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해 소원은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루하루 긴장 속에 버티기 위해 살고, 일하기 위해 살고 일 생각을 집에 와서까지 계속했다. 생각해 보니 감기를 앓은 지 두 달이 넘었다. 작년부터 나는 많이 아팠다.
가장 아팠던 건, 이렇게 했어야지. 그때 이렇게 행동했으면 됐잖아. 더 당당했으면 좀 더 거절을 잘했으면 내가 좀 더 냉정했으면, 하고 날 향해 쏜 화살이었다. 1년 전의 내가 우유부단하지 않고 좀 더 결단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다면 십 년 전에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텐데 하고, 과거의 모든 나를 미워하고 부정했다.
미움은 먹이가 되어 또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나는 점점 더 미움으로 비대해져 갔다. 미울 때마다 음식으로 도피하고 눈감은 미움살이 쪘다. 이 큰 도서관을 나 혼자 전부 이끌어가는 것도 아닌데, 현장인력은 나뿐이다. 지하와 2층을 오가야 해서 공무원이 데스크에 교대를 온다. 꽂을 책이 산더미 같은데 인스타나 보며 시시덕대는 공무원 놈의 얼굴을 감정 없이 올려다보기가 점점 화나고 버겁다.
어린이도서관이라 어느 정도의 소음은 피할 수 없지만 애들끼리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술래잡기하고 게임하고 소리 지르고 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 엄마들은 마치 탁아소마냥 아이들을 아침 일찍 도서관에 떨구고 점심때 다시 와서 실어다가 밥을 먹이고 다시 저녁까지 도서관에 떨구어놨다. 물어보니 교회에 간다고 했다. 다 큰 어른도 도서관에 몇 시간 있으면 허리가 뒤틀리고 힘들다. 여긴 외국인이 많은 지역이다. 어느 외국인분이 손짓발짓하며 민원을 걸었다. 결국 번역기를 돌렸다.
하루 종일 2층을 오가며 조용히 시키다 지쳐버렸다. 이런 말이 안 되는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상호대차라는 멋진 시스템이 있다. 멀리 있는 도서관의 책을 가까운 곳에서 받아보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하루에 몇백 권씩 전산처리 후 가방에 싸서 보내고 또 매일 돌아오는 몇백 권을 가방 풀고, 전산처리하고 분류해서 꽂아야 한다. 꼴랑 이백 받으며 기계 소모품처럼 일하다가 과로사하겠다는 슬픈 생각이 든다.
참, 재밌는 일도 있었다. 자폐증이 있는 어떤 학생은 매일 5시 40분쯤 왔다가 6시 직전 문닫아야한다고 할때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매일 특유의 높은 톤으로 질문을 딱 하나씩 한다.
"오늘 나이지리아 사람 왔어요?"
"오늘 일본 사람 왔어요?"
아니, 아니..
"오늘 중국 사람 왔어요?"
"어."
그러자 두번째 질문이 처음으로 들어왔다.
"중국사람은 새해 소원으로 무슨 소원을 비나요?"
"난 중국 사람이 아니라 모르지."
좋은 일도 있었다. 마음이 사악 녹는 일들이 힘든 사이에도 존재했다. 방학에는 어린이집 견학을 받지 않는다. 워낙 일반 가정에서 오는 이용자가 많고 겨울방학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지역아동센터(초등생)에서 단체로 오기 때문이다. 안전문제도 있고 안된다고 하는데도 굳이 굳이 애들을 데리고 밀고 들어오는 어린이집이 있다. 단체가 왔다 가면 수북이 쌓인 책과 엉망이 된 서가를 정리하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울컥하지만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되뇌며 아이들을 맞이하는데 보자마자 자동으로 얼굴에 미소가 띠어지며 짜증이 눈 녹듯 사라졌다. 동글동글 티 없이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토끼모자 같은 걸쓰고 인사하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내가 힘들다고 아이들 책 본다는 걸 싫어하다니, 도서관 직원이면서 이용자가 오는걸 싫어하다니...하며 결국엔 또 나를 향해 미움덩어리를 던져주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엄연히 잘못한 건 규칙을 어긴 어린이집인데도 남을 미워하는 것보다 나를 미워하는 게 훨씬 간편해서 그러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나는 갈등과 경쟁, 승부를 피하려는 게 있다. 혼자만의 승부는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스트레스 받고 미리 두려워한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승부는 피할 수 없고 늘 이기지도 늘 지지도 않는 것이다. 만약 명확히 내 신호로 내 차선을 운전해서 가는데 누군가 깜빡이도 안 켜고 막 들어오려 한다면 무조건 피해주기만 할 게 아니라 클랙슨을 울리고 갈길을 가야 하듯 승부를 내야 할 때는 단호하게 승부를 봐야 한다.
족저근막염에 걸려 은둔하며 아프고 우울감 속, 무리한 나 자신을 8개월 내내 자책했다. 그러나 아프지 않았다면 사실 그날 마라톤 뛸 때의 나는 아주 멋있었다. 결과가 안 좋다고 해서 내가 걸어온 길을 부정하면 안 된다. 나의 노력과 시간을 이제 좀 믿어보자. 새해 소원은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힘들다 그럼 쉬어주고 버틸 수 있는 낙을 힘써 찾아주겠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얘기해 주겠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가 아니라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