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 유유진 작곡 광영 준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소찬휘'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a-rkWNLM5 jw? si=7 stLgzYMESPUeYyc
이젠 필요 없어 모두 잊어줄게
천사표 이별은 없잖아
너만을 기다리는 인형은 아냐 우
어차피 넌 나를 사랑하지 않아
차라리 잘 된 거야
이별은 현명한 선택이었어
- 소찬휘의 <현명한 선택> 가사 중 -
소찬휘는 1988년 데뷔했습니다. 여성 메탈밴드인 'EVE'에서 활동을 했고요. 당시 나이가 여고 2학년이었다고 하네요. 보컬이 아니라 기타를 맡은 것도 이색적입니다.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만 봤지 기타 솜씨가 어떤 지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네요. 이 밴드는 달랑 앨범 한 장을 내고 해체됩니다.
1992년 그녀는 SBS 신세계 가요제에서 본인이 작사한 팝발라드곡으로 은상을 수상하며 정식 가요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이후 드라마 OST에 참여하게 되었고요. '다운타운'이라는 밴드에서 객원 보컬로도 활동합니다. 그녀가 데뷔할 당시 강수지, 하수빈, 양수경처럼 여자여자한 가수들이 주를 이루고 있던 때라 록 음악을 추구하던 그녀의 보폭이 넓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전해집니다.
1995년 '큐브'라는 남녀 혼성 댄스 그룹으로 활동할 예정이었으나 중도에 탈퇴하게 됩니다. 1996년 솔로 앨범을 내고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으나 '큐브'와 타이틀곡이 겹쳐 법정 싸움에 가게 되죠. 오늘 소개할 곡은 그녀의 2집 타이틀 곡입니다. 이 노래부터가 대중이 그녀를 기억하는 시점이죠. 1998년 발매한 3집은 'ㄴ보낼 수밖에 없는 난'이라는 곡이 있고요. 2000년 그녀의 메가 히트곡인 'Tears'가 담긴 4집이 발매됩니다.
2006년까지 정규 8집을 발매한 그녀는 2007년부터 바뀐 음원 시장을 반영하여 디지털 싱글로 전환합니다. 한동안 공백기를 보였던 그녀는 2015년경부터 다시 소환되어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가수다> 등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 출연했죠. 현재 대경대 교수로 재직 중으로 가수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쭉 뽑는 고음이 매력적인 가수입니다. 쇳소리가 들릴다고 할까요. 하하하.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선택은 늘 어렵죠. 당시에는 최선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나고 보면 최악인 경우도 있으니까요. 역으로 과거의 선택이 지금에 안온함으로 자리했다면 그야말로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싶네요. 화자는 어떤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까요?
'왜 나를 포기했는지 이젠 알았어 정말/ 나보다 예전 그녀가 더 쉬웠겠지 너는' 부분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배신의 감정 같은 것이죠. 뭔가 몰랐던 진실을 알아버린 화자는 여자에게 진정성이라곤 1도 없는 상대를 비꼽니다.
'그녀를 니가 정리했다고/ 말할 때 한 번쯤 널 의심했다면/ 오늘의 이런 실패는 없었을 거야/ 흔들리지만 너밖에 없어/ 니 얘기 거짓말이라도 난 생생한데/ 나 몰래 지금껏 그녀를 만난 거야' 부분입니다. 상대에게는 전여자 친구가 있었고 화자에게는 정리가 끝났다고 말한 모양이죠. 하지만 상대는 전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계속 이어온 상황으로 보이네요. 그 과정에서 화자에게는 무수한 거짓말을 쏟아냈겠죠.
2절을 볼까요. '니 수첩 속에 그녀 사진을 봤을 때/ 한 번쯤 널 의심했다면/ 오늘의 이런 실패는 없었을 거야/ 미안해하며 돌려준다던/ 니 얘기 거짓말이라도 난 생생한데/ 나 몰래 지금껏 그녀를 만난 거야 우' 부분입니다. 수첩 속에 있는 전여자 친구의 사진. 그걸 화자에게 들키고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돌려준다고 말하는 상대. 또 그걸 의심 없이 믿어버린 화자. 개찐도찐이네요.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이젠 필요 없어 모두 잊어줄게/ 천사표 이별은 없잖아/ 너만을 기다리는 인형은 아냐 우/ 어차피 넌 나를 사랑하지 않아/ 차라리 잘 된 거야/ 이별은 현명한 선택이었어' 부분입니다. 이제 화자는 마음이 떠났고 등을 돌립니다. 더 이상 진정성 없는 사랑 게임을 지속할 생각도 마음도 없어졌기 때문이죠.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갈 때까지 간 이 상황에서 하는 이별이 '현명한 선택'이 맞을까요? 하하하.
음. 오늘은 '의심과 현명한 선택'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노래에서는 화자가 한 번쯤 의심을 하지 않아서 오늘의 이별을 맞이했다고 말합니다. 뒤늦게 차라리 잘 될 일이라며 이별을 현명한 선택이라고 두둔하고 있죠. 내일을 살아가려면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의심이라는 단어의 연관어로 저는 철학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인데, 그 출발이 일상화된 것들을 낯설게 하는 의심이기 때문이죠. 의심은 물음표를 던집니다. 왜? 왜? 왜?라고요.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지혜라는 것을 얻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일이든 지나고 나면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죠. 그때 그 순간을 의심하지 않고 그냥 넘긴 것들이 쌓여서 지금이 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라도 의심을 통해 멈출 수 있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사뭇 달랐을 거라 후회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죠?
부모님이나 친구가 했던 말들을 그냥 흘려보낸 것, 굳이 안 했어도 되는 일을 해 버린 것, 그때라도 등을 돌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등등 지나고 나면 필연인데 그때는 우연이라고 믿었던 수많은 것들 말이죠. 의심하지 않는 삶이 우리의 인생길에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아는 것은 꽤나 빈번하다고 할까요.
제가 가진 제1의 신조는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입니다. 그 신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의심을 달고 살아야 하죠. '밥은 왜 숟가락으로 먹지? 일본에서는 밥공기를 들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던데. 숟가락 사용이 꼭 정담은 아닐 수도 있겠다' 뭐 이런 식으로 저는 생활 곳곳에 의심의 잣대를 버릇처럼 적용합니다.
많이 피곤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잘못 알고 사는 것처럼 불행한 것도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내 실패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해서 하늘나라에 간 후 그걸 알게 되면 얼마나 슬플까요?
내가 보는 세계가 내가 보고 싶은 세계가 되는 순간 그런 일들은 반드시 일어나게 됩니다. 불교에서도 있는 그대로를 보라고 말하는데요. 누군가는 사실이나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렵다 말할 수 있지만 저의 경우는 최소한 그것에 상처받더라도 그 근사치를 알고 살고 싶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의심은 필수입니다. 덮어놓고 그냥 잘 될 거야를 외치기보다는 안 될 가능성을 하나씩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삶의 모습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에 투입되었을 때 조금 더디게 합류하는 단점도 있지만 말이죠. 하하하.
의심을 하는 이유는 현명한 선택을 지속하고 싶어서입니다. 의심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 것은 수동적 선택이죠. 만약에 그 선택으로 일이 잘못된다면 누굴 탓해야 할까요? 의심이라는 기제는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나의 영역과 주체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죠. 주변 사람이 A 주식을 추천합니다. 좋다고 하니 그냥 샀습니다. 폭망 했습니다. 추천한 사람의 잘못일까요? 곧이곧대로 그 사람의 말을 들은 나의 잘못일까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겠지만 전적으로 한쪽의 잘못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하죠.
그런데 주변 사람으로부터 A라는 주식을 추천받고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왜 나에게, 왜 이 주식을, 왜 지금 등등을 따져보게 되죠. 그 의심의 장막이 걷힌 후 A라는 주식을 매입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폭망 했습니다. 첫 번째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죠. 결론만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나의 공과로 해석됩니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아마 지금을 교훈 삼아 살 수 있을 겁니다.
의심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현명한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운이라는 말도 못 하는 놈이 늘 훼방을 놓으니까요. 다만 그 가능성과 주체성에 조목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의심을 통해 한 인생 공부, 내 인생을 내가 스스로 결정했다는 주체성은 남게 될 겁니다.
의심도 아는 만큼 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배울수록 우린 더 의심하게 되죠. 우리가 평생 공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의심력을 갖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제가 만나 본 몇 안 되는 부자들의 공통점은 의심이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도 잘 못 믿고 그 수준이 병적이었죠. 돈을 많이 버는 과정에서 사기꾼의 벽을 넘어야 해서 그런 건가 싶었습니다. 지식이든 돈이든 뭐든 많이 갖게 될수록 의심은 필연적으로 따라 붇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여러분들은 평소에 얼마나 세상을 의심하시며 사시나요? 궁금하네요.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