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진의 <그대의 향기>

작사 이수만/ 작곡 유영진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유영진'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thhv1 GyoBiQ? si=Nz3 ciVAnhtBI20 N0

안녕이란 말을 꼭 해야 한다면


차라리 세상 모든 빛을 잃으리


이젠 나에게 돌아와 그대


쓰러져 어두워 갈 때 나를 안아 줘


그대 향기


- 유영진의 <그대의 향기> 가사 중 -




유영진은 1993년 데뷔했습니다. 존명은 유남용입니다. 가수로 출발해서 작사, 작곡,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죠. 그의 프로듀싱 능력으로 탄생한 그룹이 H.O.T입니다. SM 전속 프로듀서로 초기에 SM풍의 음악을 만들 장본이라고 볼 수 있죠. 현재는 이수만이 새롭게 설립한 A2O엔터테인먼트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MBC 무용단 출신입니다. 제대를 하고 나서 이수만에게 자신이 작곡한 CD를 보내서 영입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곡은 그의 1집 앨범에 실린 타이틀곡입니다. 주 장르는 R&B입니다. 2001년 정규 3집 앨범을 발매했고요. 그 후로는 제작자로서 전향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세대부터 현재까지 명실상부한 스타 제조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SES, 신화, 플라이투 더스카이, 동방신기, 보아,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EXO, 레드벨벳, NCT, 에스파까지 손을 뻗쳤죠. 대단합니다. 현재도 SM엔터테인먼트 임원 명단에 등재되어 있다고 하네요.

짧은 가수 활동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사, 작곡, 프로듀싱으로서 이렇게 성공한 케이스가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어찌 보면 가수 활동은 제대로 된 제작자가 되기 위한 체험 정도라고 여겨질 정도입니다. 근 30년간 아이돌 세계를 이끌어온 그를 오늘 <가사 실종 사건>의 아카이브에 담아 봅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그대의 향기'입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존재는 사라졌지만 온기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탐정이나 형사들이 범인을 추적할 때 찻잔의 온도 같은 것을 체크하는 장면이 나오곤 하죠. 여기서 향기란 헤어진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찻잔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아직도 난 그대 꿈같은 눈빛 속을/ 못 잊어 찾아 헤매는데/ 그대는 가끔씩 향기로 다가와/ 신비스러운 느낌으로 나를 날아오르게 해' 부분입니다. 화자는 지금 이별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가사로 봐선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 것으로 보이네요. 아직도 상대가 곁에 있는 것 같은 환상 체험을 하고 있죠. 상대를 생각하면 황홀해서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거 큰 일이군요.

'어떡해야 그댈 잊을 수 있을는지/ 지금 난 앞을 볼 수 없는데/ 그늘진 두 눈에 흐르는 눈물로/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부분입니다. 현타가 오긴 하는 모양입니다. 이제 어찌 살아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막막한 상황을 인식하죠. 두려워서 일까요 슬퍼서 일까요 두 눈에 눈물이 죽죽 흘러내립니다. 사랑이 떠나며 삶의 방향을 상실한 한 가엾은 영혼의 모습입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안녕이란 말을 꼭 해야 한다면/ 차라리 세상 모든 빛을 잃으리/ 이젠 나에게 돌아와 그대/ 쓰러져 어두워 갈 때 나를 안아 줘/ 그대 향기' 부분입니다. 마음을 다독이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절대로 이별을 인정할 수 없다는 버전을 선보입니다. 지금이라도 돌아와서 죽어가는 화자 자신을 살려달라고 말하죠. 어디선가 상대의 향기가 느껴지는 상황을 어찌하오리까.


음. 오늘은 딱히 쓸 주제가 보이지 않는군요. 하하하. 그래서 최근 읽은 책을 뒤적이다가 아래 문장으로 실마리를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잘 될지는 알 수 없죠. 책 제목은 <철학으로의 초대>이고 저자는 민이언이라는 분입니다. 작년 12월 중순 경에 나온 비교적 신간에 속하죠.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일명 꽂힌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조금 더 쉽게 풀어쓰자면, 우리가 진리로 믿고 있었던 것들을 향한 신념은 우발적 사건으로 인해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진리에 대한 신념은 차라리 주체가 처한 상황의 속성이지 주체가 지닌 속성은 아니라는 것. 바디우에게 있어 주체란 ‘진리의 효과’다. 주체는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매 순간 등장하는 것이다'라는 부분입니다.

제가 철학을 처음 접할 때 보았던 질문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어떤 사람이 밖에 있다가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마당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 한 대를 보죠. 그리곤 집에 들어와서 생각합니다. 과연 그 자전거는 마당에 있다고 봐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죠.

제가 소개한 글에서 '주체는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서 매 순간 등장한다'는 표현을 빌리자면 마당에 서 있는 자전거는 내가 마당에 있을 때 볼 수 있고 마당을 벗어나면 볼 수 없게 됩니다. 내가 마당이라는 장소에서 등장하는 순간에 자전거도 함께 생기는 것이죠.

내가 자전거를 볼 수 있음은 나 자신의 속성이 아닙니다. 내가 자전거가 있는 마당에 있는 상황이 나로 하여금 자전거의 존재 유무를 알게 하죠. 조금 어렵나요? 하하하. 내 눈은 시야권 안에 들어온 사물들을 볼 수 있죠. 그런데 내 앞에 자전거라는 상황이 나타납니다. 그럼 나는 자전거를 보게 되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전거를 보는 눈을 가졌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게 무슨 표현이냐면요.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 말이죠. 그때그때 달라집니다. 뭐에 따라서? 바로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죠. 만약 우리가 숟가락이 아니라 젓가락만 사용하는 나라에 가서 살게 되면 숟가락으로 밥을 먹어온 우리는 당황하게 될 겁니다. 그동안 밥은 숟가락으로 먹는 것이 정설 혹은 믿음으로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장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시간도 그렇죠. 과거에는 고봉밥을 퍼서 먹는 것이 정설이자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영양분을 대체할 것들이 즐비하다 보니 밥보다는 반찬 위주로 식사를 해서 밥은 예전보다 적게 먹습니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과거 여행을 해서 현재와 너무도 다른 삶의 방식에 당황하는 장면들을 등장시켜서 웃음 코드를 자아내는데요. 바로 이런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 신뢰라는 것은 시공간에 따라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행해지는 이유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시공간이 영원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죠. 이 노래와 연결을 시켜보죠. 화자는 이별을 한 후입니다. 만약 이별 감정이 격하게 평생을 간다면 화자의 슬픔은 계속될 겁니다. 그런데 실제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만나기 전의 시공간을 생각해 보죠.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현재에는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이 나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고 있겠지만 예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죠. 먼 미래에는 또 어떨까요? 사랑과 이별에 대한 생각이 안드로메다급으로 변해 있지 않을까요?

이 노래의 제목인 향기라는 단어에 주목해 봅니다. 사람마다 나름의 향기가 있죠. 그런데 사람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나요? 향기가 없어집니다. 그런데도 우린 그 사람의 향기를 맡는 것 같은 느낌을 받죠. 환상입니다. 마치 고향이 그리워서 고향 냄새를 기억해 내는 것과 유사하죠.

향기라는 기체는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향기를 품은 사람이 있다가 그 자리를 뜨면 가까운 시점에는 은은하게 향기가 남아 있지만 훨씬 시간이 흐르면 향기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죠. 이 장면을 바로 시공간이 바뀌었다고 보면 어떨까요?

이별이라는 상황은 극적인 시공간의 변경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미련, 후회, 재회 욕구 등을 분출시킵니다. 누군가를 좋아했던 자신의 정체성이 고정되어 있거나 무너지면 안 된다고 여기는 것이죠. 그런데 말이죠. 그건 상황이 만든 정체성이지 나 자신의 정체성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란 존재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사랑을 하고 떠나버리면 이별을 하고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며 사는 존재인 까닭입니다. 제목 '그대의 향기'는 그저 상황일 뿐이죠. 얼마든지 다른 향기로 대체가 가능하다고 말하면 너무 간 것일까요? 하하하. 나+상황이 있는 것이지 '나'라는 것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철학의 사유가 여러분들은 잘 이해가 되시는지요? 하하하.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저 역시 브런치와의 조우를 통해 많은 글들을 쓰고 있죠. 만약 제가 브런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글을 많이 쓸 수 있었을까요? 살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하곤 하는데요. 어디에 있어도 자신만 잘하면 된다고 말이죠. 능력주의에 함몰된 우리 사회는 저성장이나 저출산 등을 나의 문제로만 바라보곤 합니다. 저는 환경을 만드는 사회나 국가의 몫도 적지 않다고 믿는 편입니다. 히틀러와 독일, 트럼프와 미국처럼 그 나라가 아니었으면 존재하기 어려웠던 인간들이 아니었을까요?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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