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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숲 May 05. 2024

나의 학교

번아웃이 온 것 같다. 여기저기 파견 다니며 일만도 벅찬데 공익들이 자꾸 속을 썩인다.  오늘은 주사님이 교육이라 안 계셨고 휴무 다음날이 물량이 두 배였다. 도와주는 입장인데 왜 내가 메인 격이 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종일 잠만 자는 공익을 세 번이나 깨우러 갔다. 자원봉사선생님과 우리만 발바닥에 지문이 닳도록 책을 꽂던 참이었다. 배가가 거의 끝날 때쯤  겨우 일어나서는 말했다.

"저 원래 시 반에 하는데요.  "

"지금 할 게 많아. 같이 도와서 빨리 하는 게 낫지." 그랬더니,

"얼마나 많은데요?"

"북트럭이 두 통이나 있어."

"왜요? 거의 한 통 나오는데, 그럼 쌤들이 일을 안 하신 거 아니에요?"

기가 막혀서. 이 정도면 그냥 싸가지가 없는 거다. 아님 나를 무시하는 건가. 상호대차 나갔다가 돌아온 게 두 트럭이다. 배가는 공익의 업무다. 지금껏  지들끼리 힘들까 봐 우리가 도와준 것이다. 근데 내가 일을 안 한 거란다. 이렇게 힘든데 조금씩 이해해 주고 서로 힘들 때 도와주면 얼마나 행복할까. 또 도망가고 싶다.





이십 년 전, 원대한 꿈을 품고 원대로 편입했다. 여기서 대체 뭘 이루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왔다. 그렇게 사라지듯 스쳐간 청춘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유퀴즈에서  빠니 보틀이 말했다. 지금껏 해온,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마치 원기옥을 모으듯이 집대성이 돼서 지금의 자신을 만든 거라 했다. 나는 그 모든 기억을 잊고 살다 번아웃이 와서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왔다. 황금연휴로 시간이 꽤 걸려 늦게 도착한 데다 버스를 잘못 타서 돌고 돌아 대학교로 향했다.


그 참예상치 못하게 자취했던 골목이 눈앞에 지나갔다. 내가 거닐었던 길.  삼백만 원짜리 전세방에 바깥의 화장실 앞 무서운 개새끼 때문에 생리현상이 일어날  때마나 뛰어갔던 병원. 산부인과가 아니라 정형외과였구나. 


버스는 내가 살던 자취방을 지나고도 한참을 지나 학교에 당도했다. 이  길을 매일 걸어 다녔던 내가 떠올라 자꾸 서럽다. 버스에서  잔나비  특유의 슬픈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데 눈물이 날 것 같.


갑자기 비가 내려 편의점에 들러 망설이다 비닐로 된 우산을 샀다. 길이는 한 60cm 정도이다. 그 시절 나를 구한 우산이 생각난다. 시험이 끝나고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걷고 있었다. 취방까지 거의 다 왔는데 갑자기 뒤에서 입을 막고 어 앉혀서 어둡고 좁은 골목으로 질질 끌려고 . 그때 손에 들고 있었던 게  정도 길이우산이었. 다만 끝이 아주 뾰족해서 거꾸로 들어 놈을 막 찔렀더니 억하는 소리와 함께 내 입을 막았던 손이 풀렸다. 그 길로 달아나 자취방 대문 앞에 서서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서 꽂는데 잘 꽂히지가 않았다. 뒤에서 쫓아올 것 같고 또 잡힐 같고, 덜덜 덜덜 떨렸던 기억이 생생하. 


좋았던 기억도 있다. 전기장판이 고장 났을 때, 편입동기 언니와 무거운 장판을 번쩍 들어  앞뒤로 머리 위로 이고 지고 헛둘헛둘하며 철물점에서 고쳐와 보냈던 따뜻한 겨울의 기억.


임용시험을 보러 익산역으로 가는 길. 버스엔 나 혼자였고 기사분 바로 뒷자리에 앉아 기차 시간에 늦을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기사님이 걱정하는 나를 보더니  버스 노선이 아닌 길로 유턴해서 쓱 가로질러 늦지 않게 데려다준 감사한 기억.


휴일 머리를 흔들며 졸음을 뿌리치고 일어나 혼자뿐인 학교  임용고시실로 달려가 공부하던 날들. 친구들이 응원차 위문 와서 사주던 김이 폴폴 나던 달콤한 짜장면.


생일날 친구들과 잔디밭에서 구워 먹던 삼겹살, 한 점만 달라고 슬쩍 와서 합류하던 법대생들. 이후로 사범대 건물로 매일 스쿠터를 타고 와서 나를 부르던 목소리.


이렇게나 생생한 생의 기억이 있는데, 오랫동안 티브이 앞에서  남의 인생을 구경하며 살았다. 불구경하듯이 재미나게 보며 현실을 잊고 그렇게 살았다. 드라마에서 남이 고생하고 고통받고 그리고 또 남이 성공하는  것을 보며 마치 내 인생이 성공하는 것처럼 환호하면서 그렇게 허무하게 시간을 써버렸다.


매년 그렇듯 사범대 앞엔 플랜카드가 붙었다. 찬찬히 영광스러운 명단을 보다보니 02학번이 있었다. 와. 저분은 꿈을 접고 살다가 다시 이어나간건가. 아님 계속  언저리에서 살아온 것일까.  세월이 아득하고 존경스럽다


대학박물관을 가려고 우산을 접었. 하지만 휴무라 아쉽게도 문이 닫혔다. 이곳을 수없이 지나면서도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공부 때문에,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목표 때문에 마음이 바빠 그 좋아하는 박물관도 못 가봤다.


내가 좋아하는 거.  먹는  좋아하고 박물관 미술관, 영화, 여행 좋아하고 새로운 경험 좋아하고 글 쓰는 거 좋아하고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리는 걸 좋아한다. 지난 부정적인 일들을 곱씹거나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과거에 지나왔던 흔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지금을 돌아보는 건 필요하다.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기억하는 것도 바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믿기 때문이다.


역대급 체중을 찍고 몸이 무거워서 사실 오고 싶지 않았다. 숙소 예약도 기차도 다 취소하고 그냥 집에서 쉬고만 싶었다. 하지만 역시 나를 다시 세우는  나에 대한 기억, 나에 대한 사랑이다.


약대 앞을 지나며 이십 년 전 비 오는 날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던 그녀가 떠올랐다. 약대에 다닌다던 그녀의  말에 나도 하고 싶었지만 힘들 거 같아 포기했다고 말을 건넸다. '힘들어요~ 그래도 해볼 만해요.'하고 단단하게 웃던 그녀. 어디에서 원하던 꿈을 이루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이루지 못한 꿈은 앙금을 남긴다.

다른 이를 바꿀 수는 없다. 다른 이의 잘못으로 내가 휘둘리거나 괴로울 필요도 없다. 언제나 나를 가로막는 나를 일으켜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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