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작곡 하덕규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시인과 촌장'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https://youtu.be/9 n8 qDuXLbDw? si=SUIKIqJr17 CaqIf1
https://youtu.be/POu_1 kHWNC8? si=u9 eDB8 NtyzYP1 xzJ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가사 중 -
시인과 촌장은 1981년 데뷔했습니다. 하덕규와 오종수가 멤버인 듀오입니다. 소설과 서영은이 발표한 1980년대 중편소설 제목을 따와서 팀명을 지었습니다. 소설 제목은 시를 쓰는 사람을 뜻하는 시인(詩人)인데, 市人이라는 동음 한자를 가져왔습니다. 도회지 사람 또는 상인이라는 뜻이라네요.
1집을 발표하고 멤버 오종수가 떠나고 1985년 기타리스트 함춘호를 만나 시인과 촌장 2기를 결성하고 2집을 발표합니다. 1988년 함춘호의 부재 속에 조동익과 이병우 등의 도움을 받아 3집을 발매하고요. 1997년 재작업을 선언한 후 2000년에 다시 함춘호와 함께 4집을 발매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곡은 3집 <숲> 앨범에 실려 있습니다. 가수 조성모가 리메이크해서 역주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위에 관련 링크 올려 드렸습니다. 2007년 음악 전문가들이 뽑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가운데 31위로 꼽혔다고 하네요. 와우
이 음반은 기독교인인 멤버 하덕규가 가진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반영한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가시나무>는 고통과 성찰 성찰을 그리고 있죠. 하덕규 님은 이후 목사가 되셨고요. 함춘호 님은 서울신학대학 실용음악과 교수도 하셨고 한국연주자협회 회장과 기독음악인현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고 하네요.
자. 본업인 가사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제목이 '가시나무'입니다. 검색해 보니 참나뭇과에 속하는 상록활엽교목이라고 나오네요. 하하하. 육안으로 봤을 때는 단풍잎 비스름하게 생겼네요. 왜 제목을 그리 지었는지 의아할 따름이네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에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부분입니다. 화자의 마음속에 뭐가 그리 들었길래 상대가 쉴 수 없다 말하는 것일까요. 다음 가사에 '헛된 바램'이라는 가사가 보이네요. 뭘 그토록 바랬던 것일까요?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부분입니다. 화자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어둠과 슬픔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어두움이 상대를 밀어내는 것으로 보이네요. 이 모습을 '가시나무 숲'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는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부분입니다. 여기서 가시나무는 내용상 가시가 있는 나무 정도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메마린 가지에 가시만 남은 상황. 바람이 불면 가지끼리 부대끼며 소리를 내는데 마치 울음과 같죠. 새들은 쉬러 왔다 가시에 찔려서 도망갑니다. 그래서인지 늘 혼자죠. 그래서 바람이 불면 외롭고 또 괴롭습니다. 가지가 부대끼는 소리가 슬픈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말합니다.
음. 오늘은 가사 중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에 썰을 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해철의 <이중인격자>가 생각나는데요. 우리 안에는 여러 가지의 내가 있죠. 이러고 싶었다가 저렇게 하고 저러고 싶었다가 이렇게 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좀 잡을 수 없죠.
원래 이 노래는 신앙적 의미가 강한데, '사랑하는 하나님 앞에서 아직도 죄를 짓고 원하는 것만 쫓아가는 나 자신을 하나님께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내용'이라고 하네요. 여기에 비추어 보면 자신의 부덕함으로 인해 하나님이 제공하는 쉼터에 이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노래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나'입니다. 분열하는 자아죠. 보통 도를 닦는 분들을 보면 화두를 붙잡고 매진합니다. 잠이 오거나 다른 생각이 찾아올 때 이를 초인적인 힘으로 물리치고 어떤 생각 하나에만 몰두하거나 그것을 넘어서면 생각 자체를 놓는 경지에 이르게 되죠.
일반적으로 나라고 하면 신체적인 나와 정신적인 나를 포괄하는 개념일 텐데요. 정신적인 나로 한정해서 보죠. 지그문트 프로이트 선생이 생각납니다. 정신분석학의 시초죠. 이드(원초아)-자아(에고)-초자아(슈퍼에고)라는 개념을 설파했죠. 이 개념이 맞다 틀리다 보다 우리 안에 또 다른 나의 발견이 큰 업적이죠.
이드는 말 그대로 충동을 말합니다. 욕구죠. 성적 본능, 공격적 본능, 자기 보존 본능 같은 것을 말하죠. 우리 인간의 거의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 사이의 중재자라고 할 수 있죠. 실제로 무언가 결론을 내리거나 행하는 주체입니다. 초자아는 도덕적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도록 하는 우리의 양심 같은 것이죠.
배고파서 본능적으로 빵에 손이 가는데, 자신보다 더 딱한 사람을 의식하고 그 사람에게 순서를 먼저 양보하는 것은 자아가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초자아를 택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죠. 종교인은 일반인에 비해 이드보다는 초자아가 강하게 작동하는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 선생이 말한 나의 개념에서 3가지의 내가 있죠. 만화 영화나 코믹 드라마에 보면 화자를 화면 가운데 두고 한쪽에는 악마가, 다른 한쪽에서는 천사가 튀어나와서 어떻게 하라고 종용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바로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아의 모습을 담고 있죠.
그런데 말이죠. 세상에는 흑과 백, 선과 악, 플러스와 마이너스만 있는 것은 아니듯이 나라는 존재도 딱 잘라 3개다 4개다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자아는 정말 맥락이 없는 경우가 참 많거든요. 매일 걷던 그 길을 저버리고 오늘따라 다른 길로 가고픈 충동을 느끼는 것을 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하하하.
나도 잘 모르는 우리가 남에 대해서는 좀 아는 체를 하곤 합니다. 내가 아닌 남은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생각하는 걸까요? 어찌 보면 우리 인생의 여정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켜 봄으로써 최대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습득해 가는 과정인 것이죠.
그래서 어릴 적에 부모님이 이 학원 저 학원 보내며 자신에게 맞는 적성 같은 것을 찾으려고 공중에 돈을 흩뿌리기도 하죠. 꼭 맞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가만히 면벽을 한다고 해서 보이지 않던 내가 보이는 것이 아니죠.
일반인들의 경우는 다양한 환경에 노출이 되어야 반응이라는 것이 일어나고 그것들의 총체를 자신이라고 인식하게 되죠. 공부를 한다는 것도 그런 맥락과 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배움으로써 가정법을 써가며 자신이라면 어떻게 했겠다는 잠정적인 정보를 얻게 되는 셈이죠.
지피지기면 백번백승. 이 말 들어보셨죠. 네. 싸움에 나가기 전에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장단점입니다. 상대가 어떤 공격을 해 오는 지보다 먼저죠. 최근 트럼프가 폭발시킨 무역 전쟁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인식하고 대화에 나서는 국가와 아닌 국가가 선명하게 나뉘어 보입니다.
그만큼 어떤 일을 할 때 자신 아는 게 그리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가 아니죠. 늘 변화무쌍하게 변덕을 부리기 일쑤입니다. 그것들을 가득 채우고 살아가려면 꽤나 벅찹니다. 내 속엔 나도 있지만 나를 빙자한 것들도 다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정리하거나 비워야 합니다.
보통 내 속에 너무도 많은 내가 있는 경우는 생각 청소를 자주 안 해서 일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머릿속을 청소하면 새로운 생각이 들어와도 견딜 만 한데, 청소 안 한 생각들이 한가득이면 새로운 생각까지 들어와서 공간이 메어 터지죠. 저는 그런 상황이 딱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 청소를 사전에 하는 일입니다. 다른 생각이 들어와 밀도가 높아지기 전까지는 글을 안 써도 별 지장이 없죠. 하지만 꽉 들어찬 상황이 되면 한 번에 청소가 안 돼서 난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기적으로 생각 청소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고안해 보아요. 오늘의 브런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PS. 어제 경품으로 받은 티켓으로 중저가 모텔에서 하루 잠을 잤는데요. 같이 갔던 지인이 코골이어서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살인 충동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하. 워낙 잠을 소중히 하는 저라 더욱 그랬답니다. 정말 잠 못 이룬 그 순간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미칠 지경이었다고요. 하하하. 오늘은 이만*^. See you.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