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수학을 철학하다 2장
공약수는 단지 나눗셈의 결과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일까요?
수학의 한 구석에서 시작된 이 개념은, 어느새 윤리와 정치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고대 철학자들과 현대 헌법은 이 ‘공정한 나눔’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을까요?
수학 시간에 우리는
30과 18의 최대공약수가 6이라는 걸 배우죠.
하지만 그걸 구한 다음,
잠시 멈춰서 이렇게 물어보면 어때요?
“왜 하필 6이어야 하지?”
“그게 정말 공평한가?”
“그건 어떻게 ‘정의로운’ 나눔이 될 수 있지?”
이 질문은 그냥 수학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에요.
20세기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이라는 책에서
아주 독특한 가정을 하나 제시했어요.
“만약 내가 누구로 태어날지 모른다면,
나는 어떤 사회의 규칙을 원할까?”
그는 이걸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 불렀어요.
모두가 자기의 입장과 조건을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 전체의 규칙을 정한다면,
우리는 가장 공정한 원칙을 택하게 될 거라는 거예요.
그 원칙 중 하나가
‘차등의 원칙’이에요.
조금 덜 가진 사람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분배를 공정하게 조정하자는 생각이죠.
수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져요.
모두에게 ‘같이 나눌 수 있는 수’는 달라요.
하지만 최대공약수는
모든 수가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 단위를 찾아줘요.
즉, 서로 다른 수들이
함께 출발할 수 있는 가장 공평한 기준이에요.
공약수는,
롤스의 ‘정의로운 사회’를 떠올리게 해요.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분배의 기준을 찾는 것.
그게 바로 공약수가 가진 철학적 힘이에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정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상황에 있는데
둘에게 똑같이 5개씩을 나눠주는 것이
진짜 공정할까요?
한 사람은 이미 100개를 갖고 있고,
다른 사람은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면,
그 똑같음은 오히려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자의 차이를 고려한 비례적인 나눔”이
진짜 정의롭다고 말했어요.
이 생각은 사실,
우리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어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아니한다.”
이건 단순히 모두 똑같이 대하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다른 조건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야 한다는 것,
바로 그걸 담고 있어요.
그러니까,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건
고대의 철학자도, 지금의 헌법도
정의로운 사회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수학적으로도 이 말은 참 멋지게 다가와요.
30과 18은 같지 않아요.
그러나 그 속에 숨어 있는 공통된 단위, 즉 6이라는 비례의 단위가 있어요.
그걸 기준으로 나누면
각자의 몫이 다르지만,
서로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구조가 되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적절한 비율을 아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수학은 바로 그 ‘비율을 다루는 언어’죠.
공약수는, 그런 의미에서
수학 속의 정의감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선생님이에요.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공리주의》라는 책에서 이런 원칙을 제시했어요.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이
가장 도덕적인 선택이다.”
우리는 이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고 부르죠.
이 원칙을 공약수에 대입해 보면
어느 수보다도 많은 수들이
같이 나눌 수 있는 기준,
즉 최대공약수가 떠오릅니다.
공약수는 단순히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그건 가장 많은 수에게 의미 있는 기준이에요.
이런 점에서 최대공약수는
밀의 원칙처럼,
모두에게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기도 해요.
이렇게 보니까,
수학에서 ‘공약수’라는 개념 하나가
정치, 윤리, 철학의 세계와 이어져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그건 단순히 “몇으로 나눌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나누는 것이 옳은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깊은 질문으로 이어져요.
수학은 어쩌면
숫자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일 뿐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게 해주는 철학의 언어이기도 해요.
▶ 공약수를 배운다는 건,
단지 두 수를 나누는 법을 아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공정한지를 배우는 시간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이 한 단원이 끝나고 나서도
그 감각은 우리 안에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을 거예요.
균형 잡힌 저울은 의지와 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정의로운 분배’를 상징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철학과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시각적으로 떠올리게 해줍니다. 공약수에서 시작된 ‘공정한 나눔’의 감각이 결국 사회적 정의와 연결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