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0은 어떻게 세계를 여행했을까?

by 지경선


자, 이제 여러분에게 또 하나의 질문이에요.

0이라는 숫자가 처음 인도에서 태어났다면, 그게 지금 우리 교과서까지 어떻게 온 걸까요?

누가 0을 들고 길을 나섰고, 어느 나라가 이를 받아들였고, 또 어디서는 왜 한동안 거부했을까요?

오늘은 숫자 0의 긴 여행 이야기,

수학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식의 대이동을 따라가 보려 해요.

이건 단순한 수의 이동이 아니에요.

문명이 문명에게 생각의 씨앗을 전한 감동적인 이야기랍니다.


■ 인도에서 이슬람 세계로: “숭야”에서 “시프르”로


브라마굽타가 0을 정식 숫자로 만든 지 1세기쯤 뒤,

8세기 바그다드, 학문의 수도라 불리던 도시에 “지혜의 집(바이툴 히크마)”이라는 학술 기관이 생겨요.

여기선 인도와 그리스의 천문학·수학 책들을 아랍어로 번역하던 거대한 프로젝트가 벌어졌죠.

특히 773년, 아바스 왕조의 대신 가문 바르마키드는 인도로 사절을 보내

브라마굽타와 아리아바타의 수학책을 입수해오고,

이후 이 책들은 아랍어로 번역되며 이슬람 세계의 수학 발전에 불을 지펴요.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알콰리즈미(Al-Khwarizmi)예요.

그는 9세기 초에 인도의 10진법 숫자 체계를 종합해 아랍어로 소개했는데,

그 안에 바로 0, 즉 “아무것도 아닌 수”도 포함되어 있었죠.

알콰리즈미는 인도말 ‘숭야(śūnya)’를 아랍어로 옮겨

“시프르(ṣifr, صفر)”, 즉 “텅 빈”이라는 단어로 바꿔 불렀어요.

그리고 0을 작은 동그라미(○)로 표기하자고 제안합니다.

여기서 나온 ‘sifr’는 이탈리아에서 zefiro, 프랑스에서는 zéro,

결국 오늘날 영어 zero의 어원이 된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그의 이름에서 algorithm(알고리즘)이라는 단어도 태어났어요.

이처럼 0과 알고리즘은 모두 인도-이슬람-유럽 지식 네트워크 안에서 탄생한 거예요.


■ 0을 서쪽으로 실어나른 사람들: 학자와 상인과 무어인


그다음 무대는 이슬람 세계의 서쪽 끝,

무어인들이 지배하던 스페인과 시칠리아예요.

그들은 8~9세기 무렵,

힌두-아라비아 숫자와 함께 0의 개념도 유럽에 전달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12세기, 알콰리즈미의 책이 라틴어로 번역되며

유럽 대학에서 400년 넘게 교과서로 사용됩니다.

이 무렵 유대계 학자 이븐 에즈라는 0을 “갈갈(바퀴)”라고 불렀어요.

“동그랗고 아무것도 없지만, 회전하는 힘이 있다”는 의미였겠죠.

그리고 수학자 알-사마왈은

0과 음수의 관계를 정리하며 개념을 더욱 정밀화합니다.

지금 0은 이슬람 수학자들의 손에서 철학과 기하와 대수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었던 거예요.


■ 유럽, 0을 만나다… 그런데 거부하다?


자, 이제 유럽으로 가볼까요?

유럽에서 0을 ‘직접적으로’ 소개한 사람은

바로 여러분도 잘 아는 피보나치(Fibonacci)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알제리 등지에서 무역을 하며

힌두-아라비아 숫자와 0의 편리함을 체험하게 돼요.

그리고 1202년,

유명한 책 《산가지책(Liber Abaci)》을 씁니다.

이 책은 유럽 최초로 0이 포함된 십진법 수 체계를 체계적으로 소개한 책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

피보나치는 0을 “숫자”가 아닌, “기호(sign)”라고 부르며

조심스럽게 설명해요.

유럽 사람들이 0을 진짜 숫자로 인정하길 꺼렸다는 증거죠.


■ 0은 ‘악마의 기호’? 유럽의 저항


실제로, 유럽은 0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당시 교회는 0과 아라비아 숫자 전체를 ‘이교도의 산물’이라며 경계했고,

상인들도 “0이나 6, 9는 필체에 따라 헷갈리고 위조되기 쉽다”며 싫어했어요.

심지어 1299년, 피렌체에서는

공식 장부에 아라비아 숫자 쓰는 걸 법으로 금지했어요!

0은 “숫자도 아닌 게, 5를 50으로 뻥튀기하는 사기꾼 같은 존재”로 여겨졌죠.

1348년에는 파도바에서 0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음수는요? 더 심했어요.

“없는 것보다 더 없는 수”라는 이유로 기이하거나 위험한 숫자로 여겼어요.

하지만 결국, 상인들의 계산 효율성 앞에 저항은 무너지기 시작해요.

0과 십진법은 무역의 필수 도구가 되어

프랑스, 독일, 북유럽까지 점점 퍼져나갑니다.

16세기쯤엔 유럽 전역이 십진법과 0을 받아들이게 되고,

17\~18세기 과학혁명기에는 0이 수학·물리학·천문학의 기본 언어가 되었어요.


■ 동쪽으로 간 0: 중국과 조선에도 찾아갔어요


0은 서쪽으로만 간 게 아니었어요.

동쪽으로도 조용히 길을 떠났어요.

13세기, 중국 남송의 수학자 진구소(秦九韶)는

1247년 책에서 동그란 ‘〇’ 기호로 0을 나타냈고,

이어 원나라의 주세걸(朱世傑)도 같은 기호를 씁니다.

중국은 인도-이슬람 수학과 교류하며

0의 표기와 개념을 수학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일본과 조선도 중국을 통해 자연스럽게 0을 배우게 되었죠.

비록 수학자 수준에서의 개념 수용이 중심이었지만,

0은 이미 동아시아 수학 언어 속에도 들어오기 시작한 거예요.


■ 그래서, 0은 세계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이제 여러분은 알겠죠?

0은 인도에서 태어나,

이슬람 세계를 거쳐, 유럽과 동아시아로 퍼져간 글로벌 개념이에요.

각 지역은 자신들의 문화와 철학 속에서 0을 다르게 이해하고 수용했어요.

∙ 인도에서는 공(空)의 철학 속에서,

∙ 이슬람 세계에서는 실용성과 번역의 힘으로,

∙ 유럽에서는 저항과 과학의 진보 속에서,

∙ 동아시아에서는 문헌과 교류를 통해 받아들여졌죠.

결국 17세기 이후,

0은 전 세계 수학자들에게 공인된 개념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과학, 기술, 컴퓨터, 경제, 예술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숫자가 되었어요.

0의 여행은 단지 기호 하나가 퍼진 게 아니에요.

그건 사유의 확장,

문명의 소통,

두려움을 넘은 용기의 발현이었어요.

“없는 것을 다루는 법”을 전 인류가 함께 배운 사건이었던 거예요.

이제, 우리는 0이 얼마나 멀고도 깊은 길을 걸어왔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다음은, 그 0이 어떤 혁명을 만들어냈는지 함께 살펴볼 시간입니다.

“0의 발견은 어떤 혁명을 일으켰을까?”

그 여정은 여기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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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사원의 풍경 위에 초기 힌두-아라비아 숫자가 나열된 장면입니다. 특히 둥근 원형의 ‘0’은 지금 우리가 쓰는 숫자의 기원을 보여줍니다. 숫자와 문명이 함께 걸어온 길을 상징적으로 담은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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