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미국주민으로 살아요]
아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어떠한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을 선택하든 있는 그대로 인정해 보기로 했다. 그러기에는 조금 이르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아들의 나이는 아홉 살이다. 유쾌한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지속된 논쟁과 마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지만, 우리 세 식구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적합한 해결지점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럴듯한 설득과 제약으로 아들의 욕구와 대치되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거나 방종에 가까운 허용으로 아들의 불안도를 높이기도 했지만,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는 '존중'이라는 단어가 보였고 나는 그것을 취해보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꽤 희망적일 수 있음을 느낀다. 아들은 우리 부부와 다른 별개의 인격체이고 아이 삶의 주체는 본인이어야 한다. 어린 나이기에 생각이 미숙하고 서툰 결정이 다반사겠지만, 아들은 무엇을 원하고 어떤 것에 끌리는지 본능적으로 가장 잘 알고 있다. 과하거나 도를 넘는 행동이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아이 스스로 후회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의 조급함과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긴 호흡으로 아이의 인생을 바라본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만큼 시간은 저만치 달려가고 아이가 머무르는 삶의 공간도 조금씩 넓어져간다. 접하는 사람들은 더욱 다양화될 것이고 겪게 되는 경험의 난이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들은 더딜지언정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순간의 기쁨을 찾아갈 것이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법을 수없이 단련할 것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자기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는 행복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것만큼 감사하고 빛나는 순간이 있을까. 그리고 그 언저리에는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믿음으로 아이 곁을 지키는 내가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꼭 그런 부모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