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수학을 철학하다 3장
자, 이제 여러분에게 묻고 싶어요.
‘없는 것’을 숫자로 만든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 이름은 조금 낯설 수 있어요.
브라마굽타(Brahmagupta).
7세기 인도에서 활약한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예요.
지금 인도 델리의 한 공원에는,
그의 얼굴을 조각한 부조상이 서 있어요.
“0을 발명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말이죠.
하지만, 그는 단순히 ‘기호를 만든 사람’이 아니었어요.
“없음”을 ‘숫자’로 인정하고, 그 연산법칙을 만든 인류 최초의 수학자였어요.
그가 한 일은, 단순한 기호 발명이 아니라
수학 역사 전체를 바꾸는 철학적 도약이었어요.
브라마굽타가 등장하기 전에도
인도에는 ‘0의 씨앗’들이 이미 자라고 있었어요.
기원전 2세기쯤,
산스크리트 문학을 연구하던 핑갈라(Pingala)는
“숫자에서 자기 자신을 빼면 ‘숭야(śūnya)’가 된다”는 구절을 남겼어요.
숭야, 이 말은 ‘텅 빔’, ‘공허함’을 뜻했지요.
그리고 3세기경 상인들이 쓴 계산서인 ‘박샬리 사본’에는
숫자 사이에 점(dot)을 찍어 자릿수를 비워두는 표기가 등장합니다.
이건 마치 우리가 ‘105’라고 쓸 때, 중간의 0을 찍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죠.
5세기쯤에는 아리아바타(Aryabhata)라는 수학자가
‘kha(카)’라는 말을 써서 빈자리를 표시했습니다.
이 말은 나중에 0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고요.
그러나, 여기까지는 단지 ‘빈 자리 표시’일 뿐,
0이라는 숫자 자체를 연산의 주인공으로 세운 건 아니었어요.
진짜 전환은 이제부터입니다.
서기 628년.
브라마굽타는 《브라흐마스푸타시딧한타(Brahmasphuṭasiddhānta)》라는 책을 씁니다.
산스크리트 시(詩) 형식으로 된, 수학과 천문학을 아우른 대작이었죠.
그리고 이 책에서 그는 처음으로 0을 수처럼 다뤘어요.
즉, 0을 숫자 취급하고, 계산법까지 만들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규칙들:
∙ 0 + 양수 = 양수
∙ 0 - 양수 = 음수
∙ 0 + 0 = 0
∙ 0 × 어떤 수 = 0
이런 건 지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그대로예요.
물론… 나눗셈에서는 조금 삐끗했지만요.
브라마굽타는 이렇게 말했어요:
“0 ÷ 0 = 0이다.”
지금은 이게 정의되지 않는 연산,
즉 수학에서 금기시되는 연산이라는 걸 알지만,
당시로서는 없음끼리 나누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는 직관이었던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마굽타는 0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자릿수 기호가 아닌,
연산 가능한 ‘진짜 숫자’로 확립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인물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그가 왜 0을 그렇게 이해했는가예요.
브라마굽타는 0을 “숭야(śūnya)” 혹은 “카(kha)”라고 불렀어요.
‘숭야’는 산스크리트어로 ‘공허함’, ‘비어 있음’이라는 뜻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과 같은 의미예요.
즉, 그는 0이라는 숫자에 철학적 개념을 담은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없음’을 단순한 결핍으로 보지 않고,
모든 수의 바탕이 되는 어떤 상태,
마치 하얀 도화지처럼 여긴 거죠.
이런 발상은 그리스 철학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진공(0)을 부정했고,
“무는 존재할 수 없다”고까지 했어요.
하지만 인도에서는 공(空)을 깊이 사유해 온 전통이 있었고,
그 철학이 수학 개념 안으로 녹아든 거예요.
브라마굽타 이후,
인도의 수학자들은 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0과 음수, 그리고 정수의 연산 체계를 계속 발전시켰어요.
예를 들어
9세기의 마하비라(Māhāvīra)는
“수를 0으로 나누어도 그대로다”라고 말했지만,
이건 지금 보면 좀 어색한 결론이죠.
12세기의 바스카라 2세(Bhāskara II)는
“수를 0으로 나누면 무한대가 된다”고 하며
0을 신에 비유하는 표현도 썼어요.
이처럼 0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오랫동안 인류 수학의 숙제였지만,
덧셈, 뺄셈, 곱셈에서
브라마굽타가 남긴 규칙은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어요.
이쯤에서 한 번 묻고 싶어요.
브라마굽타가 0의 법칙을 정리하던 7세기,
유럽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대답은… 아직도 로마 숫자를 쓰고 있었어요.
1, 5, 10 같은 기호들을 조합해 쓰고 있었고,
0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연도도 어땠냐면,
“1년 전”은 1 BC,
“1년 후”는 AD 1이에요.
0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중국이나 이슬람 세계도 아직 0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전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브라마굽타는
인류 전체에서 가장 먼저 ‘0의 사유를 완성한 인물’이었던 거예요.
학자들은 지금도 말해요.
“브라마굽타는 0의 발명가였다.”
그는 빈 것을 숫자로 만들었고,
없음을 다룰 수 있는 법칙을 설계했으며,
수학이 더 높은 추상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했어요.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쓰는
0, 10, 100, 좌표의 원점, 함수의 시작점, 미적분, 컴퓨터의 이진법…
이 모든 게 달라졌을지도 몰라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아무것도 없는 것을 숫자로 인정한 순간,
수학은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갔어요.
브라마굽타는 그 문을 연 사람이에요.
그 문 너머엔,
“없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놀라운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다음 절에서는,
이 놀라운 숫자 0이 어떻게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났는지 함께 따라가볼 거예요.
“0은 어떻게 세계를 여행했을까?”
기대되시죠?
7세기 인도의 수학자 브라마굽타. 그는 처음으로 ‘0’을 숫자로 받아들이고 연산 규칙을 세운 인물로, 오늘날까지 ‘0의 발명가’라 불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