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0이라는 생각이 우리 삶에 던지는 질문

중1 수학을 철학하다 3장

by 지경선


여러분, 이런 질문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을 거예요.

“왜 이 세상은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할까?”

이건 철학자들이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에요.

0이라는 숫자는, 사실 이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0은 ‘없음’을 나타내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없음이야말로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

바로 그게 0의 철학이에요.


■ 첫 번째 질문: “없음이 어떻게 무언가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보통 뭔가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죠.

하지만 때로는 ‘없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어요.

∙ 방 안의 빈 공간이 있어야 우리가 걸어 다닐 수 있고,

∙ 음악 속의 쉼표가 있어야 감정이 흐르고,

∙ 하얀 캔버스가 있어야 그림을 시작할 수 있죠.

이처럼, 0이라는 개념은

‘없음이 무언가를 가능하게 한다’는 존재론적 역설을 품고 있어요.

불교에서는 이걸 이렇게 말해요:

“모든 것은 공(空)하다.”

즉, 우리가 보는 모든 현상은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실체 없는 인연의 조합이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0과 1, 없음과 있음은 정말 다른 걸까요?

불교의 경전 《반야심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형체 있는 것은 곧 비어 있고,

비어 있는 것이 곧 형체라는 말이에요.

결국, 우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들도

그 밑바탕에는 거대한 없음의 틀(0)이 깔려 있다는 거죠.

이건 삶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를 바꾸는 깨달음이에요.


■ 두 번째 질문: “0이 없으면, 무한도 없을까?”


0은 또 하나의 철학적 쌍둥이를 데려왔어요.

바로 무한(∞)이에요.

0과 무한대는 겉으로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서로를 떠날 수 없는 개념이에요.

0이 없다면,

‘없음에서부터의 거리’도 없고,

무한에 다가가는 움직임도 정의할 수 없어요.

현대 우주론에서는 이런 상상을 해요:

> “우주는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펑!’ 하고 시작되었다.”

이게 바로 빅뱅 이론이에요.

양자역학에서는 진공 상태조차 끊임없이 입자와 에너지가 출몰하는 공간으로 봐요.

즉, 완전한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결국, 우주 과학에서도

0은 단지 수학 기호가 아니라,

“존재와 무의 경계에서 우주를 이해하려는 창문”이 되는 거예요.


■ 세 번째 질문: “0에서 시작하는 삶도 가능한가?”


여러분, 살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은 순간을 경험한 적 있나요?

실패하거나, 관계가 끊어졌거나,

마치 모든 것이 0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이 있어요.

“0에서 다시 시작하자.”

이 말엔 특별한 힘이 담겨 있어요.

0은 끝이자 시작이거든요.

아무것도 없기에,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이 열리는 자리,

그게 바로 0이에요.

건물을 지으려면 0층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빈 도화지가 필요하죠.

불교의 가르침에도 이런 역설이 있어요:

“일체는 공하므로, 새로운 연기로 현상이 생긴다.”

공(空)하기 때문에 새로운 현상이 피어날 수 있다는 뜻이죠.

실존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을 “무(néant)의 존재”라고 불렀어요.

즉, 인간은 고정된 본질 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의미를 만들어갈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말이에요.

이 말은,

0이라는 상태를 마주할 수 있어야

진짜 자유와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 네 번째 질문: “사람 사이에서도 0이 있을까?”


0은 사회와 윤리의 질문도 던져요.

예를 들어 빈부격차를 생각해볼까요?

어떤 사람은

숫자가 1, 2, 3... 점점 커지는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은

늘 0에 가까운 상태에서 살아가요.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표현도 쓰죠.

누군가가 이익을 보면,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는 게임이에요.

이 경우, 전체 합계는 항상 0이에요.

그런데 이상적인 사회는 “플러스섬(positive-sum)”,

즉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죠.

0은 여기서

공정함의 기준이 되고,

모두가 다시 출발할 수 있는 바닥점이 되기도 해요.

또한 환경 분야에서는

“탄소 배출 0” = “넷 제로”라는 표현이 쓰여요.

지구가 생존하기 위해

모든 국가와 기업이 도달해야 할 균형점이죠.

심지어 우리의 삶에서도,

미니멀리즘, 소확행,

즉 불필요한 것을 비우고

‘0에 가까운 상태에서 오히려 평화를 찾자’는 삶의 방식이 유행하고 있어요.

0은

물질과 정신 사이의 균형점,

그 어딘가에서 질문을 던지는 숫자인 거예요.


■ 그래서, 0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이제 우리는 알 수 있어요.

0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에요.

0은 생각을 열어주는 문이에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없다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걸까?”

“무에서 시작하는 삶도 의미 있을까?”

“존재란 무엇이고, 나란 누구일까?”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에서 오는 평화는 없을까?”


철학자, 과학자, 시인, 수학자, 그리고 우리 모두는

0을 보며 이런 질문을 떠올립니다.

0은 침묵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숫자예요.

0은 비어 있지만, 시작을 품고 있는 자리예요.


그렇기에 0은

우리 삶에서도 때때로 도약의 발판이 되어줍니다.

이 숫자가 수학을 넘어,

존재, 우주, 공동체, 그리고 내 마음의 중심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철학적인 수학 공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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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어둠 속에도 수천 개의 은하가 숨어 있다 — NASA 허블망원경이 촬영한 〈허블 울트라 딥 필드〉(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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