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 떠있는 것이 해인지 나인지, 물아일체를 경험하게 해 준 향일암 일출.
일출을 보겠다는 의지로 강릉에 간 날, 바다뷰 숙소 가격이 너무 사악해서 터미널 주변 모텔에 묵었다. 새벽 4시경 부른 택시 기사님께 다짜고짜 부탁드렸다.
"기사님, 멀리서 왔는데요. 강릉에서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가주실래요?"
최소 낭만파 기사님이 1초의 고민 없이 데려다주신 곳이 바로 안목해변이었다
"저~어기 빨간 등대 보이죠? 거기 끝으로 죽~~ 걸어가서 보면 진짜 해가 크고 기가 막혀요~~. 얼마나 사진 찍으러들 많이 오는지~~"
이 두 곳이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로 치는 일출맛집이다.
유난히 일출을 좋아했다. 시험에 떨어져도, 실연해도 보러 가고, 이혼을 고민할 때도 갔다. 큰 일은 아니지만 일상의 자잘한 상처들에 공격받아 쓰러지기 직전이 되면, 또 어김없이 찾았다.
일출직전의 캄캄한 하늘이 내 상황 같고,
어둠과 깊은 바다를 뚫고 떠오르는 해가 마치 다시 태어나는 나 같았다. 죽음과도 같은 상황에서도 항상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떠올랐다.
휴일, 늦잠을 자고, 설거지와 빨래를 했다. 안 어울리는 옷, 살 빼면 입을 옷, 불편한 옷, 2년간 안 입은 옷을 싹 갖다 의류함에 버렸다. 누군가 득템을 하길 바라며.
냉장고를 싹 비워 비빔밥을 해서 양껏 먹었다. 먹고 TV를 껐다. 우리 뇌는 1분에 5가지 정도의 정보를 처리한다는데, 1분에 보는 숏츠수만 50개는 넘는 것 같다. 조용해지자 또 잠이 쏟아진다. 모험을 떠나는 신나는 꿈을 꿨다. 잠결에 고개를 돌리니 햇빛이 쏟아져 눈을 떴다. 간단히 채비를 하고 카페에 왔다. 좋아하는 아이스카페라테를 시킨다. 테이블 정면에 보이는 트리 속 도토리를 꼭 쥔 다람쥐가 너무 귀엽다.
항상 나를 벗고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후회 가득한 삶에 리셋버튼을 누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오늘 처음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대로의 나도, perfect는 아니지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