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에서 올라온 남편이 잠들자마자 도망치듯 집에 와 소고기를 구워 와구와구 먹고 아이스크림을 퍼먹었다. 안도감과 함께 오래간만에 몰려오는 잠을 떨치고 싶지 않아 양치도 않고 상을 밀어둔 채 그대로 거실에서 잤다. 제대로 된 잠을 못 거라는 걸 알았지만 일어나 방으로 가서 온수매트를 켜고 누울 힘이 남아있질 않았다.
눈을 뜨니 어디선가 쉰 냄새가 나는 듯했다. 3일 내내 병원에 왔다 갔다 하며 설거지할 경황이 없었다. 두려울 정도로 산처럼 쌓인 설거지거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 마침내 숨을 크게 내쉰 후 앞치마를 두른 지 30분 만에 설거지를 마쳤다. 쳇, 긴장했는데 별 것 아니네. 세탁기와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를 빨아 밀대에 붙인 후 바닥을 밀기 시작했다. 걸레질을 잠깐 멈추고 거실을 죽 둘러보는데, 집과 관련된 예전 일들이 떠올랐다.
오래된 애증의 절친 m은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결국 꿈을 이루었다. m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둘러보고는 “여긴 드레스룸이 없네~.”라고 말했다. 드레스룸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이런 말도 했다.
"너는 얼마가 있으면 부자라고 생각해? 뭐? 3억?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는 3억 넘는 집이 있어도 부자라고 생각 안 하는데?"
이후로 집에 못 오게 조치했다.
또 결혼한 직장동료의 넓고도 럭셔리한 신혼집을 다녀온 후, 열등감이 터져서 남편과 다투던 게 생각났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게 다 뭐라고.
아침에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내가 전날 거실에서 잠을 자서 몸이 쑤시다 하니,
“괜찮아? 몸살 기운 있는 거 아니야? 아프지는 않아?”
하고 걱정을 한다. 본인은 어제 암 수술을 하고 물 한 모금 먹지 못하면서.
책에나 쓰일 법한 그저 그런 설교가 아니라, 살아가는 데 집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행복은 그저 건강하고 맘 편한데 있었다. 건강하지 않아도, 자신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남편의 마음 안에 이미 행복은 깃들어 있다.
내 집, 내 것을 부끄러워한 것을 후회한다. 카페에 자주 가는 지인 부부를 두고 사치스럽다며 뒷담화했던 것을 후회한다. 현재의 고통 속에서 미래의 성공이 온다고 믿고 출소 날짜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네다섯 시간을 왕복하며 위태로웠던 날들을 후회한다.
집에서 타 먹는 커피 대신 카페로 데이트를 갈 것이다. 남편이 나아지면 한 번도 안 가본 곳으로 갈 것이다. 아무것도 이루려 하지 않을 것이고,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사치를 부릴 것이다. 상황은 못 바꿔도 오늘 웃을지 울지는 선택할 수 있다. 아래는 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다.
오늘의 '나'가 미래의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