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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경선 May 09. 2024

음식에 대한 기억

'생애사' 질적연구방법을 공부하면서_차의대 일반대학원 의학과 박사과정

음식에 대한 기억


음식은 엄마다.


음식에 관한 기억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엄마는 아들 5명 딸 3명인 집의 둘째 딸이다. 엄마는 전라도 해남 사람이다. 엄마 나이는 모른다. 그냥 호랑이띠라고 기억한다. 매년 바뀌니까, 그렇게 기억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내 나이도 모르고 그냥 뱀띠라고 기억하고 있으니 별로 불효녀도 아닌 게 아닐까?라고 자위하고 있다.


음식에 관한 기억이라고 할 때, 엄마가 생각났고, 음식을 많이 하는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음식 솜씨가 매우 좋다. 요즘으로 말하면 ‘요리영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엄마는 인격적인 사람이다. 엄마한테 내가 매번 하는 말이 있는데, 엄마 인격은 ‘하버드’다. 정말이다. 우리 집안에 친가 외가 모두 우리집에서 1년이상식 안 살아본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일이 많은 집이었다. 우리 엄마는 사람들에게 잘했고 그에 대해서 크게 나쁘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뭐 이 정도면 부처님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복을 많이 지었다.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이다.


징글징글한 친척들이 속을 썩이고 엄마 속을 뒤집어 놔도 우리 엄마는 끝까지 인간으로서 해야 될 도리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런 엄마가 옛날에는 그렇게 마음에 안들고 속상했지만, 지금 평안한 엄마의 모습을 보면 정말 복을 받아서 그런 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니 나도 엄마처럼 노후를 맞이하고 싶은 생각도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닐까?


일이 많던 수표동 살았던 어릴 때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명절 때 엄마는 어떤 고아 아저씨를 잘 챙기셨다. 수표동은 을지로 3가 쪽인데 예전에는 그 곳에 막노동꾼도 많았고, 종이관련 제업사들이 많아서 도시 빈 사무실에 거주하면서 일을 거드는 사람들도 많이 살았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추석이었다. 추석에 햇볕이 따뜻하고 도시공동화 현상으로 휴일엔 을지로가 텅 비게 된다. 그런 도시의 한가로움을 어려서인지 좋아했다.


아침에 우리끼리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먹을 시간인데 엄마는 동네에 고아 아저씨를 데려오라고 시켰다. 추석이라 식당 여는 곳이 없을 거라며, 그 아저씨가 어디 건물에 사니 나와 언니한테 같이 모시고 오라고 했다. 그 아저씨가 사는 건물에 들어갔다. 높지 않은 작은 빌딩에 2층인가 3층이었는데, 하도 좁은 집이라서 문을 열자마자 방이 었는데, 거기 아저씨가 먹던 소주병이 있고 라면을 전기곤로 같은 것에 끓여 먹은 흔적도 있었다. 그러한 너저분한 집안 모양도 아저씨는 감추지 못하고 머리가 부스스해서 일어나셨다.


“아저씨 엄마가 모셔오래요!” 언니랑 나는 합창을 했다. 우리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아저씨를 데리고 집에 오는데 그렇게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했다. 아저씨도 우리가 부른 것을 좋아하는 눈치였다. 아빠가 아저씨가 오니까 국에 고기 많이 주라고 엄마한테 말하고 밥을 아빠 옆에 앉으라는 자리 표시를 손짓으로 했다. 우리는 7식구이기 때문에 큰 상에서 먹었는데, 아빠가 그렇게 자리를 내주니까 동생들이랑 우리가 한칸씩 옆으로 꾸물꾸물 자리를 옮겼다.


엄마가 밥을 다 먹고 밤에도 내일도 연휴이니 먹으라고 부침개며 국이며 밥이며 송편들을 싸드렸다. 나는 그 아저씨가 너무 흰머리카락을 많이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나이가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머리가 하얀거를 ‘새치’라고 한다고 아빠가 말해줬다. 아빠가 그 아저씨가 가고 나서 그런 말을 하셨다. 아저씨 아니라고, 오빠 정도 될 거라고 말이다. 혼자 살아서 저렇게 고생을 많이 하니 새치가 많이 나기도 났다 하시면서 안쓰러워하셨다.


우리 아빠도 어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중에 외할머니를 만나서 살아온 세월이 있으셔서 아빠는 고아가 어떤 건지 잘 안다고 말씀해 주셨다. 음식 생각을 하다보니, 아빠 생각도 엄마 생각도 나는 것이 참 신기하다.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인 거 같다. 이렇게 좋은 아빠와 엄마를 두었으니 말이다. 갑자기 자랑 아닌 자랑을 하게 되니, 부끄럽기도 하고 혼자 옛 생각에 아련한 추억에 빠지기도 하니 오늘도 참 행복한 글쓰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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