 드러내다 밀물로 차오르는 갯벌도 내게 속삭인다. 저무는 것처럼 보여도 어김없이 다시 뜰 거라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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