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작사 이승호 작곡 손무현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김완선'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QirYwmGAtB0? si=oCMVzVyztmzHOE16

술 마시며 사랑 찾는 시간 속에


우리는 진실을 잊고 살잖아


난 차라리 웃고 있는 피에로가 좋아


- 김완선의 <삐에로는 우를 보고 웃지> 가사 중 -




김완선은 1986년 데뷔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최고의 여성 댄스 가수였습니다. 섹시 콘셉트와 춤선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죠. 그녀는 가수 인순이의 백댄서로 가요계에 처음 발을 내딛습니다. 만 16세에 20살로 나이를 속이고 1집을 발매하죠. <오늘 밤>이라는 노래로 30만 장이나 팔렸습니다.

1987년 발매한 2집은 <리듬 속의 그 춤을>이라는 유명한 노래가 삽입되어 있죠. 1988년 가수 이장희가 프로듀싱한 3집은 <나 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가 타이틀 곡입니다. 1,2집보다는 별로였죠. 1989년 하광훈의 프로듀싱으로 4집 <기분 좋은 날>이 발매됩니다. 5집은 최고의 전성기 보여줍니다. 그녀 인생 처음으로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죠. 타이틀 곡 <나만의 것>에 이어 오늘 소개할 곡과 <가장무도회>까지 쓰리콤보를 터트리며 국민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1992년 6집 <애수>를 내고 돌연 은퇴선언을 합니다. 부모님 빚을 갚기 위해 홍콩행을 택합니다. 이민을 가죠. 3장의 중국어 앨범을 발매합니다. 본의 아니게 원조 한류 가수가 된 셈이죠. 1997년 한국으로 컴백해 7집을 발매합니다. 한 물 간 줄 알았으나 나름 선전합니다. 2002년 8집을 발매하고요. 하지만 빚 문제가 계속 따라다녀서 누드 사진집까지 찍으며 보이지 않는 힘든 시간을 보냈죠.

2005년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9집을 발매합니다. 2006년 하와이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2009년 건강상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2011년부터는 바뀐 시장으로 인해 싱글 위주로 활동을 합니다. 현재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드문드문 가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올해 가수 데뷔 40년을 훌쩍 넘었는데요. 노래보다는 곡 해석 능력과 특유의 눈빛 그리고 춤이 독보적인 가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입니다. 이 노래를 다뤘던 것 같은 기시감이 있어서 엑셀 파일을 열어보니 박혜성의 <도시의 삐에로>라는 곡을 다뤄서 그랬던 모양이더라고요. 원래 피에로는 슬픈 얼굴인데 제목은 웃는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빨간 모자를 눌러쓴/ 난 항상 웃음 간직한 삐에로/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부분입니다. 화자는 자신을 삐에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표정은 슬프지만 웃음을 간직하고 있는 삐에로. 빨간 모자에 파란 웃음도 대비를 이루죠.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마음이 전혀 딴 판임을 드러냅니다.

'초라한 날 보며 웃어도/ 난 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모두들 검은 넥타이/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삐에로를 광대로 여기며 비웃지만 화자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다 말합니다. 모두가 똑같은 모습의, 사회인을 뜻하는 검은 넥타이를 하고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있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말하죠.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사람들은 모두 춤추며 웃지만/ 나는 그런 웃음 싫어/ 술 마시며 사랑 찾는 시간 속에/ 우리는 진실을 잊고 살잖아/ 난 차라리 웃고 있는 삐에로가 좋아/ 난 차라리 슬픔 아는 삐에로가 좋아' 부분입니다. 비슷비슷한 모습에 자신의 진심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의 웃음, 술을 찾아 사랑을 찾아 그 허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 사람들. 화자는 겉모습이 아닌 웃음과 슬픔을 아는 삐에로를 선택합니다.


음. 오늘은 '겉과 속이 다른 감정 노동'에 대해서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정 노동의 대명사로는 고객센터에서 응대를 하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이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쌍욕도 하고 안하무인으로 응대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빌런들이 꽤나 많았죠.

그걸 방지하기 위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안내 문구가 먼저 나옵니다. 상담원을 보호하기 위해 욕 같은 것을 하지 말아 달라고요. 관련 법 근거도 함께 말해주죠. 넓은 의미에서 보면 고객을 직접 대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 감정노동자에 해당될 겁니다.

무리한 요구를 해도 화가 나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응대를 하게 되는데요. 감정 노동과 관련해서 일본 판매원들이 회자된 적이 있죠. 고객들 앞에서 저리도 친절한 모습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당시 일본이 잘 나가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그게 더 좋아 보이기까지 했죠.

누군가는 일본 판매원들이 웃음과 태도가 너무도 로봇 같아서 그 뒷면을 파 해져 보려고 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알게 된 단어가 '혼메' 였죠. 우리나라 말로 진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들로 사람인지라 진심을 숨기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진상 손님을 보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매한가지였던 것이죠.

회사를 다니는 일도 감정 노동의 연속입니다. 고객은 아니어도 상사를 모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죠. 아무리 수평적인 조직이 되었다고 해도 유교적 장유유서 전통의 잔재는 아직도 우리를 많이 괴롭힙니다. 변화된 세상에 맞춰 어떤 행동을 하려는 순간 이래도 되나 이런 생각을 한 번씩 해 보게 되죠.

예를 들면 팀장을 빼고 모두가 회식 자리에 모였습니다. 먼저 음식을 시키고 불판에 고기를 굽고 먹고 있어야 하죠. 그런데 팀장이 회사 일로 대표에게 불려 가서 늦게 오는 거면 조금 상황이 다를 겁니다. 이때는 팀장이 오기를 팀원들이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이런 갈팡질팡하는 마음도 감정 노동일까요?

개인적으로 일과 관련해서 감정노동을 경험한 것은 의무경찰 때였습니다. 위반을 한 차를 세우고 교통범칙금을 발부하는 일을 하다 보면 운전자들의 갖은 사연과 마주하게 되는데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생계형 고충부터 처음 차를 몰고 나왔다는 초초초보운전자, 그 지역을 처음 찾아서 길을 헤매던 이방인 운전자 등 그 사연을 들어오면 하나같이 훈방하고 싶은 마음이 들끓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죠.

이미 그런 감정 노동에 숙달이 된 선임이 제가 그 현장을 어떻게 극복해 내는지를 감시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저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여 있었죠. 그런 상상도 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 운전자가 저의 부모님이라면 이라고요. 아찔합니다.

평생 낼 세금을 그때 발행한 딱지값으로 다 냈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하는데요. 어린 나이에 경험한 감정 노동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지금도 민원 현장에서 시민들을 대하시는 분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제도가 개선되어도 그 속성은 크게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사회에 나온 후로는 언론사 기자가 제 감정 노동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언론사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 지 지금은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기자랑 거지랑 밥 먹으면 거지가 돈을 내고 나온다는 비아냥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었죠. 일부이긴 하나 기자라는 견장으로 못된 짓을 하는 것에 홍보인들이 맥을 못 추던 시절이라 감정 노동의 대명사 직업군이었죠.

그런데 감정 노동의 꽃은 따로 있더군요. 바로 주주를 상대하는 IR 담당자였습니다. 주식을 사고 회사에 투자한 분들이 IR 담당자를 상대로 각종 불만 쓰레기를 안기죠. 마치 IR 담당자가 주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사람처럼 분에 넘치는 요구를 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말이라는 게 꽃을 시들게도 하고 더 잘 자라게도 하는 것처럼 좋은 이야기를 들을 가능성이 1도 없는 IR 담당자는 웬만해서 기피하는 자리로 통합니다. 시궁창 같은 말을 매일 전화 너머로 들어야 하는 일을 누가 좋다고 하겠어요? 그 자리에 맞지 않는 성정을 가진 사람들은 주주들과 말싸움을 하곤 합니다.

다들 다양한 직종에서 일을 하지만 홀로 사장이 아닌 이상 모두 감정 노동이라는 직군에 일한다고 봐야 할 판입니다. 하하하.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이 감정 노동을 하면서 자신이 고객이 되었을 때는 변신을 합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것과 같죠. 음식점에서 점원들에게 하는 것만 봐도 딱 보입니다. 그래놓고 자신의 감정 노동에 대해서는 세상 다 잃은 것처럼 털어놓으면 안 되겠죠.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참 복잡하고도 미묘하죠. 하지만 상대가 나를 기분 나쁘려고 그러는지 아닌지 정도는 쉽게 구분하죠. 감정 노동이 반복되는 데에는 자신의 말과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돌아보지 않아서 반복하는 경우일 텐데요. 주변에서 누군가가 말해 줄 기회도 없고 말해 주어도 바뀌지 않는다면 언젠가부터 주변에 사람들이 쉬쉬하고 멀어질 겁니다. 이걸 고독한 천재로 포장하는 우를 범하진 마시길.

이 노래의 삐에로처럼 겉모습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마음일 겁니다. 그것을 어루 만져 주질 못할 망정 노동을 시키다니요. 일상에서부터 마주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친절하게 주문하는 것으로 감정노동의 극복을 시작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자녀가 오늘 처음으로 알바 현장에 나갑니다. 여느 부모들처럼 그동안 '네 손으로 직접 돈을 벌어봐야 돈의 무서움을 알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싸늘한 고객들에게 감정 노동을 당하고 오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우리는 일을 하면서 왜 그렇게 감정에 많은 소비를 하는 걸까요? 이참에 좀 탐구를 해 봐야겠네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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