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자의 <수은등>

작사가 유수태, 작곡가 김호남

by GAVAYA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김연자'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GgZ3 SXr5 yXI? si=0 ph2 b8 UiZ1 rF0 KZ0

수은등 은은한 빛 변함없어도


당신은 변했구려 보이질 않네


- 김연자의 <수은등> 가사 중 -




김연자는 1974년 데뷔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꽤 잘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녀의 삶은 가수를 이때부터 가수를 정조준하고 있었습니다. 중3 때 열흘 정도 공연장에 따라다느냐 학교에 못 나가서 수업미달로 정학을 당하고 이 길로 가수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합니다.

오아시레코드에서 <말해줘요>라는 곡으로 데뷔하죠. 1977년 <여자의 일생>을 발매하며 일본에서도 데뷔합니다. 1981년 <노래의 꽃다발>에 이어 1982년 <진정인가요>을 내놓으며 조금씩 인지도를 쌓아가던 그녀는 1984년 오늘 소개해 드릴 <수은등>이라는 노래로 인기가수 반열에 올라섭니다. 1986년 <씨름의 노래>에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아침의 나라에서>도 불렀죠.

그녀는 잘 아시는 대로 엔카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죠. 1980년대부터 1990대에 일본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연말마다 개최되는 일본 음악 프로그램인 <NHK 홍백가합전>에 3회나 참여했을 만큼 일본에서도 나름 성공했습니다. 2009년까지 무려 22년간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 국내로 돌아왔죠.

그리고 <10분 내로>와 <아모르파티>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다가 역주행을 하며 오랜 일본 생활을 기억을 잊게 합니다. 이후 <밤열차>와 <블링블링> 등 꾸준히 음원을 냈습니다. 노래를 너무도 잘하고 성량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녀의 마이크 핸들링은 세간의 화제가 되었죠.

워낙 일찍 가수 활동을 시작한 까닭에 벌써 데뷔 60주년을 넘겼습니다. 아직도 성대가 쌩쌩한 것 같습니다. 이미자 씨에 버금갈 정도로 그녀의 성대는 연구 대상입니다. 그녀만의 특이한 의상도 인상적입니다. 일본에서의 활동이 금전적으로 빈털터리로 끝나는 불운을 딛고 재기에 성공한 그녀를 가슴으로 응원합니다.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수은등'입니다. 저는 제목을 보면 일제 강점기 정도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1930~1940년대 고압 수은등이 상용화되며 본격 보급되었고 가로등으로 많이 사용했다고 나오네요. 그러다 1990년대 이후에 점차 없어졌고요.

'어스름 저녁길에 하나 둘/ 수은등 꽃이 피면은/ 그대와 단둘이서 거닐던/ 이 길을 서성입니다' 부분입니다. 어둠이 깔리고 거리엔 하나 둘 수은등이 커지며 어둠을 밝힙니다. 그 광경은 마치 불꽃이 피는 것과 같죠. 과거의 연인과 함께 했던 과거의 기억이 생각납니다. 그 기억을 더듬고자 화자는 그 길을 서성입니다.

2절은 '어두운 밤거리에 하나 둘/ 오색불 깜빡거리면/ 그대의 웃음소리 들려올 듯/ 내 가슴은 설레네' 부분입니다. 수은등이 하나 둘 켜지면 황홀한 밤풍경이 연출됩니다. 과거 연인과 좋았던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죠. 함께 그 길을 거릴 때 웃음 짓던 그때를 떠올리며 설렘이라는 감정을 회상해 봅니다.

'수은등 은은한 빛 변함없어도/ 당신은 변했구려 보이질 않네'와 '바람 부는 이 거리는 변함이 없건만/ 당신은 변했구려 보이질 않네' 부분입니다. 님은 떠나갔어도 수은등은 저녁이 되면 여지없이 불을 밝힙니다. 인간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기계는 할 일을 하는 것이죠. 그 모습이 참으로 무상하게 느껴지죠.

'아 수은등 불빛 아래/ 이 발길은 떠날 줄 몰라'와 '아 오색불 깜빡이는/ 이 거리를 잊으셨구려' 부분입니다. 화자는 추억에 사로잡혀 그곳을 한동안 서성입니다. 아마도 떠난 임은 이 거리를 잊은 까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여기죠. 떠난 임에 대한 그리움은 밤이라는 공간 그리고 은은한 수은등에 힘입어 깊어집니다.


음. 오늘은 가사 중 '수은등 은은한 빛 변함없어도/ 당신은 변했구려 보이질 않네'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무상'이죠. 사실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이 기사는 오류가 있습니다. 수은등은 그대로 있고 사랑하는 이는 마음이 변해 돌아오지 않는다가 아니라 수은등도 변하고 임도 변하지만 수은등의 변화 속도보다는 임의 변화 속도가 훨씬 빠른 것이죠. 인간이라면 사물과 사람의 이런 속도 변화 차이를 실감할 수 없으니 상대적인 아픔이 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양한 속도를 지닌 생물과 무생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무생물이 생물에 비해 속도 변화가 느리죠. 1,000년을 넘는 교회 같은 것을 보면 감탄을 자아내잖아요. 그에 반해 인간은 150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살 수 있죠. 보통은 그 절반 정도에서 마무리되고요.

하루살이는 명칭 그대로 하루를 살고요. 매미 같은 것은 일주일 정도를 살죠.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20년 남짓을 삽니다. 그것에 비하면 인간의 수명이 그리 짤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만. 어쨌든 수은등으로 대표되는 무생물에 비하면 우리가 보내는 삶의 시간은 매우 짧게 보일 수 있죠.

그래서 우리보다 더 오래 사는, 다시 말해 느리게 변하는 것을 보며 우린 경외감을 갖게 됩니다. 그중 가장 압권은 우주에 있는 다른 별이죠. 몇백 광년의 빛을 지금 우리가 보게 되잖아요. 지구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보다 한 수 위는 사실 지구라는 별이죠. 지구가 사라지면 당연히 그 안에 있던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도 동시에 없어질 테니 지구라는 별의 수명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 별에서 보내는 신호는 상상을 초월하죠.

자. 주변을 한 번 둘러봅시다. 책상에 컴퓨터도 있고요. 핸드폰도 보이고 의자도 있고 그렇습니다. 이들 각각의 수명은 어찌 될까요? 네 다 다르죠. 그것을 이루고 있는 성분에 따라 무엇이 무엇보다 좀 더 지속하는 내구성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사람은 어떨까요? 대부분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산다고 가정하죠. 하지만 평균의 범위는 꽤 넓습니다. 태어나자마자부터 150살 언저리까지를 포괄하죠. 한 사람이 사는 방식, 사고 위험, 세대, 스트레스 정도 뭐 이런 것들에 영향을 받아서 편차가 생깁니다.

35살과 20살인 연인이 만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35살의 이성은 이제 결혼을 생각할 나이입니다. 이에 반해 20살은 결혼에 대한 생각이 1도 없죠. 극단적인 가정입니다. 평균 수명이나 평균 결혼 연령기를 기준으로 서로가 대하는 속도 차이가 이런 생각 차이로 변주를 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대의 MZ 세대가 4050 세대를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삶의 속도 차이일 수 있습니다. 아직도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는 세대와 이제 조금 있으면 지는 해라는 것을 아는 세대의 접근법은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20km로 달리는 사람이 50km를 달리는 사람과 겹쳐지긴 어렵겠죠?

같은 나이대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비슷할 수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 속도에 대한 의견은 다 다르죠. 누군 빨리빨리 해야 한다고 다른 누군가는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무상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지만 자신의 서 있는 입장에 따라서 속도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가 아닐까요?

50대인 내가 파릇파릇한 20대 청춘을 보면 시간 사용법에 대해 불만을 가질 법합니다. 새벽까지 뭘 하다가 12시가 넘도록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 말이죠. 돌이켜 보면 50대인 나도 20대엔 저랬습니다. 하하하. 그땐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지금은 불편한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우리는 나의 변화 속도로 달리며 내가 아닌 것의 변화 속도를 보며 삽니다. 무생물을 보면 기가 차고요. 생물을 보면 그나마 나은데, 그것도 가끔은 성에 안 차죠.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다른 것의 변화 속도에 너무 흔들리지 말자는 것인데요. 모두가 자신만의 속도란 게 있으니까요.

이 노래에서 화자는 수은등이라는 무생물을 보며 떠난 연인이라는 생물을 대조시킵니다. 네 게임이 안 되죠. 접근법이 잘못되었습니다. 외려 해가 뜨면 꺼져버려야 하는 수은등의 불빛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어땠을까요. 사람을 만나도 반나절만 볼 수 있는 제약이 걸려 있다면요.

모든 것은 변한다. 하지만 변하는 속도는 제각각이다. 그래서 함부로 속도 경쟁을 해서는 곤란하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매일 쓰시는 분부터 띄엄띄엄 글을 쓰시는 분들까지 다양합니다. 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는 것이죠. 띄엄띄엄 쓰시는 분들이 매일 쓰시겠다고 나서면 탈이 나기 마련이죠. 자신만의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 속도 역시 늘 변해서 그걸 제대로 가늠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말이죠.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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