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수학을 철학하다 3장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숫자 하나를 다시 보려고 해요.
바로 0이에요.
수학 시간에 0은 아주 익숙하게 등장하죠.
수직선의 맨 왼쪽에 자리잡고 있고,
“아무것도 없음”을 뜻하는 숫자라고 배우지요.
그리고 이렇게도 배우죠:
∙ 덧셈에서는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숫자,
∙ 곱셈에서는 모든 수를 0으로 만들어버리는 숫자,
∙ 나눗셈에서는 금지된 숫자 — “0으로 나누지 마세요!”
교과서 속 0은 참 바쁘고 다재다능한 역할을 맡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한 번 진지하게 물어볼게요.
“0은 그냥 숫자일까요? 아니면 무언가 더 특별한 의미가 담긴 존재일까요?”
수학 교과서에서는 0으로 나눌 수 없다고 가르쳐요.
“왜요?” 하고 물어보면 대부분 이렇게 답해요.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럼 또 물어보고 싶어져요.
“왜 정의되지 않았어요?”
“그걸 고민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사실 있어요.
바로 7세기 인도의 수학자 브라마굽타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수학자들이 0과 나눗셈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왔어요.
어떤 이는 “0 ÷ 0 = 0”이라고 말했고,
어떤 이는 “무한대다”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결국 현대 수학은
“0으로 나누는 것은 정의하지 않기로 하자”고 결정했어요.
왜냐하면, 그건 수 체계 전체의 논리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연산이니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죠.
“그렇구나, 0은 그냥 하나의 숫자지만,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숫자구나.”
수학사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13세기 유럽의 수학자 피보나치는
인도의 숫자 체계를 유럽에 소개하면서도
0에 대해서만은 다른 숫자와 다르게 ‘기호(sign)’라고 불렀다고 해요.
왜냐하면 그 당시 유럽인들에게
0은 ‘숫자’라기보다는 불길하거나, 낯선 기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오늘날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0을 숫자라고 받아들이지만,
그건 오랜 시간, 수많은 문명과 사유를 거쳐 이뤄진 지적 도약의 결과였어요.
수학사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대인에게 숫자란,
언제나 ‘있는 것’을 세는 도구였다.
0(없음)이나 -1(존재하지 않는 수)은
상상하기 어려운 ‘추상적 도약(leap)’이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숫자를 배울 때도 0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 중 하나예요.
“사과 1개, 2개, 3개…”
이렇게 실물이 있으면 숫자를 세기 쉬워요.
그런데 “사과 0개”라고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어떻게 숫자로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려 하죠.
아무것도 없는데 그걸 ‘0개’라고 셀 수 있다는 건
사실 우리 인간의 머릿속에서
굉장히 추상적인 사유가 가능해야 가능한 일이에요.
그래서 0은 그냥 숫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이 필요해지는 숫자”예요.
그렇다면 다시 묻고 싶어요.
“교과서 속 0은 그냥 숫자일까?”
겉으론 그래 보여요.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0은 수학의 뼈대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예요.
예를 들어볼게요:
∙ 0은 덧셈의 항등원이에요.
→ 어떤 수에 더해도 그 수가 그대로 남는 유일한 숫자예요.
∙ 0은 정수의 기준점이에요.
→ 수직선에서 양수와 음수를 가르는 중심 좌표예요.
∙ 좌표평면의 원점 (0, 0)도
→ 모든 방향이 출발하는 기준이 되는 점이지요.
∙ 집합론에서는 0 = ∅(빈 집합)으로 정의돼요.
→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수 체계의 시작으로 삼는 거예요.
→ 그 위에 1 = {0}, 2 = {0,1}, 3 = {0,1,2}…
이런 식으로 없는 것에서부터 모든 수가 만들어진다는 개념이에요.
생각해보면 멋지지 않나요?
‘아무것도 없음’이 오히려 모든 수를 탄생시키는 씨앗이라는 거예요.
이 개념은 사실
동양의 철학자들, 특히 노자가
훨씬 오래 전부터 이해하고 있었어요.
《도덕경》에서는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바퀴통에 바퀴살을 끼워 수레를 만들지만,
그 중심의 비어 있음이 수레를 돌게 한다.”
“항아리는 흙으로 빚지만, 그 속 빈 공간이 물건을 담는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비어 있음이 있어야 쓸모가 생긴다는 뜻이에요.
바퀴의 구멍, 항아리의 속 공간처럼
없음이 유용함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통찰이지요.
0도 그래요.
그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10, 100, 1000 같은 숫자를 만들 수 있고,
자리값 체계도 유지돼요.
0은 없지만, 그 자리가 있어야 다른 수들이 자리를 잡는다.
이 말이 딱 들어맞는 거예요.
교과서에서는 0을
덧셈, 곱셈, 나눗셈의 규칙과 함께 소개해요.
하지만 거기에는 거의 나오지 않아요:
∙ 왜 0은 그렇게 행동하는지
∙ 왜 0은 정식 숫자로 인정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 0이 등장하면서 어떻게 문명이 바뀌었는지
이런 이야기를 함께 안다면,
0을 단지 “그냥 없는 수”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거예요.
수학은 계산만 배우는 게 아니에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우는 거예요.
그 중심엔 바로 0이라는 아주 특별한 숫자가 있어요.
이제 여러분에게 다시 물어볼게요.
“0은 그냥 숫자일까요?”
아니요.
0은 수의 시작점이자,
존재와 부재의 경계선이며,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침묵 속의 숫자예요.
다음 장에서는, 이 0이라는 숫자가
우리 삶과 사고방식에 어떤 사유의 길을 열어주는지
함께 사색해볼 거예요.
“0이라는 생각이 우리 삶에 던지는 질문”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191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0,10 전시회’ 장면.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동료 예술가들이 절대주의(Suprematism)를 선보이며, ‘0’을 새로운 예술적 출발점으로 선언했다. 0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모든 창조가 시작되는 빈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