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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의 <첫사랑>

작사 원태연, 작곡 원상우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파란'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CTn7 qpqAydE? si=sCJTRXrj-Pd4 BJ9 k

너의 달콤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를 때

너의 촉촉한 눈빛들이

내 얼굴을 스칠 때


사랑한다는 얘기를

너의 귓가에 속삭여 tonight

너의 가슴에 나를 안겨줘


- 파란의 <첫사랑> 가사 중 -




파란은 2005년 데뷔했습니다. 5인조 남성 아이돌입니다. 라이언, 네오, 피오, 에이스, 에이제이가 멤버입니다. 좋은 하모니가 그들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죠. 그룹명 파란은 가요계에 파란을 일으키라는 뜻입니다. 동명의 포털사이트가 있어 억지로 예명을 만들어서 PO + Ace + Ryan + AJ + Neo 이렇게 썼네요. 고육지책이죠.

보통 아이돌은 댄스 위주가 많은데 이 팀은 정통 발라드를 추구한 점이 특징입니다. 오늘 소개할 노래는 그들의 1집 타이틀 곡이죠. 2008년까지 정규 3집을 발매했습니다. 멤버들의 군입대와 계약만료로 활동이 종료되었습니다. 막내인 에이제이는 같은 소속사의 그룹 유퀴즈에 합류했죠.

이후 피오는 활동명으로 수인으로 변경하고 그룹 소울라티의 멤버로 활동했고요. 에이스는 본명 최성욱으로 활동명을 변경하고 2016년 슈퍼스타K에 출연한 뒤 록밴드 마이 선셋의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라이언 역시 본명인 주종혁으로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죠. 네오는 미국에 체류하며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들은 2018년 슈가맨 2에 출연한 바 있습니다. 네오만 미국 체류 중이라 못 나왔죠. 꽤 외모로 준수하고 노래도 좋은 그룹이었는데 생각보다 활동기간이 짧았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면서 오늘 그들의 데뷔곡을 <가사실종사건> 아카이브에 담아 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첫사랑'입니다. 많은 사랑 중에서도 첫사랑은 의미가 남다르죠. 모든 것이 처음인 사랑, 두 번 다시는 할 수 없는 사랑 그 의미도 참 다양합니다. 이 노래에서는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느낌만을 전달하고 있죠.

'Hello I believe you 사랑하고 싶어질 때/ 어때요 그대여 이제는 될까요/ 두 눈엔 오직 그대 하나만 보입니다/ 이 세상 그대와 단 둘이 우리만/ Be forever with you' 부분입니다. 화자에게 상대가 첫사랑인 것 같네요. 첫사랑을 위한 플러팅을 날리고 있죠. 어쩌면 짝사랑일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

'어때요 그대 나는 준비가 다 됐어요/ 영원히 그대만 사랑합니다 Say that I love you 우 워' 부분입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아직 확답을 받지는 못한 상황인 것 같죠. 화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네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너의 달콤한(떨리는)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를 때/ 너의 촉촉한 눈빛들이 내 얼굴을 스칠 때/ 사랑한다는 얘기를 너의 귓가에 속삭여 tonight/ 너의(뛰는) 가슴에 나를 안겨줘/ 우리 영원히 사랑을 해요' 부분입니다. 갑작스럽게 진도가 급진전한 느낌이 나는데요. 플러팅에 상대가 호응을 한 것일까요?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려진다는 것, 눈길을 받는다는 것은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죠. 전체적인 맥락으로 봤을 때 이 부분은 화자가 꿈꾸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마지막 가사가 '너와 나 둘이서 둘이지만 하나로/ 영원히 이렇게 사랑하고 싶어'입니다. 사실 주제 가사를 뽑으라면 이 부분 같은데요. 아직은 합일이 되지 못한 각자인 상태에서 하나가 되어 영원히 사랑을 꿈꾸고 싶다 이것이 지금 화자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듯합니다.


음. 오늘도 딱히 쓸 내용이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왜 그려죠? 하하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뭐 한두 번도 아닌걸요. 'believe'라는 단어가 보이네요. 믿음으로 번역이 되죠. 대상의 상태나 행위가 꼭 그러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비슷한 용어로는 신뢰, 반의어로는 배신이 있다고 나와 있네요.

우리는 각자의 믿음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 체계는 같은 사안에 대해서 서로 완전히 다른 양극단에 서게 하기도 하죠. 쉽게 말해 정치로 말하면 진보와 보수 정도라도 보면 될 듯싶네요.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 정치에는 보수만 있지 진정한 진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정도입니다. 모두가 성장을 최대 가치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죠.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각설하고요.

한 사람의 믿음 체계는 한 번 형성되면 잘 안 바뀝니다. 종교가 대표적인 경우죠. 하느님 믿다가 부처님 믿는 일은 아주 극히 희소한 일이죠. 기존에 가지고 있는 믿음 체계가 뿌리부터 흔들려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들이 있긴 있더라고요. 보통은 매우 어렵습니다.

보통 같은 지역, 같은 시대 등 공통분모가 많으면 많을수록 믿음 체계도 공통분모가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선거철에 보면 세대별 투표 성향이라든지 지역별 투표성향을 보면 그게 잘 나타나죠. 지금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보면 파란당과 빨간당으로 극명이 엇갈리곤 합니다.

그런데 많은 공통분모를 가졌음에도 믿음 체계가 너무 다른 경우도 있죠. 사람마다 경험한 세계가 다르고 영향을 받는 사람이 다르고 생각의 맥 등이 달라서일 겁니다. 특정 믿음 체계가 다르면 대화도 친구도 결혼도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최근 국제적 보이스 피싱이 화제가 되었죠. 일종의 사기극인데요. 사기는 우리의 믿음 체계를 교묘히 이용하죠. 사이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믿음 체계를 설정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행동이나 사고나 말을 하면 왕따를 시켜서 매장시켜 버리죠. 당사자는 그게 무서워라도 허튼짓을 못하게 됩니다.

이런 믿음 체계는 상업적으로도 많이 이용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브랜드죠. 명품 브랜드라면 왠지 돈값을 할 것 같은 기대를 갖는 것과 같습니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공장에서 남몰래 만들어서 해당 브랜드만 찍어냈을 뿐인데도 우린 껌뻑 속기 쉽죠. 브랜드가 쌓아온 믿음 체계의 힘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는 어떤 가요. 그 종이로 우린 뭐든 살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사실 상대방이 돈을 안 받고 팔지 않겠다고 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합니다. 경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걸로 무엇이든 교환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화폐로서 역할을 하게 되고 그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다들 고군분투를 하면서 살게 되는 거죠.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로 인해 그동안 사람이 동물과 구분되는 많은 것들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였는데요. 까마귀가 인간 다음으로 지능이 높은 동물로 꼽히는데 까마귀도 도구를 이용해서 제법 재주를 부린다고 하네요. 인간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죠.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없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입니다. 바로 믿음 체계도 그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는 중의적인데 사용하는 방법이나 사람에 따라 정도 되고 반도 되고 그러죠.

칼은 요리하거나 곡식 등을 벨 때를 아주 유용한 도구이나 이것이 사람을 향하면 흉기가 됩니다. 믿음 체계 역시 마찬가지죠. 옳은 방향이면 이보다 건전한 게 없을 터이나 그른 방향이면 위에서 언급한 보이스 피싱, 사이비, 과도한 소비 등을 양산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이죠. 역사나 지역을 보면 믿음 체계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돈으로 밥을 먹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금기이나 아랍 쪽으로 가면 당연한 일이 되고요. 남녀가 서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지금에 논한다면 싸대기 맞기 십상이죠. 믿음 체계는 그만큼 유연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에 한 번 대입해 보죠. 이 노래 제목처럼 첫사랑 때는 한 번 사랑하면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하리라 이런 믿음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거라고 깨지고 나면 우린 믿음 체계에 변형을 꾀하게 되죠. 사랑은 영원한 게 아니라 영원한 것을 꿈꾸는 것에 불과하다고요. 그렇게 세 번, 네 번 깨지고 나면 그때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겁니다. '사랑은 변하는 게 당연한 거야'라고요.

이처럼 믿음 체계는 자신의 경험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경험이라는 게 얼마나 크고 넓을까요? 고작해야 80억 분의 1일 텐데요. 그런데도 우린 살면서 자신의 믿음 체계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을 합니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나는.... 을 확신해 이런 말을 거침없이 내뱉죠. 쯧쯧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상대가 나에게 갖는 믿음 체계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신뢰가 있다고 여겨지는가 하는 문제죠. 다르지만 같은 문제인데요. 결국 자신의 믿음 체계를 고수하면 상대로부터 그 믿음 체계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유연해질수록 상대로부터 믿음을 획득하게 되죠.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고수하는 사람보다 경우에 따라 자신의 생각도 바꿀 수 있어야 맞은 것은 맞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으로 기억될 테니까요.

동물과의 유일한 구분점으로 살아남은 '믿음'. 이 믿음은 과연 AI와의 대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AI가 우리의 생각보다 유연해지는 일은 없어야겠죠?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예로부터 사람의 마음을 가지면 천하를 얻는 것이라고 했지요. 바로 믿음에 관한 언급이 아닐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 각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과학과 심리학 등에 기대어 탐구하고 있는 바가 바로 믿음이라는 녀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네요. 여러분은 믿음은 어떤 의미인지요? 어렵다.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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