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로 오늘은 집에서 쉬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계획한 설레는 여행이라도 막상 전날이 되면 귀찮고 이런저런 걱정에 휩싸인다. 허리도 아프고 너무 피곤하고 감기기운이 올 것 같은데,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어제 되게 많이 먹고, 안 갈 이유를 만들려고 tv를 보다 아주 늦게 잤다. 알람도 끄고 잤으니 이미 차시간은 지났고 일어나 유튜브를 보며 10시쯤 되니 슬슬 불편함이 올라온다. 아무래도 후회할 것 같다.
안 되겠다. 초심을 찾아야겠다. 지금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이 오늘 밤 아니 일주일 후 후회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취소했던 숙소와 버스를 그대로 다시 예약했다.
미리 꾸려둔 짐을 챙겨서 떠났다.
오는 길에 버스 안이라 밥때를 놓칠 걸 생각해서 지하철역에서 참치김밥도 사 먹고 시간도 딱 맞춰 양치도 했다. 출발 7분여를 남기고 여유 있게 스트레칭 후 막 핸드폰을 꺼내 모바일 차표를 확인하려는데 주머니에 핸드폰이 없었다.
어라? 믿을 수가 없다. 시간이 1분... 2분.. 시간이 째깍째깍 지나도 가방 안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미련한 생각에 뒤지고 또 뒤졌다. 결국 화장실로 달려가 머물렀던 칸을 샅샅이 살펴보고 정확지는 않지만 내가 앉았던 것 같은 대합실 의자에 앉아 계신 분들께 일일이 양해를 구해 확인했다. 앉아 계시던 할머님들이 걱정해 주시며 전화를 해주겠다고 번호를 불러보라고 하셨다. 무음인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정말 고마웠다. 출발 1분여 남은 시각, 그때서야 '왁 진짜로 잃어버렸구나! 망했다! 안 그래도 늦었는데~~.'
현실감이 돌아오며 발권창구로 달려갔다.
"제가 핸드폰을 분실해서요."
직원분은 아이고~~ 하시며 자동으로 공감해주시려다가 슬쩍 옆을 보시더니 누군가 주워왔다며 익숙한 폰을 내미셨다. 와우 십년감수 제대로 했다. 집 떠나자마자 아주 다이내믹하다.
찾은 폰엔 계속 무음으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아까 그 할머님들이 계속 걸어 주시고 계신 게 분명했다.
다음 차편을 끊고, 버스 텀도 긴데, 이미 많이 늦은 시각,
바다 앞 카페에서 보는 반짝이는 윤슬도 해저무는 일몰풍경도 날아가고 숙소 들어가면 바다뷰도 안 보이는 깜깜한저녁이겠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차 안에서 먹으려고 싸 온 찐계란을 봉지에 싸서
할머님들께 감사인사와 함께 드리고 터미널 옆 롯데마트 가서 쇼핑하며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제법 귀여운 모자를 득템 했다.
영원한 시련도 없고 영원한 안정도 없다. 망해도 괜찮다.
인간이 호랑이에게 쫓기며 목숨을 위협받던 원시시대는 이미 종말 했다. 호랑이는 없다. 그러니 긴장하고 두려워할 필요 없다. 건강 및 다이어트 고민, 퇴사고민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직장 관둬도 안 굶어 죽는다. 조금 불편할뿐. 그러니 어떤 쪽이든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