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트의 <심장이 없어>
작사 방시혁/백찬 작곡 방시혁
안녕하세요?
오늘 <가사실종사건> 주인공은 '에이트'입니다.
아래 노래 들으시면서 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아프다고 말하면
정말 아플 것 같아서
슬프다고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냥 웃지 그냥 웃지 그냥 웃지
그런데 사람들이 왜 우냐고 물어
나는 심장이 없어
나는 심장이 없어
그래서 아픈 걸 느낄 리 없어
매일 혼잣말을 해
내게 주문을 걸어
그래도 자꾸 눈물이 나는 걸
-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 가사 중 -
말이 씨가 된다고 하잖아
그래서 아프다 슬프다 말하지 않고
그냥 웃어 보지만
사람들은 왜 우냐고 물어
미친 것처럼 울다 웃다를 반복해
술에 찌들어 이 아픔을 통과의례로 여기지
멍해져서 니 이름만 종일 적어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지
스스로 주문을 걸어 봐
마치 심장이 없어져
아픔 따위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런데 눈물은 감춰지질 않아
때늦은 후회가 밀려와
니가 있을 땐 널 외롭게 했고
니가 떠나곤 나의 하루가 길어서
난 정말 바본가 봐
심장이 없다고 거짓말을 해도
아픔을 피해 갈 순 없나 봐
억지웃음도 금세 바닥을 드러내
제발 좀 눈물아 이제는 멈춰줘
에이트(8eight)는 이현, 주희, 백찬으로 이루어진 3인조 혼성 그룹입니다. 팀명은 8이라는 숫자를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가 된다는 점에서 착안해서 '무한한 가능성과 열정으로 다양하고 진보적인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네요. 왜 숫자와 영어로 중복 표기했는지는 의문이네요.
정규 앨범은 3집까지 발매를 했는데 이번 노래는 3집에 실린 곡입니다. 2007년 MBC <쇼바이벌> 첫째 시즌에서 우승했고 같은 해 <쇼 음악중심>에서 데뷔한 그룹입니다. 방시혁의 빅히트에서 활동한 만큼 이번 곡도 방시혁 씨가 작사와 작곡가로 참여했네요. 자 그럼 본업인 가사로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심장이 없다고 하잖아요. 심장이 없으면 물리적으로 살 수 없는 거지만 여기서는 아무것도 못 느끼고 싶다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네요. 과연 그 전략이 통했을까요.
첫 가사부터 살펴보시죠. '아프다고 말하면 정말 아플 것 같아서/ 슬프다고 말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그냥 웃지 그냥 웃지 그냥 웃지/ 그런데 사람들이 왜 우냐고 물어'입니다. 이별의 아픔을 잊어보려고 아프다 슬프다 말도 하지 않고 억지로 웃어보는 거죠.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애쓰는 모습이 더 딱해 보이는 상황이라고 해야겠네요.
당연히 노래의 화자는 지금 만신창이 수준입니다. 웃다 울기를 반복하고 술이 밥인지 모른 채 살고 있거든요. 멍 때리며 떠난 연인의 이름을 종이에 빼곡히 적는가 하면 연락을 하려고 마음먹었다가 핸드폰을 다시 내려놓는 일을 반복하죠.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심장이 없어/ 나는 심장이 없어/ 그래서 아픈 걸 느낄 리 없어'라고요. 심장이 없어서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다음 가사가 '매일 혼잣말을 해/ 내게 주문을 걸어' 부분이 이를 방증하죠. 그래서 효과가 있었을까요? '그래도 자꾸 눈물이 나는 걸' 부분에서 보듯 아무리 손사래 치며 거부해 봐도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죠.
그러면서 후회의 감정이 밀려옵니다. 일명 있을 때 잘할 걸과 같은 신파죠. 방구석에 처박혀서 할 일 없이 하루를 보내면서 지루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요. 친구와 술 마신다고 사소한 일상조차 함께 하지 못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죠. 결정적인 건 끝이 나서도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보는 일일 겁니다.
그리고 이실직고하죠. 심장이 없다고 오늘도 뻔한 거짓말을 했고 가슴이 이리 아프다고 보채는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냐고 말하죠. 이 부분이 이 노래의 주제에 해당되는 가사인 듯합니다. 그리고 애원하죠. '제발 좀 눈물아 이제는 멈춰줘'라고요.
가사 내용을 보면 제목에 상당히 자극적인 표현을 썼다는 생각이 드네요. '심장이 없었으면 좋겠어'도 아니고 '심장이 없어'라고 정했으니까요. '가슴으로 운다'라는 노래도 같은 연장선이라고 보이는데요. 심장이든 가슴이든 아픈 마음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싶네요.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콩닥콩닥 뛰던 심장이 누군가와 헤어짐을 맞이하면 그야말로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파오죠. 그런데 심장이 내가 원할 때만 붙였다가 원치 않으면 떼는 그런 곳이 아니잖아요.
오래간만에 조금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세상의 많은 것들에는 정과 반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칼을 잘 쓰면 유용한 도구가 되지만 전쟁에 쓰면 살상무기가 되는 것과 같죠. 그 쓰임이 해당 물건의 성질을 결정짓는 거지 그 물건 자체가 좋고 나쁜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노래의 심장도 마찬가지죠. 원할 때만 쓰고 원하지 않을 때는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죠.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흑과 백, 남과 여처럼 두 극단의 값이 공존하는 것이 이치라는 점입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고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는 것처럼요. 두근거림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심장은 찢어질 듯 아픔이라는 것과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사랑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거잖아요.
아무튼 심장이라는 장기를 꺼내서 보여주며 이별의 아픔을 표현하는 발상이 참 기특합니다. 하하하. 가사 전달 방식이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밖에요. 여러분들은 어떤 상황에서 심장이 잠시 없어져 감정을 안 느꼈으면 하시나요. 음... 저는 이 노래처럼 상실의 아픔을 겪는 순간이 떠오르네요.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