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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리뷰_장자의 호접몽, 사유실험, 그리고 의식의 경계

C. P. Hertogh(2024)

by 지경선

장자의 호접몽, 사유실험, 그리고 의식의 경계 ― C. P. Hertogh의 「Turn to Butterfly Dream—Zhuangzi’s Thought Experiments and Animal Consciousness」를 중심으로


1. 서론: 호접몽에서 BCI까지, 흥미로운 사유의 여정


만약 우리가 뇌를 다른 신체로 옮길 수 있다면, 그때의 “나”는 여전히 나일까? 혹은 클라우드에 의식을 업로드해 언제든지 다른 몸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그 존재는 원래의 나와 동일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넷플릭스의 얼터드 카본(Altered Carbon)이나 서브스텐스(The Substance) 같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상상들이지만, 사실 고대 중국 철학자 장자가 이미 던진 의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자의 유명한 이야기 호접몽(胡蝶夢)은 이러한 사유의 출발점이다.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그러나 깨어난 그는 “내가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신비담이 아니라,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문제를 던지는 철학적 장치다.


C. P. Hertogh의 논문 「Turn to Butterfly Dream—Zhuangzi’s Thought Experiments and Animal Consciousness」(2024)는 바로 이 호접몽을 현대 철학의 사유실험(thought experiment)의 틀 안에서 다시 해석한다.


저자는 장자의 이야기를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퍼트남의 “뇌 항아리”, 차머스의 “좀비 논증” 등 서양의 대표적 사고실험들과 나란히 두며, 의식과 정체성 문제를 탐구할 수 있는 중요한 철학적 전거로 제시한다.



2. 본론: 호접몽의 철학적 확장


2.1 호접몽과 의식의 불확실성


호접몽은 자아와 정체성이 절대적 실체가 아니라 상황적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드러낸다. 내가 나비인지 장자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은, 자아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확실하고 경계가 유동적이라는 통찰을 담는다.


Hertogh는 이를 현대 철학적 문제와 직접 연결한다. 특히 데이비드 차머스의 좀비 논증과 비교하면, 두 사유실험 모두 의식의 본질이 물리적 과정에 환원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호접몽은 정체성의 불확실성을, 좀비 논증은 의식의 고유성을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동양과 서양의 철학이 만나는 지점을 보여준다.


2.2 뇌 항아리와 현실 인식의 신뢰성


퍼트남의 뇌 항아리 실험은 우리의 경험이 실제와 구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뇌가 단지 자극만 받고 있다면, 현실의 진정성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이는 장자의 호접몽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논문은 이 두 실험을 통해, 자아와 현실 모두 불확실성 위에 서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장자의 직관은 현대 인식론적 회의와 대화할 수 있는 고전적 사유의 자원으로 재해석된다.


2.3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과 상상력


Hertogh는 호접몽을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과도 연결한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로 달린다면 무엇을 보게 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상대성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는 실험 불가능한 상황을 상상으로 탐구한 사례다. 호접몽 역시 직접 검증할 수 없는 의식과 꿈의 경계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사유실험의 보편적 방법론을 보여준다.


결국 호접몽은 과학적 사고실험과 철학적 사유실험이 공유하는 상상력의 힘을 증명하는 사례다.


2.4 동물 의식과 자아의 확장


논문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호접몽이 동물 의식 문제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장자가 경험한 나비의 의식, 물고기의 행복 이야기는 인간만이 의식을 가진다는 생각을 뒤흔든다.


저자는 이를 토머스 네이글의 「박쥐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현대 동물철학 논의와 연결한다.


나비의 의식을 인정하는 순간, 자아의 범위는 인간이라는 신체적 한계 너머로 확장된다. 이는 오늘날 인공지능의 의식 가능성 논의와도 맞닿아 있다.


2.5 온톨로지적 함의: 나는 무엇을 근거로 나인가


결국 이 논문이 열어주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온톨로지적이다. 만약 의식을 업로드하거나 뇌를 이식할 수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무엇을 근거로 정의되는가? 뇌, 기억, 경험의 연속성, 혹은 다른 차원일까?


장자의 호접몽은 이에 대해 단 하나의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흐름과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임을 암시한다.


이는 AI, BCI, 의식 업로딩 같은 미래 기술이 도래할수록 점점 더 긴요한 철학적 성찰이 된다.



3. 호접몽의 오늘적 의미


C. P. Hertogh의 연구는 장자의 호접몽을 고대의 우화가 아니라 철학적 사고실험으로 재조명한다. 그 핵심은 자아와 정체성, 현실 인식, 동물 의식의 문제를 모두 불확실성 위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1) 호접몽과 좀비 논증은 의식·정체성 문제를 드러낸다.

(2) 뇌 항아리는 현실 인식의 신뢰성 문제를 제기한다.

(3) 아인슈타인 사고실험은 상상력의 철학적·과학적 힘을 보여준다.


이 세 가지 맥락 속에서 호접몽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으로, AI와 BCI 시대를 준비하는 철학적 사유의 토대가 된다.


결국 오늘날의 기술적 상상과 장자의 고대 사유는 이렇게 만난다. 의식 업로딩, 뇌 이식, 신체 교체가 현실화되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장자의 질문 앞에 선다. “나는 장자인가, 나비인가? 나는 무엇을 근거로 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호접몽이 오늘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이다.


참고문헌

Hertogh, C. P. (2024). Turn to Butterfly Dream—Zhuangzi’s thought experiments and animal consciousness. Anais de Filosofia Clássica,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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