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데이는 2010년 데뷔한 4인조 걸그룹입니다. 처음에는 소진, 지선, 지해, 지인, 민아 등 5명으로 출발했다가 지선, 지인, 지해가 탈퇴하고 유라와 혜리가 새로 합류하면서 4인조 체제가 완성되었습니다. 걸스데이는 초반 스타트가 좋지 못했습니다. 데뷔곡을 포함해 네 곡이 연달아 실패하며 하마터면 사장될 뻔했죠.
이번에 다룰, 2013년 발표한 정규 1집에 실린 <기대해>라는 노래로 기사회생한 팀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전까지는 큐티 콘셉트를 주로 선보인데 반해 이 노래를 기점으로 걸그룹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섹시콘셉트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2017년 마지막 미니앨범이 발매되었고 2019년 멤버들의 계약이 하나둘 종료되면서 공식 해체는 아니지만 현재는 개별 활동만 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본업인 가사로 들어가 보실까요? 제목부터 살펴보죠. <기대해>입니다. 서술어만 있고 이번에도 주어가 빠졌네요. 가사 전반을 보면 '(지금은 내가 너에게 목을 매지만 머지않아 그 반대 상황이 될 거니까) 나의 변신을 기대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노래의 화자가 이런 각오를 다지는지 첫 가사부터 천천히 살펴보시죠. 노래의 화자는 여자이고 자신의 마음을 독백형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그 남자를 잊어보려고 애쓰고 있죠. 전화번호를 지워보려는 시도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남자에게 온 전화 한 통에 그 맘이 한 방에 무장해제됩니다. 울리는 벨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속도 없는 듯 미소를 지으며 통화를 하죠.
그러면서 마음 한 켠은 늘 불안하지만 내색하지 못합니다. '나는 네가 불안해/ 그게 불만인데도/ 자존심 탓 때문에 말도 못 해'라고 말합니다. 특히 같이 있을 때 다른 여자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 같은데 이를 숨기는 남자의 태도에 화가 치밀죠. 그래서 속으로만 말합니다. '문자가 신경 쓰여'라고요.
결정적인 것은 남자가 노래의 화자와 같이 있을 때 문자의 주인공인 그 여자랑 마주치는 순간 만나서 너무도 다정하게 이야기 나눕니다. 노래의 화자가 이 일로 토라져 있지만 별일이 아닌 듯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에 속이 부글부글 끓죠. '이런 기분 너무 싫어/ 또다시 널 잊으려/ 잊으려 애를 쓰고/ 그렇게 아파하고'라고 말하는 것을 봐서는 기분이 상해서 헤어질 결심을 해 보지만 이도 여의치 않은 상황인 거죠.
이 여자분이 남자에게 목을 맬 정도로 형편없어서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나만 보는 남자들 많고/ 많고 많은데/ 네 전화만 기다리는/ 바보 같은 나는 뭐니'라고 말하고 있죠. 형편없는 남자지만 떠날 생각이 1도 없습니다. 너무도 사랑하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네 일명 사람을 고쳐쓰기로 합니다.
먼저 판세를 읽어봅니다. 미워죽겠는데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이나 목소리에 가슴이 떨려오는 자기 자신이 먼저 미쳤다고 말하죠. 문제는 상대적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이 덜하다는 것이라 판단하고 오늘부터 지금부터 자신을 미치도록 좋아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선전포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게 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남자에게 하는 소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대해'라는 말을 던지죠.
후렴구로 나오는 'Ooh Ooh Ooh Ooh Ooh/ Ooh Ooh Ooh Ooh Ooh/ 귀엽게/ Ooh Ooh Ooh Ooh Ooh/ Ooh Ooh Ooh Ooh Ooh/ 예쁘게'가 그 방법론입니다. 최대한 귀엽고 예쁘게 행동해서 나에게 빠져들게 만들겠다고 하죠. 하하하. 섹시 콘셉트의 미인계도 아니고 이런 걸로 그 남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다음 이어지는 가사가 '널 내게 널 내게 다가오게/ 널 내게 널 내게 미쳐보게/ 나 없음 나 없음 안 되게/ 널 만들래'부분입니다. 위에 방법을 써서 긍극적으로 도달하려는 목표지점을 설명하고 있죠. 아마도 지금 본인이 겪는 마음 상태를 그대로 남자에게 이식시켜 주겠다 정도의 표현인 듯합니다.
그런 전략이 제법 작동했을까요. 마지막 부분 가사에 보면 실제 그렇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넌 내게 넌 내가 미쳐'라는 가사가 반복되거든요. 하지만 이건 실제 그렇게 된 것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되라고 거는 주문의 느낌입니다. 랩 가사 부분에 '다가와봐 내가 손짓하잖아/ 어서 내게 네 마음을 보여줘'라고 하는 것으로 추정컨대 작전을 펼치고 있는 초입부가 아닐까 예상해 봅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엄한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포기하기보단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음에도 그 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칭찬해 줄만 하네요. 그리고 왠지 '기대해'라고 외치는 부분에서 자신감도 느껴지고요.
우린 흔히들 남을 바꾸기보다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빠르다는 말을 합니다. 세상일이 다 내 맘 같이 않아서 하는 말이겠죠. 하지만 관계라는 부분에서는 일정 정도는 자신의 마음을 고쳐 먹는 것이 일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그 이상은 언터처블(untouchable) 영역에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연결되지 않는 커플이라는 것도 있는 거죠. 물론 애쓰는 마음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라면 좋은 커플이 될 가능성이 높긴 합니다. 몇 퍼센트의 성공 확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을 바꿔서라도 관계를 바꿔보는 시도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단디 할 수 있다는 경험과 자신감은 험난한 미래를 살아가는데 큰 자산이 되죠. 여러분들은 본인을 바꿔서 관계를 세상을 바꾸는 시도를 해보신 적이 있나요? 그건 여러분들의 삶에서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겠죠? 오늘은 이것으로 마칩니다.
PS. 걸그룹하면 먼저 비주얼에 앞도 당해서 가사가 잘 안 들어오는데요.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걸그룹 노래를 대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 <가사실종사건> 한다고 다시 가사를 찬찬히 보니 예전에는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보이네요. 사람의 시각이 에너지의 70% 정도를 쓴다고 하는데, 라디오나 팟빵처럼 올드 매체가 갖는 힘도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조화가 중요한 것이겠죠. 연휴의 마지막 날입니다. 잘 마무리하는 즐거운 하루 보내시어요. See you. Coming Soon- (NO.65)