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노래방과 독서실

by 바다숲

최고의 복지는 구내식당이었지만, 기숙사 시설도 정말 좋았다. 여름에 카디건을 걸쳐야 할 정도로 에어컨이 빵빵했고, 겨울엔 민소매와 반바지만 입고 기숙사 내를 활보하고 다녔다. 겨울에 지급되던 방한복은 무슨 털인지 몰라도 엄청 뜨뜻해서 안에 속옷만 입고 눈밭을 뒹굴어도 추운 줄을 몰랐다.


대부분 기숙사 지하에 목욕탕, 노래방, 탁구장, 헬스장, 독서실, 매점 등이 있었다.

휴게실엔 커다란 TV가 있어서 “청춘의 덫” 방영시간이 되면 그 층 사람들이 전부 휴게실로 나와 함께 시청했다. 저마다 한 마디씩 던지고 한숨을 쉬고 가슴을 졸였다.

“저 X이 아주 나쁜 X이여. 부숴버려야 혀.

“어떻게~전광렬~너무 멋있어~.”


술맛도 담배 맛도 모르는 친구와 나는 거의 매일 지하 노래방에 갔다. 방을 한 칸씩 따로 잡고 각자 들어가 노래를 불러댔다. 애창곡은 '성진우의 포기하지 마, 소찬휘의 Tears, 이정현의 와, 루머스의 Storm,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이었다. 미리 죄다 번호를 눌러놓고 메들리로 목이 쉴 때까지 부르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가끔 친구 방이 조용해서 들여다보면 부르다 말고 울고 있었다.


헬스장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술을 취해 들어온 밤에도 반쯤 눈 감은 채로 휘적휘적 러닝머신 위를 걷다가 쓰러져 잤다. 그렇게 인생 몸무게인 54kg을 찍는 다이어트 신화도 쓰고, 기숙사 시설을 알뜰하게 이용하며 부족한 것 없이 만족스럽게 보내고 있었다.



처음 지각을 한 날이었다. 야간 근무하고 아침에 퇴근했다가, 낮에 자고 다시 그날 밤 열 시에 들어가는 스케줄이었다. 안대를 찼는데도 봄날의 햇빛이 부셔서 뒤척이다 늦게 잠들었다. 라인에서 걸려 온 전화벨 소리에 간신히 일으킨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교대 근무를 계속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기숙사에서 나와 라인으로 정신없이 뜀박질해 가는데 저 멀리 까만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기 어린 듯한 별이 아름답구나. , 오늘이 토요일이었지. 그런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문득, 기숙사와 라인을 오가는 내가 통 속에서 빙빙 도는 다람쥐처럼 느껴졌다. 빈 깡통이 되어가는 것도 같았다. 지난달도 작년에도 이랬는데... 십 년 후, 이십 년 후에도 길을 걸을 내 모습이 떠올라 갑자기 명치끝이 답답해졌다.


퇴근하는 길로 남문의 서점에서 수능 문제집을 사 와 일 끝나면 지하의 독서실로 향했다. 독서실을 전세내고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을 했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문제 자체가 해독이 안 되었다.

점수 비중이 높은 언어영역만 내리 풀고 해설집 읽기를 반복하니, 몇 회차만에 120점 만점에 100점 가까이 나왔다. 그렇다면 영어, 수학을 버리더라도 암기과목에서 점수를 따면 해 볼만 하다. 희미하게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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