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1 수학을 철학하다 3장
여러분,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쓰고 있는 0.
이 숫자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10이라는 숫자는 1과 0으로 이루어져 있죠.
근데 0이 없었다면 10은… 그냥 1?
100은요? 1000은요?
헷갈리죠? 그런데 말이에요,
고대 사람들은 실제로 0 없이도 수를 세고 계산을 했어요.
그리고 심지어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요!
“에이 설마요?” 할 수 있지만, 이건 진짜예요.
■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어떻게 숫자를 썼을까?
먼저 우리가 사랑하는 고대 문명, 바빌로니아로 가볼까요?
이 사람들은 약 4,000년 전부터 60진법이라는 놀라운 수 체계를 사용했어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 시계에서 ‘60초 = 1분’,
∙ 각도에서 ‘360도 = 한 바퀴’를
쓰게 된 것도 다 바빌로니아인의 영향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들이 처음엔 0이라는 숫자 없이도 이 모든 걸 해냈다는 거예요!
“그럼 210이랑 21은 어떻게 구분했어요?”
좋은 질문이에요. 처음엔 문맥으로 때려맞췄어요.
‘앞뒤 숫자 흐름을 보면 알 수 있잖아~’ 하면서요.
그러다 불편했는지, 기원전 4세기쯤부터는
쐐기모양 기호 두 개를 나란히 적어서 ‘빈 자리’를 표시하는 약속을 만들어요.
하지만!
이건 우리가 아는 0처럼 ‘숫자 0’이 아니었어요.
그냥 ‘여기 비었어요’라고 알려주는 표시였을 뿐이죠.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숫자의 끝에는 이 기호조차 안 썼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21’인지 ‘210’인지 ‘2100’인지
끝부분은 여전히 맥락으로 짐작해야 했어요.
지금이라면 시험에서 탈락감이지만,
그들은 잘 살아남았어요.
■ 고대 그리스와 로마, 0은 필요 없다?
그럼 유럽 문명은 어땠을까요?
우리가 익히 들어본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애초에 자리값 기수법을 쓰지 않았어요.
즉, 자릿수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0이란 걸 만들 필요도 못 느꼈던 거죠.
예를 들어 볼까요?
∙그리스 숫자는 알파벳 조합이었어요.
∙로마 숫자는 I, V, X, L, C, D, M 같은 기호였고요.
→ 여러분이 잘 아는 로마식 숫자예요. (예: IV = 4, X = 10)
그런데 여기엔 문제가 하나 있어요.
만약 계산 결과가 0이면 어떻게 표현할까요?
그냥 숫자로 쓰지 않았어요.
대신 “nihil(니힐)”, 즉 ‘무(無)’라는 말로 표현했어요.
이건 숫자가 아니라 철학적 개념에 가까웠죠.
그리스 수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기하학으로 세상을 계산했어요.
수를 다루기보단 도형과 길이를 가지고 문제를 풀었기 때문에,
숫자 0이 꼭 필요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유클리드나 아르키메데스처럼
지금도 위대한 수학자라 불리는 분들의 책을 보면
숫자 0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요.
■ 그런데, 마야 문명에서는…?
놀랍게도,
남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은 0을 독자적으로 발명했어요.
이 사람들은 달력을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복잡한 날짜 계산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조개껍데기 모양의 기호를 이용해 0을 나타냈고,
기원전 몇 세기부터 자리값 기호로서 0을 분명히 사용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 지식은 신대륙 안에서만 머물렀어요.
유럽이나 아시아에 영향을 주진 못했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진
마야의 0은 세계로 퍼지지 못했던 거예요.
■ 중국에서도 0은 없었다?
중국은요?
고대 중국에서는 산가지(계산용 막대기)를 이용했어요.
이때 숫자 사이에 빈 칸을 비워두는 방식으로 자릿수를 표현했어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간의 빈칸이지, 숫자 0은 아니었어요.
지금 우리가 쓰는 ‘零(영)’이라는 글자는
훨씬 나중에 생겨난 말이에요.
즉, 중국도 오랫동안
‘0’이라는 숫자를 따로 사용하지는 않았던 거죠.
■ 철학적 이유도 있었다?
자, 이제 중요한 질문을 해볼게요.
왜 고대 사람들은 0을 쓰지 않았을까요?
불편하지 않았을까요?
놀랍게도, 그들은 별로 불편함을 못 느꼈어요.
왜냐하면, ‘없음’을 숫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배경에는 철학이 있어요.
■ 서양 철학은 ‘무’를 무서워했다
그리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에는 진공(빈 공간)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죠.
그들에게는
무(無)는 존재의 반대이자, 위험한 개념이었어요.
“무에서 뭔가가 생긴다”는 생각은
아예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심지어 성경 창세기에서도
세상이 창조되기 전의 상태를
“흐무와 공허”, 혼돈의 상태로 묘사하고 있어요.
무는 두려움과 불안의 심연이었죠.
■ 그런데, 인도는 달랐어요
인도와 불교에서는 완전히 달랐어요.
기원전 1000년경부터 형성된
불교 사상에서는 이렇게 말해요.
“모든 존재는 본래 실체가 없다.”
“모든 것은 공(空)하다.”
이건 단순한 부정이 아니에요.
모든 것이 변화하고 상호 의존적이라는 깊은 통찰이에요.
그러니까, ‘없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진실을 꿰뚫는 깨달음이 된 거예요.
그래서 인도 철학자들은
‘숭야(śūnya)’, 즉 ‘공허함’을 뜻하는 말을
아예 숫자 0의 이름으로 쓴 거예요.
■ 고대 사람들은 0 없이도 살았지만…
이제 정리해볼까요?
∙ 바빌로니아는 자리 표시만 했고,
∙ 그리스·로마는 숫자 자체 없이 살았고,
∙ 마야는 0을 만들었지만 전파되지 않았고,
∙ 중국은 공간으로 대신했어요.
∙ 그리고 철학적으로 ‘무’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아니었다면,
0은 낯설고 두려운 존재였어요.
결국,
고대인들은 0 없이도 계산했고, 살았고, 심지어 아주 멋진 문명도 만들었지만,
‘0’을 진짜 수로 만든 것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특별한 도약이었던 거예요.
그 도약이, 다음 절에서 만날
인도 수학자 브라마굽타의 이야기랍니다.
유클리드 『원론』(1482년 판본). 2,000년 넘게 전 세계 수학 교과서로 쓰였던 책으로, 도형과 증명을 글과 그림으로 함께 기록한 모습이다. 당시에는 0이라는 숫자조차 없었지만, 이렇게 정교한 수학 체계를 세웠다는 사실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