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0의 발견은 어떤 혁명을 일으켰을까?

by 지경선


여러분, “혁명”이란 단어 들어본 적 있죠?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는, 근본적인 변화.

근데 그 혁명을 숫자 하나가 일으켰다면 믿어질까요?

바로 0이라는 숫자가 그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0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 이 숫자의 등장은 수학은 물론이고,

과학, 경제, 철학, 기술 전반에 걸쳐 문명 전체를 뒤흔든 대사건이었어요.

0이 없던 세상과,

0이 들어선 세상은

생각의 방식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

‘0이 만들어낸 혁명’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 숫자를 바꾼 혁명: “쓰기 쉬워졌어요!”


0이 도입되기 전,

사람들은 로마 숫자처럼 기호를 조합해서 수를 표현했어요.

예를 들면, 2688을 로마 숫자로 쓰면

MDCLXXXVIII,

거기에 2786은

MMDCCLXXXVI.

두 개를 더하면 5474인데, 이걸 쓰면?

MMMMMCDLXXIV…

벌써 머리가 아프죠?

그런데 0이 포함된 힌두-아라비아 숫자는 어떨까요?

2688 + 2786 = 5474.

숫자 네 개로 끝.

바로 이 차이 때문에

0이 포함된 10진법 자릿값 체계는

세상을 훨씬 효율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했어요.

그 덕분에 무역이 쉬워졌고,

복식부기, 장부 정리, 국제 교역도

모두 표준화된 숫자 언어 위에서 이루어졌죠.

한마디로 말하면,

0은 “숫자의 보편화”를 이끈 주인공이었어요.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숫자 언어를 만들어준 발명품이죠.


■ 수학을 바꾼 혁명: “새로운 문제를 풀 수 있게 됐어요!”


0이 생기자, 수학자들은

이전까지는 상상도 못한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미지수의 해가 0이면

“답 없음”으로 쳤어요.

그런데 이제는?

“x = 0”도 멋진 답이 된 거예요!

또한 음수도 함께 다루게 되면서

정수의 세계가 완성되었고,

방정식의 해법, 대수학, 해석기하학이 가능해졌어요.

예를 들어,

∙ 알콰리즈미는 0을 포함한 계산으로 알고리즘과 대수(algebra)를 만들었고,

∙ 바스카라 2세는 0과 음수를 이용해 복잡한 방정식을 다뤘고,

∙ 데카르트는 해석기하학에서 좌표의 원점(0,0)을 기준으로 공간을 정의했으며,

∙ 뉴턴과 라이브니츠는 0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값을 다루는 미적분학을 만들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발명이 ‘0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에요.

극한, 무한급수, 미분과 적분…

이건 ‘0에 가까워짐’을 다루는 수학적 사유예요.

0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배우는 수학 절반은 사라졌을지도 몰라요.


■ 과학을 바꾼 혁명: “자연을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게 됐어요!”


0은 과학의 언어이기도 해요.

특히 천문학, 물리학, 우주론에서 그 힘을 발휘했죠.

인도의 아리아바타는

0을 포함한 계산으로 지구의 둘레, 태양년을

소수점 7자리까지 정확히 계산했어요.

지구 자전설도 제안했지요.

이후 이슬람과 유럽의 천문학자들은

행성 궤도, 달력 계산을 할 때

0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물리학에서는요?

∙ 속도 0, 가속도 0, 힘 0,

∙ 절대온도 0도, 영점 에너지,

∙ 전하량 0, 운동량 0…

이 모든 개념이 자연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한 기준이죠.

0이 없으면, 현대 물리학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공(빈 공간)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17세기 토리첼리의 실험은

진공 상태가 존재함을 증명했어요.

그 이후,

뉴턴은 절대공간(=빈 공간 속 운동)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20세기 양자역학은

진공을 “에너지가 들끓는 0의 장”으로 설명해요.

다시 말해,

과학은 0을 이해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계속해왔던 거예요.


■ 기술을 바꾼 혁명: “디지털 세상의 뿌리가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세상.

이것도 사실 0이 없었으면 절대 시작할 수 없었어요.

왜냐고요?

컴퓨터는 오직 0과 1로만 작동하거든요!

이걸 이진법이라고 불러요.

전기 스위치를 켰다(1), 껐다(0)만으로

모든 정보가 저장되고 계산되는 구조죠.

사진, 음악, 영상, 채팅, AI, 인터넷

— 이 모든 게 결국 0과 1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정보 처리의 결과예요.

영국 수학자 마커스 듀 소토이는 이렇게 말했어요:

“오늘날 디지털 세계는

무(0)와 유(1)에 기반한다.

0의 발명은 컴퓨터의 뿌리다.”

0이 없었다면

스마트폰도, 검색도, 인공지능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 철학을 바꾼 혁명: “무(無)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수학과 과학, 기술을 뛰어넘어

0은 인간의 철학적 사유도 바꿔놓았어요.

0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없다는 건 정말 없는 걸까?”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는 걸까?”

이 질문은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던진 근본 질문이기도 해요.

“왜 무(無)가 아니라 유(有)가 있는가?”

이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에요.

존재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무에서 시작된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같은 존재론적 탐구로 이어지는 길이에요.

중세 유럽에서는

“무에서 창조된다”는 개념이 교회 논쟁 주제였고,

1215년 교회공의회에서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공식 교리로 채택하기까지 합니다.

근대 이후에는

하이데거,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이

nothingness(무)의 개념을

자유, 책임, 인간 존재의 본질과 연결해 사유해요.

이와 동시에,

불교의 ‘공(空)’ 사상도

서양 학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줬습니다.

결국 0이라는 숫자는

“없는 것”에 대한 인류 전체의 인식 전환을 이끌었고,

동서양 철학의 대화도 가능하게 했어요.

0은 단지 숫자가 아니었어요.

그건 세상을 바꾼 하나의 사유 방식이었어요.

0의 탄생은,

계산을 쉽게 한 것이 아니라,

“없음”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만든

인류의 정신적 도약이었습니다.

다음 장에선,

이제 우리가 실제로 수학 교과서에서 0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그 역사와 배경을 함께 짚어볼 거예요.

“교과서 속 0, 그냥 숫자일까?”

그 질문이 다음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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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미르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1915) —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듯한 이 평면은 ‘없음’이 하나의 기준이 되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말레비치의 급진적 추상처럼, “형식의 제로(zero of form)”에서 새로운 좌표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말하는 ‘0’—원점, 진공, 이진법—도 바로 이런 빈자리에서 문명을 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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